#25. I’ll be back

Morocco Diary. / Taghazout

by 이인

타가줏 (Taghazout) 이라는 작은 바닷가 마을로 가기 위해 에싸웨라에서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왔다. 저녁노을이 어스름하게 깔릴 때쯤 버스는 나를 내려놓았고. 버스에서 내림과 동시에 예외 없이 호객꾼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곳은 론리 플래닛에도 긴 설명이 없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이곳에 뚝 떨어진 터라 일단 한 바퀴 돌아볼 작정이었다. 도로 가에서 비포장길을 걸어 내려오니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카페와 레스토랑 그리고 숙소처럼 보이는 나지막한 일 층짜리 호텔들이 띄엄띄엄 서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동네라 긴장을 한 탓인지, 그간 기력이 쇠한 건지 매일같이 메고 다니던 배낭이 천근은 되는 듯 느껴져 야외 레스토랑에 엉덩이를 걸쳐 놓고 한숨 돌리고 있는데 또 호객꾼이 내 앞에 섰다.


피곤함이 밀려와 오늘 하루만 어떻게든 때워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를 따라 가려던 찰나, 누군가 뒤에서 ‘Hey!’ 하며 반가운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돌아보니 에싸웨라 호텔에서 먼저 이곳으로 떠난 커플이었다. 네덜란드의 Marlow와 루트니아가 고향이라는 Jovita. 그들은 자기들의 숙소에 큰 카우치가 있는 작은방이 있으니 괜찮으면 함께 지내자고 제안을 했다. 망설일 것도 없이 다시 배낭을 메고 그들을 따라나섰다.

네덜란드에서 온 Marlow와 루트니아가 고향이라는 Jovita.

Malow를 따라 걷자니 길의 왼쪽으로는 거칠지도 아주 고요하지도 않은 바다가 내려다 보였다. 해안가와 길 사이에는 굵지 않은 나무 기둥을 옆으로 뉘어 만든 소박한 가드레일이 이어져 있었다. 그렇게 몇 걸음 걷자니 곧 아담한 2층짜리 집이 나왔고 Marlow는 코르크 마개가 열쇠 고리가 달린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너무나 감사한 마음으로 이곳에 오긴 했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으로 초대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집안 곳곳, 심지어 화장실의 변기에까지 조그만 조약돌을 하나하나 박아놓아, 묘한 자연의 색으로 완성된 아름다운 동화 속의 집, 혹은 대문호가 위대한 작품을 위해 몰래 만들어 놓은 별장 같은 곳이었다.


가격에 비해 제법 큰 그 방에서 우리는 맥주 한잔을 나누며 서로의 삶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비행기 날개와 커다란 풍력 발전기를 디자인하는 것이 직업이라는 Marlow와 컨설팅 회사에 다닌다는 Jovita. 서로의 낯선 이야기들을 교환하는 동안 어느새 밤이 깊어왔고 연신 하품을 해대는 나를 보던 Malow는 피곤할 테니 어서 쉬라며 커튼을 쳐주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파도 소리를 자장가 삼아 커다란 카우치에서 하룻밤을 보낸 다음날 Marlow와 Jovita는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꾸렸다.


“우린 오늘 떠날 건데,

혹시 여기 더 머물 생각이야?

아니면 다른 호텔을 구할 생각이야?”


“응, 난 좀 있고 싶어.”


그리하여 나는 그 열쇠를 건네받았다.

다음 날엔 동네를 둘러보다가 염소를 잡고 있는 할아버지와 아들들을 구경하기도 했는데 귀엽게 생긴 할아버지는 멀뚱히 바라보고 있던 내게 난데없이 본인의 이름과 주소를 적어 건네 주었다. 또 바나나라고는 볼 수 없었던 '바나나 빌리지'라는 귀여운 이름의 옆 동네에 가보기도 했고 또 어떤 날엔 베르베르 족 출신이라는 한 어부에게서 베르베르어를 배우고 또 우리나라 말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또 어떤 날은 낮에 바다로 나가 바위틈에 붙어 있는 고동을 따와 그것을 재료 삼아 저녁으로 때울 스파게티를 만들기도 했다.

염소를 잡던 할아버지가 적어 준 쪽지와 버스티켓

문을 활짝 열고 파도소리를 음악 삼아 요리를 하고 있으면 냄새를 맡고 온 산양이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지나가기도 하고 하릴없이 어슬렁거리던 동네 개가 들어와 꼬리를 살랑거리다 가기도 하고 덩치 큰 고양이 녀석이 들어와 한참을 놀다 가기도 했다.

그렇게 동화 같은 집에서 삽화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나의 동선을 따라 이곳으로 놀러 온 Sara와 Max를 또 우연히 만나 내가 묵는 숙소로 초대했다. 우리는 에싸웨라의 호텔에서 있었던 일화를 안주 삼아 매일 밤 수다를 떨었다. 밤이면 바로 머리맡에서 연주하듯 가깝게 들리는 파도소리에 잠들었고 아침이면 천장에 달린 쇠고리에 삐걱거리는 창문을 고정시켜 놓고 눈꺼풀에서 발끝까지 햇살에게 위로받기도 했다.


점심 때는 해변에서 촉촉한 모래를 밟기도 하고 저녁이 되면 대서양으로 지는 노을을 바라볼 수 있는 곳. 동화 같은 시간을 보내게 해 준 타가줏.

볕을 쬐고 있던 히피스럽던 여행자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억지로 배낭을 다시 꾸리며 Malow에게서 받아 든 열쇠에 ‘I’ll be back”이라는 글자를 적어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집주인도 그 마음을 아는지 인심 좋게 웃음으로 받아 주었다.


언젠가 당신이 이곳에 가게 된다면 무척이나 그리워하고 있다는 나의 안부를 전해주길. 파도 소리에 취해 못 이기는 척 그리운 이에게 안부를 띄워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