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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별 Aug 15. 2022

할 수 있다고 말해주세요

어쩌면 무모한 긍정

친구와 힐링하자고 떠난 템플스테이 마지막 날이었다.

열명 정도 앉아있는 참여자들에게 스님은 말했다.


"마흔 전까지는 모든 배움이 끝나 있어야 돼. 마흔 이후에는 배울 수 없는 상태가 되거든."


맞은편에 있던 언니가 말했다.


"저는 낼모레 마흔인데.. 뭘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네요"


자조적인 언니의 말을 들으며 "아니에요! 언니 할 수 있어요!"라고 당장이라도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마흔이 되지 않은 내가 뭘 알겠나 싶어 꾹 참았다.


그럼에도 나는 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논리적인 이유는 없다. 그냥. 그냥.








물론 알고 있다.

열정, 체력 같은 건 어쩌면 소진되는 것에 가깝다는 것을. 아직 20대인 나도 체력이 20대 초반과는 다르다는 것을 한 번씩 느끼곤 하니까. 또한 현실에는 사회적인 시간과 시선이 있어 단순히 내가 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는 해낼 수 없다는 것도.



그런데 이제는 '할 수 없다'는 말에 신물이 난 것 같다. 나이에, 환경에 맞추어 선택을 내려야 하는 모든 것들에 염증이 생겼다.



19살 전공을 고민할 때 어른들은 현재의 나에게 맞추어 가장 현실적인 답을 줬다. 너의 형편상 고향을 떠나는 것은 무리가 있고, 가장 가까운 대학에 입학해 빨리 시험을 보고 돈을 벌라는 대답이었다.


그 삶은 가장 빨리, 그리고 안전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고향을 떠났고, 새로운 세계로 갔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돈도 많이 썼고, 자주 상처를 받았으며, 예상하지 못한 일들로 괴롭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무모한 선택을 스스로 감내함으로써 조금 더 자립한 어른이 되었다. 새로운 세상은 불행만큼 신선한 가치를 주곤 했고,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용기와 자존, 인연을 선물했다. 심지어는 새로운 욕망마저도.









여전히 나는 '할 수 있다'는 말을 일기에 쓴다. 현실적으로 딱히 이루어지기 어려울 수도 있는, 남이 보면 비웃을 욕망들을 성실히 담는다.





자기 전에 자극 글귀를 찾는 것도

새로운 도전에 대한 말을 굳이 아끼는 것도

타인의 이해할 수 없는 선택들에 마음을 담아 응원을 보내는 것도


결국 내가 가장 듣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잘하고 있다. 잘 살고 있어.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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