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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별 Feb 05. 2022

'나'라는 안식처

일상을 지키는 사람

주말이다. 전날 밤 친구랑 이야기하며 먹었던 케이크를 마저 먹고, 환기를 한다. 이불을 정리하고, 넷플릭스를 보며 설거지를 한다. 빨래를 돌리고, 방을 치운다. 갓생도 이런 갓생이 없다.


부지런한  모습에 아침부터 감동받았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변했지? 로션 뚜껑도 제대로 덮지 않고, 머리카락이 막힐 때까지 욕실을 사용했던 나인데. 더러운 집에서도 더럽다는 자각 없이 지낼  있던 나인데.

나도 모르는 내가 있다




이불을 개기 시작했다


어릴  가장 이해할  없는  이불을 개는 것이었다. "어차피 저녁에 다시  건데  그래야 하죠?"라는 기적의 논리를 지녔던 당시에는 투덜대며 정리하는 시늉은 했으나 그마저도 얼마  갔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알게 됐다. 이불을 개는 무의미해 보이는 행위는 일상을 지키는 일이 될 수 있음을. 저녁에 집에 와서 이 이불을 사용할, 미래의 나를 배려하는 행위임을. 이와 비슷한 세트상품으로 다시 더러워질 집 정리하기, 어차피 내일 입을 패딩 옷장에 넣기, 금방 쌓일 머리카락을 열심히 줍기 등이 있다. 모두 내가 나를 위해 하는 일이다.




나를 위한 행동

충동구매를 할 때, 나를 위한 것이라는 문구를 붙여 본다. 그럼 어느 정도 합리화가 된다. 고생하는 나를 위한 구매!


그런데 나를 위한 행동은 모르고 살았다. 옆에 있는 타인에겐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좋은 말 하고, 배려했을 것 같은데 스스로에겐 그닥 친절한 사람이 못 됐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항상 두려웠다. 특히 20대 초반 폭식증을 앓았을 땐 그 공포가 극도로 심해 내 일상의 대부분은 1일 이상의 약속이나 집에서 폭식하기로 가득 차 있었다. 타인과의 관계는 무너지고 세워가며 적절하게 배워갔던 것 같은데, 나는 내가 너무 어려웠다.


나와의 관계도 일회성처럼 느껴지곤 했다.  지나갈 인연처럼.




지속 가능한 삶

그런데 이런, 지금까지 살아있다. 심지어는 적당히 터득된 삶의 노하우들과 개선된 관계들 덕에 인생이 괜찮아졌다. 이제는 오래 살고 싶은 마음마저 생겨났다. 그렇게 되어버리니 스스로와의 관계를 계속 모른 척하며 살 수 없어졌다. 가장 먼저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 했다.


그때 영감을 준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집에 가면 예쁜 식기구가 있고, 집도 깔끔하다. 머리카락이 쌓이지 않은, 쓰레기가 넘치지 않는 곳, 그 쾌적함에 반했다. 그 집은 한마디로 나를 위한 행동이 묻어나는 집이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날부터 '어차피 내가  거니까 상관없다' 식의 태도가 아니라, '나를 위한 거니까'.라는 태도로 스스로를 대하기 시작했다. 귀찮은 몸을 이끌고 청소도 하고, 머리카락도 비워줬다. 이전까지 앓아누울 때까지 통증을 참았다면 직접 병원도 갔다. 건조함에 간지러울 때도 그냥 긁고 넘어갔다면 로션을 바르기 시작했다. 요즘엔 하루 만보씩 걸어주는 건강한 습관도 익히고 있다.


이런 귀찮음은 쌓이고 보니 나를 지키는 일상이 되었다. 밖에서 치여도  일상은 굳건할  있었다. 나는 오늘도 만보를 걸을 거고, 나를 위해 이불을  거니까.


혼자 있는 시간 나를 위한 태도로 살아가니  자신에게 ''라는 믿을  있는 안식처 긴 것이다.


이제는 한순간의 기쁨과 슬픔이 전부가 아님을 안다. 내게는 앞으로가 존재한다는 것도. 그렇기에 오늘도 나를 위해 부지런히 움직여본다.


, 일상,

소중한  삶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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