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occo Diary / Rabat
이른 저녁, 약속대로 다시 이곳의 문을 두드렸다. 삐걱하며 낡은 문이 열리고 또 여러 개의 호기심 어린 눈들이 나를 반기었다. 나는 선물로 준비한 따끈따끈한 생 닭을 내밀었다. 문을 열어준 압두슬람이라는 친구는 약간 당황스러울 법도 한 나의 닭을 반갑게 받아 들고 부엌으로 갔다. 이곳 시장엔 생 닭을 파는 곳이 있다. 잘생긴 닭을 골라 손 짓으로 가리키면 우리에서 바로 꺼내 이슬람의 율법에 따라 ‘하나님의 이름으로’라는 기도와 함께 *할랄 (허용 된 것) 의식을 거쳐 도축을 하기 때문에 아직 채 온기가 가시지 않은 신선한 닭을 마련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머릿수 많은 이 집의 청년들을 위해 주머니를 털어 사간 생 닭은 다행히 센스 있는 방문 선물이 되어주었다. 게다가 오늘은 고향으로 내려갔었던 친구들이 하나 둘 다시 모이는 날이어서 휑휑하던 첫날과는 달리 그 넓은 집 곳곳이 북적이고 있었다.
하나 둘, 악수를 하고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하고 이름을 교환했지만 사실, 그 낯선 이름들을 바로 외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첫날부터 이름을 새긴 한 친구가 있었으니, 바로 예수라는 이름의 친구였다. 모로코식 발음으로는 Aissa(아이샤). 사실 예수라는 이름이 한국에서도 있을 법한 이름이지만 북아프리카의 무슬림 친구 이름이 예수라니 왠지 모를 경건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인자한 외모에 목소리도 좋은 친구가 요리까지 잘한다고 해서 우리는 그저 큰방에서 수다를 떨며 두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배가 고파올 즈음 아이샤는 모로코 전통 요리인 **Targine(따진)과 빵을 한 상 차려 내어왔다. 예수라는 이름의 친구가, 11명의 친구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나누어주다니. 나름의 감격이 있는 저녁 식사였다.
저녁을 먹는 동안 열명의 친구들이 앞다투어 질문을 쏟아냈다. South Korea라는 나라에 대한 질문에는 벽에 붙어 있던 세계 지도를 짚어가며 작은 섬나라처럼 분단된 이 나라에 대해 꽤 열성적으로 설명해주기도 했고 어떤 질문은 간단한 영어였지만 심오하기까지 해서 꽤 깊게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이전에는 정의 내려본 적 없는 중요한 질문들에 대해 답을 하면서 오히려 내 스스로를 돌아보고 다시 깨닫기도 하는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이곳으로 데려와 준 똑똑한 하산(Lahcen)과 뺀질뺀질해 보여도 스타일 좋은 목타르(Mohtar), 한국 여인에 관심이 많은 압두살람(Abedusalam), 동글동글한 요셉(Yossef), 이 집의 셰프인 예수, 아이샤(Aissa), 큰 눈만큼 마음도 예쁜 압두라힘(Abedulahim), 훤칠한 미남형의 아드난(Adnan), 제일 맏형 뻘인 노만(Noaman), 무뚝뚝하지만 늘 허를 찌르는 한마디 르드완(Rdwan),그리고 하산과 함께 처음 만났던 소심하지만 따뜻한 친구 후세인(Hucein). 이렇게. 북아프리카 끝 자락에 열 명의 친구들이 생긴 밤이었다. 그리고 지난 3.5개월간의 모로코 유랑을 잠시 멈추고 이들과 함께 한달 간 살아보기로 결정한 밤이기도 했다.
당신이 질문한다.
내가 나를 돌아본다.
당신이 질문한다.
내가 나를 발견한다.
당신이 질문한다.
내가 내게 대답한다.
01.14
*Halal(할랄)
이슬람 율법 하에서 무슬림이 먹고 쓸 수 있도록 허용된 제품을 총칭하는 용어다. 반면 술과 마약류처럼 정신을 흐리게 하는 것, 돼지고기ㆍ개ㆍ고양이 등의 동물, 자연사했거나 잔인하게 도살된 짐승의 고기 등과 같이 무슬림에게 금지된 음식은 물론 금지된 행동을 Haram(하람)이라 한다.
** Targine (따진)
따진 요리 전용으로 제작된 뾰족한 도자기 그릇에 스파이시한 향신료, 고기, 각종 채소를 넣고 뚜껑을 덮어 열기로 푹 익힌 요리. 고기로는 닭, 양, 쇠고기, 생선등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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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간의 출장으로 인해 글이 늦어졌습니다.
여행의 중반부에 들어섰으니 앞으로의 이야기는 조금 달라질 것 같습니다. 180일간의 모로코 여정에 함께 해주고 계신 한분 한분께 감사드립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