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OC DIARY / Spain
밤늦게 따리파(Tarifa)에 도착했다. 스페인의 최남단. 유럽의 최남단 마을 따리파. 불법체류자 신분을 피하려 급히 오른 길이다 보니 정보가 없어 따리파 항구 근처의 숙소에서 숙박비를 깎고 또 깎아서 겨우 하루를 묵었다. 해가 밝고 보니, 이 곳은 하루만 묵고 가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작은 항구도시였다. 나는 이곳 저곳을 구경하다가 아기 자기한 가게들 사이의 'LA MILONGUITA'라는 작은 레스토랑에 들어가 벼락치기로 적어온 스페인어와 메뉴를 한참 동안 번갈아 보며 '공부'하고 있었고, 레스토랑의 주인인 '호르케 킹 타나 (Jorge King Tana)'는 사진의 저 푸짐한 인상처럼 인심 좋게 하나하나 차근히 메뉴를 설명해 주었다.
저녁 시간이 되자, 그의 식당에는 근처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친구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흐르는 음악에 까딱까딱 손장단을 맞추고 있자니, 호르케는 'Oh, Do you like music?'라며 말을 걸어왔고 그렇게 모여든 친구들 사이에 끼어 나는 자연스레 '음악'을 주제로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 호르케는 내일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며, 혹시 숙소를 예약하지 않았다면 자기네 집에서 머물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계획에도 없던 스페인까지 오느라 썼던 배삯이며, 밥값에 꽤나 타격이 있었던 나는 염치없게도 또 그 호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호르케가 어머니에게 양해를 구하고 내어준 건 부엌 한 구석의 매트리스 달랑 하나, 퀴퀴한 담요 한 장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다음 날 아침, 호르케가 데려간 곳은 그의 또 다른 가게였다. 그는 자신의 성인 '킹 타나' 란 이름으로 레게 밴드를 가지고 있었고 낮에는 'black star'라는 이 레코드 가게를, 저녁에는 어제 처음 만났던 'La Milonguita'라는 작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캬. 멋진 인생이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가게로 한 남자가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호르케는 닮은데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를 반갑게 맞이하며 자신의 친형이라고 소개해 주었다. 형의 이름은 알바로 킹 타나 (Alvaro King Tana). 동생의 초대로 세비야에서 따리파로 내려왔다고 했다. 호르케의 음악을 위해 함께 뮤직비디오도 만든다는 알바로는 매일 새벽, 부자 독일인의 집을 짓는 일을 하고 있다며 낡은 골덴 바지의 먼지를 무심히 툭하고 털어냈다. 그렇게 닮지 않은 형제들 사이에서 띄엄띄염 영어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말로만 듣던 *씨에스타(Siesta) 시간이 되었고 나는 낮잠을 자러 간 형제들과 잠시 이별하고 문을 연 몇몇 상점을 들락거리며 미처 마치지 못한 눈요기로 시간을 보냈다.
저녁이 되자, 어젯밤처럼 호르케의 가게로 친구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호르케는 친구들과 꽤 유명한 뮤지션의 *플라멩코 공연을 보러 갈 예정이라며 내게 함께 가길 권했다. 명색이 보컬인데, 나 역시 공연은 보고 싶었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아 머뭇머뭇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서너 명의 친구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다 보니 이미 몸은 작은 플라멩코 공연장 앞에 도착해있었다. 눈치 빠른 호르케 때문인지, 따리파에서의 마지막 밤이란 걸 안 친구들이 공연 비며 맥주 비며 아낌없이 내어준 덕에 나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공연에만 푹 빠질 수 있었다. 기타를 치는 남자와 여자 뮤지션 한 명. 단촐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생에 처음 목도한 플라멩코 공연은 강렬했다. 색으로 치자면 붉은색이었고 만개하는 장미 같다가도 피처럼 진득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사람들은 캐스터네츠 소리에 맞추어 착착, 착착 함께 박자를 맞추었고 힘찬 발굴림과 함께 기타 선율을 타고 휘감는 여자의 목소리에는 한이랄까, 울음이 서려 있었지만 동시에 강인한 힘이 있었다.
● 녹음파일 _ https://soundcloud.com/rootlesscat/00-2007-04-12-tarifa_flamenco
짧은 여행이었다. 오래간만의 낯선 공기와, 여유로운 풍경 그리고 코를 자극했던 풍요로운 냄새는 그간 모로코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내게 새로운 활력을 주었다.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호사스러움에 듬뿍 취하고 또 친구들까지 만들었던, 관광이 아닌 여행. 그렇게 스페인에서의 2박 3일을 지내며 불법 체류자의 신분을 정리하고 나는 다시 모로코행 배에 올랐다. 내 요가 수업을 기다리는 학생들을 위해!
* 시에스타 (Siesta)
(특히 더운 나라들에서 점심시간 무렵의) 낮잠
* 플라멩코 : (flamenco)
에스파냐 남부의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예부터 전하여 오는 민요와 춤. 기타와 캐스터네츠 소리에 맞추어 손뼉을 치거나 발을 구르거나 하는 격렬한 리듬과 동작이 특색이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