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글쓰는 사람
"넌 집에서 밥 먹고 블로그만 하지"
얼마 전 친구에게서 들었던 말이다. '이 시대의 진정한 투머치토커 오찬호'라는 별명답게 나는 블로그에서도 투머치 토킹 중이다. 친구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라 깔깔 웃었다.
어릴 때는 내가 성인이 된 후 자발적으로 글을 쓸 것이라 상상도 못 했다. 난 기본적으로 글과 친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매해 새로운 다이어리를 구매하긴 했다. 하지만 나의 다이어리는 마치 수학의 정석에서 집합 부분만 너덜너덜한 것처럼 앞부분만 좀 채워져 있을 뿐이었다.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건 대학에 입학하고부터였다. 10대 땐 문제를 겪으면 친구들에게 달려가 이야기하면 됐다. 그런데 20살 이후부터 겪는 갈등은 몇 마디 말로 풀어내기엔 한계가 있었다. 인간은 굉장히 입체적이고, 문제의 대부분은 복잡다단해 설명하기도 힘들었다. 또, 각자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타인에게 하는 하소연이 어느 순간 내 입장을 설득하는 과정이 되어버리곤 했다. 이러한 상황에 지쳤을 때,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쓸 때 나는 누군가에게 내 입장을 설득할 필요도 없었고, 감정과 상황 그대로를 기록하면 됐다. 처음엔 그게 좋았다. 그런데 내면의 추상적인 감정들을 구체적이고 눈에 보이는 형태로 변환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생각을 압도했던 걱정과 갈등들이 쓰고 보니 단 2줄로 끝이 나곤 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그렇게 걱정할 문제도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머릿속 떠다니는 어마 무시한 생각들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글쓰기는 상상에 압도되지 않고 실체를 바라보는 실질적 도구였다.
글쓰기가 만약 내 삶의 감정적 부분만 해결해줬다면, 나는 지금까지 글쓰기를 하지 못 했을 것이다. 글쓰기는 회사생활에서 더 큰 도움이 되었다. 회사에서 대부분의 일은 글의 형태로 진행된다. 온라인에서 고객에게 제품을 설명할 때, 함께 일하는 동료를 설득할 때 모두 글을 사용한다. 이때 보고서, 엑셀 파일 하나만으로 내 머릿속 그림을 상대의 머리에도 그려지게 만들어야 한다. 굉장히 높은 수준의 글쓰기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진선 작가님의 <사수가 없어도 괜찮습니다>에서 역시 글쓰기를 강조하는데 그 이유가 참 와닿고 흥미로웠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수치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능력을 기르게 된다. 일을 진행하는 도중 문제를 극복하는 과정, 커뮤니케이션 능력, 일에 대한 철학과 실제 내가 일을 대하는 태도 등. 이는 결괏값으로만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런 것들을 기록하는 일은 내가 변화해 온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어떤 부분을 채워나가야 하는지 파악할 수 있게 도와준다. 특히 온라인에서의 글쓰기는 나와 비슷한 결의 사람들을 발견하는 좋은 기회로 닿을 수도 있다.
결국 꾸준히 글을 씀으로써 개인적인 삶의 문제 해결 능력도 기르고, 보고서 작성 실력도 늘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거야 말로 님도 보고 뽕도 따는 스킬!
꾸준히 글을 쓰면서 나는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별 거 아닌 하루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나는 평소 어떤 것을 좋아하고, 감탄하는지, 나의 깊은 취약함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글쓰기 덕에 배운 것이 많다. 글쓰기는 삶이라는 지도에 발자국을 찍는 것과 같다. 내가 쓴 과거의 글을 길동무 삼아 내가 온 길과 가야 할 길을 찾아 나서게 도와준다.
글쓰기는 그렇게 나의 삶을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