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 평가 말고, 굿 리스너

영어로 소통 잘하는 방법

by 꿀별

팀홀튼은 커피와 도넛을 파는 패스트푸드점이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할 땐 1분 1초가 생명이다. 친구의 10분 지각은 아무렴 어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다. 반면, 패스트푸드점에서 음식의 10분 지각은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얼마 전 한 손님의 주문을 받고, 샌드위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구워져 있어야 할 포테이토 웨지가 없었다. 3분 만에 완성되어 나갈 음식이 10분 이상 지체되게 생긴 거다.


지금 생각해 보면 손님에게 10분 더 기다려줄 수 있겠니 하고 차분히 물어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신없는 그곳에서 마음이 다급해진 나는 일단 손님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포테이토 웨지 대신 해쉬브라운을 받는 건 어때?”, “내가 환불해 줄까?”하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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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횡설수설 대안을 전달하는 내게, 손님은 “Pardon me?”하며 되물었다. 내 마음이 급한 만큼 손님도 점점 흥분하는 것처럼 보였다. 영어로 말하자니 상황 정리는 명확히 안 되고, “Is it okay?”하며 되묻기만 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별로였다.


시험으로 영어를 가장 많이 접했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영어는 소통의 영역처럼 느껴지기보다는, 정답의 영역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들을 때는 듣기 평가, 말할 때는 말하기 평가 같달까.


원활한 대화는 내가 해주고 싶은 바를 무조건 적으로 제시하기보다 상대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며 완성된다. 그 손님에게도 할 말을 때려 맞추지 않고, 그녀가 원하는 바를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들어주었으면 더 좋았었을 텐데 싶은 아쉬움이 있다.




외국 생활을 하며 다양한 룸메들을 만났다. 외국인 룸메들과는 주로 영어로 소통해야 했다. 어떤 룸메와의 대화는 짧은 시간임에도 오래 마음에 남았다. 반면, 어떤 룸메와의 대화는 제법 시간을 함께 했음에도 깊게 남겼다는 느낌이 적었다.


마음 깊게 대화했다는 느낌을 준 룸메들은 영어로 공통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기보다는 나의 의견을 묻고, 기다리고, 들어줬다.


최근 빅토리아 여행에서 잠깐 스몰톡을 했던 여행객이 있었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또 다른 배낭을 손에 쥐고 있던 그녀는 캘리포니아 출신이고, 친구의 결혼식 방문을 위해 빅토리아에 왔었다. 모국어가 영어인지라 나는 그녀의 말을 캐치하기 어려웠다. 내가 그녀에게 “Could you tell me one more?” 하면, 그녀는 기꺼이 자신을 설명했다. 그렇게 그녀가 여행을 좋아하고, 일본에 거주한 적이 있으며, 요즘은 다이어리를 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말이 끝나면 내게 나에 대한 질문을 하였고, 느린 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더듬더듬, 버벅대며 전달하는 영어를 가만히 듣고, 궁금한 게 생기면 다시 물어봤다. 그렇게 우리는 짧은 시간이지만 진정으로 대화한 것 같은 시간을 보냈다.


상대가 나의 말에 귀 기울여줄 때 마음이 평온해지고,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영어로 소통하며 이런 여유를 찾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지만, 정답을 맞히기 위해 다짜고짜 쏟아내기보다는 진정한 소통으로 영어를 활용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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