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서 글을 쓴다.
요즘은 글이 잘 안 써진다. 한번 주제를 잡고 쓰기 시작하면 막힘없던 투머치 토커(=나)에겐 꽤나 충격적인 일이다. 글감은 여러 개 서랍장에 쌓여있다. 나는 이제 이 짧은 글감들을 가지를 쳐서 하나의 글을 써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적절한 글이 나오질 않는다. 그래서 오늘 쓰는 글은, 머리를 쥐 뜯다 쓰게 된, 글에 대한 글이다.
사실 나는 어른이 되면 이렇게 글을 쓰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특히 지금처럼 누가 돈 한 푼 주지도 않는데 말 잘 듣는 사람처럼 꾸준히 쓰고 있으니 신기할 일이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나는 사람들 앞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개그맨 또는 0.1초 만에 눈물 톡~ 흘리는 배우가 되고 싶었지, 글 쓰는 사람을 동경했던 기억은 없다. 왠지 정적이고, 나를 드러내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글을 쓰면서 느끼는 건 반대다. 글은 나를 적절히 드러내는 도구와 같기 때문이다. 나의 전부 보여주는 것도,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것도 아닌, 내가 경험한 상황과 그때 느낀 감정, 하나의 에피소드를 적절히 드러낼 수 있는 것. 그게 글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나는 중학교 때 인터넷 소설 카페에서 꽤나 이름 알리던 작가였다.(물론 내 기준) 처음엔 인터넷 소설이라는 게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그러다 생일 때 만화책을 선물 받았다. 그 책은 여전히 레전드로 회자되는 귀여니 작가님의 <내 남자 친구에게> 만화책 버전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책을 읽으면서 울었다. 은혀잉엉ㅎ렁헝ㄹ하면서. 그 후 귀여니 작가님을 디깅 하면서 인터넷 소설의 존재를 알게 됐다.
인터넷 소설은 내 안에 있는 말캉한 창작욕을 자극했다. 곧바로 인터넷 소설 카페에 가입했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땐 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보다는 그냥 내가 상상하는 로맨스를 글로 써나가는 게 재밌었다. 이걸 읽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는지, 없는지 따위는 내게 중요한 지점이 아니었다. 즐겁고, 자유롭게 썼다.
하지만 중학생인 나에겐 친구가 최고였기에 다시 현생으로 돌아갔다. 그 후론 다이어리만 잠깐씩 쓰고, 글을 쓰지 않았다. 이 세상엔 글 말고도 재미있는 게 많다 보니 글을 써야겠다 생각한 적도 없다.
대학에 입학하고부터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중학교 땐 반휘얼과 하지연 같은 있지도 않은 인물들에 대한 글을 썼다면, 지금은 오롯이 나에 대한 글을 쓴다. 글을 쓰게 된 이유는 하나다. 내가 너무 투머치 토커라서. 옆사람한테 한정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데, 그러다간 내 주변 사람들이 나를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래서 불특정 다수를 택했다. 참고로 내 별명은 오찬호다.
근데 여기서 더 들어가 보면, 나는 각자의 짐을 감당하지 못해 글을 쓰는 것 같다. 각자의 짐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그냥 사람마다 그 누구도 이해해줄 수 없는 자기만의 고통을 말한다. 이건 너무 개인적인 영역이고, 나만이 온전히 느꼈기에 내가 느낀 슬픔을 나눌 순 있어도, 감당했던 고통마저 나눌 순 없다. 그런 자기만의 고통을, 나는 너무 힘들어서 글로 썼다. 그냥 안고 살기엔 외롭고, 억울하니까.
그래서 그런지 내 글은 참 감정적이다. 그리고 정말로 나를 닮았다. 보통 요약하면 [좋았다. 아팠다. 기뻤다. 슬펐다. 감동받았다] 이 다섯 말로 설명할 수 있다. 정유정 작가님은 감정을 공부할수록, 인간은 참 외로운 존재라는 결론을 얻는다고 했다. 오랜 시간 동안 인간에 대해 탐구했을 사람이 이런 말을 해주니 웃음이 났다. 나만 외로운 건 아니구나.. 하는 마음에. 오늘 쓴 글도 외로워서 머리 쥐 뜯어가며 썼는지도 모르겠다.
글이 안 써져서 글에 대한 글을 썼는데, 다행히 만족스러운 글 한편이 나왔다. 내가 생각보다 글을 쓰면서 많이 치유받은 것 같아 앞으로도 놓지 않고 써야겠다. 이번 주는 이 글 한편 덕에 잘 보낸 한주가 될 것임을 안다. 글에 대한 글쓰기, 끝!
아 그리고 고독한 존재여! 외로우면 글을 쓰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