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첫 호텔

Morocco Diary / Marrakech

by 이인

카사블랑카 (Casablanca) 공항에 떨어진 시간은 밤 열 한시. 파리의 민박집 주인아저씨 말대로 마라케시 (Marrakech) 시내까지 곧장 택시를 타고 들어왔다. 택시에서 내려 홀로 새까만 밤을 헤집고 다니다가 불이 켜진 몇몇 호텔들을 발견하자 그제야 승모근까지 차 올라 있던 긴장이 조금 풀렸다.


까막눈처럼 더듬어 찾아온 이 낯선 땅에 어쨌거나 무사히 떨어졌으니 하루쯤은 스스로에게 좋은 숙소를 하사할 수도 있었지만 첫날부터 풀어지면 안 될 것 같은 괜한 생각이 들어 더 저렴한 곳을 찾아 나섰다. 대여섯 군데 호텔을 돌며 손짓 발짓 그리고 짧은 영어 단어로 흥정을 하다가 결국 옛 영화에나 나올 법한 작은 숙소를 골랐다. 작은 정사각형의 창문, 공동 샤워실, 침대 하나 달랑 놓인 100dh (한화 약 15000원) 짜리 방이었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묵직한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조용했다. 돌아보니 수용소 창문 같은 창틀로 흘러 들어온 푸른 달빛이 침대를 비추고 있었다. 그동안 바쁜 생활로 느낄 틈 없었던 고요함은 낯설었고 철저히 혼자라는 기분도 낯설었다. 모로코에서의 첫날 밤. 그 외엔 별다른 감흥을 느낄 틈도 없이 '벼룩이 있을지도 모르니 이불은 덮지 말아야지' 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그렇게 곯아 떨어져 버렸다.


마라케시에서의 첫 아침.

희끗희끗한 곱슬머리, 덥수룩한 수염에 작고 탄탄한 체구를 가진 주인은 동양의 이방인에게 그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내게 쥐어준 낡은 가이드 맵과 볼펜으로 그린 구불구불한 약도를 받아들자 소박한 그의 미소에 따듯한 진심이 전해졌다. 고마운 그 마음을 주머니에 챙겨 넣고 호텔 입구로 비스듬히 들어온 볕을 밟고 문을 나섰다.

마라케시의 호텔 주인이 직접 그려준 약도

밤과는 달랐다.

처음 만나는 모로코의 태양은 친절했고 시끌벅적한 소리와 낯선 언어들이 메디나 광장으로부터 뒤엉켜 들려왔다. 파리의 민박집 주인아저씨가 없는 게 없다고 말했던 마라케시의 자말프나 (Jemma el-Faa) 광장은 재주를 넘는 원숭이들, 알록달록한 전통 옷을 입은 물장수, 피리 소리에 맞춰 고개 내미는 코브라, 북 치는 아저씨 그리고 여유로운 유럽인들로 북적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온갖 타악기, 관악기 소리들이 둥둥거리며 메디나 광장을 채우고 있었고 미로처럼 구불구불 굽어진 시장 (Souk)에서는 원하기만 한다면 어디선가 램프의 지니라도 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곳은 그러니까 세상 희귀한 물건만 수집된 거대한 컬렉션 같았다.

자말프나 (Jemma el-Faa) 광장 - 이야기 나누는 노인들

이틀 째 되는 날엔 좀 더 싼 가격으로 식사를 해결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알랭 드 보통의 읽다만 그 책, 여행의 기술이라며 스스로를 기특해하기도 했다. 마라케시 시장 한복판에서 몇몇 할리우드 배우를 목격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쇼핑을 위해 이곳을 들린다고 했다. 하지만 나의 경우엔 쇼핑이 이 여행의 목적은 아니었기에 한국으로 돌아갈 때 다시 들릴 요량으로 예술의 마을이라는 에싸우에라(Essaouia)로 가기 위해 다시 짐을 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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