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때 만난 어른과 20대 때 만난 어른
얼음들이 녹아지면
조금 더 따뜻한 노래가 나올 텐데
얼음들은 왜 그렇게 차가울까
차가울까요
-악동뮤지션의 노래 <얼음들>
요즘 화제의 프로그램 <내가 키운다>를 보고 있다. 솔로가 된 엄마들의 현실 육아를 보고 있자면 육퇴가 없다는 말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김나영과 양희은이 함께 나왔던 편은 너무 깊게 남아 아직도 한 번씩 생각난다. 어머님을 일찍 여인 김나영에게 양희은은 엄마 같은 사람이다. 양희은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거리를 잔뜩 사서 김나영 집에 놀러 간다. 그리고 아이들과 즐겁게 논다. 할머니처럼. 홀로 아이를 키우는, 어쩌면 외로웠을 김나영에게 든든하고 따뜻한 어른이 되어 준 양희은을 보면서 어른의 의미를 생각하게 됐다.
내가 10대 때 만난 어른은 상식밖에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모진 말을 하는 어른, 성적으로 무시하고, 꿈을 짓밟는 어른.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지 못하는 어른. 어린 나이여서 그들을 더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참 다양한 어른들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만난 선생님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녀는 내가 왼손으로 글 쓰는 것을 싫어했다. 나의 성장을 위해 왼손잡이를 반드시 고쳐야 한다며, 나는 수업 내내 오른손을 써야 했다. 왼손을 쓰다 걸리면 매를 맞았고, 받아쓰기는 당연히 꼴찌였다. 받아쓰기 시험에서 불러주는 단어를 오른손으로 꾹꾹 눌러쓰기 시작하면 다음 단어가 나왔다.
돌이켜보면 10대의 나에겐 분명 좋은 어른들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질게 느껴지는 어른들이 많았다. 어른들은 내게 악동뮤지션의 노래처럼 얼음들이었고, 성인이 되면 또 얼마나 어마 무시한 사람들이 있을지 걱정됐다.
그런데 대학에 간 후, 나는 의외로 괜찮은, 아니 정말 좋은 어른들을 많이 만났다.
젊은 교수님. 그분은 학생들의 말을 진심으로 경청하는 분이었다. 인생의 조언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교수님 실에는 항상 학생들을 위한 사탕이 있었다. 우리는 그 사탕이 먹고 싶어서 질문이 없는데 찾아가기도 했다. 화이트데이 때 수업 듣는 우리를 주겠다며 사탕을 한 움큼 가져오신 것도 내게 너무 귀하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은사님. 이 분은 내 마음속 진정한 힐러다.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그릇이 가장 크다. 행동을 하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은사님을 보면서 태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은사님은 내게 가장 따뜻한 밥을 지어주셨고, 마음 하나 바꾸면 이 세상이 얼마나 달리 보이는지 일깨워주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울했던 시절, 나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신, 내가 어떤 선택을 해도 나를 믿어주는 내 인생의 귀인이다. 이 분이 아니었다면 인생의 암흑기를 헤어나오기 어려웠을 거라 확신한다.
실장님. 지난 회사에서 실장님은 사람을 가장 중시하셨다.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하셨고, 맛있는 밥을 많이 사주셨다. 일을 할 때도 늘 유쾌하셨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 그건 정말 엄청난 능력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유쾌한 어른이 되는 건 쉬운 건 아니니까.
쓰고 보니 맛있는 거 줘서 좋아하는 것 같은데 하하. 그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어른이 돼서 좋은 어른을 많이 만났다. 내가 어릴 때 봤던 어른들은 정말 단면에 불과했다. 그것으로 전부를 판단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좋은 어른은 딱 하나의 기준으로 규정할 순 없는 것 같다. 어른들도 인간인지라 완전하고 완벽한 존재는 아니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어른이란 결국, 옆을 내어주는, 애정을 주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내가 못 받았으니까 너한테 고통을 줘야겠다도, 어차피 세상은 차가우니까 미리 경험해라도 아닌, 내가 못 받아서 그 아픔을 아니까 기꺼이 사랑하는 어른들. 나도 아파봤지만 그 방향은 아니더라, 힘들더라 며 자신의 경험에 근거해서 더 좋은 방향성을 가리키는 어른들. 그런 사람들이 좋은 어른 아닐까.
내 글은 마치 나는 어른이 아닌 것 마냥 보인다. 하하. 사실 내가 진짜 찐 어른인데 말이다. 여전히 어른이 되어가는 어른이지만 이 글을 쓴 이상 나도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따뜻하고, 밥 잘 사주는 어른. 내가 정말 좋아하는, 그런 어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