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공짜지만 그래서 아낍니다
“아 진짜 여자 노홍철 같아요.”
초등학생 때였나. 미용실에서 야불야불 떠들고 있을 때였다. 지금보다 파워 E였던 시절. 나는 처음 본 사람 앞에서 혼자 야불야불 떠드는 재주가 있었다. 그런 내게 미용실 언니가 해준 말이었다. (당시 노홍철 님은 무한도전에서 굉장히 시끄러운 캐릭터를 맡고 계셨었다.)
꽤나 말 많은 사람으로 살아오다 인생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계기로 점점 말을 아끼게 되었다.
최근 넷플릭스 다큐를 보다 인상 깊은 대사가 있었다.
심리 치료사에게 돈을 내고 문제를 이야기하면 치료사는 듣기만 하죠. 반면 친구 놈들은 조언을 해요. 친구는 그냥 들어줬으면 싶고, 심리치료사는 조언을 해줬으면 싶은데 말이죠.
비슷한 경험을 한 적 있던 터라 픽- 웃음이 나왔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무겁게 꺼냈던 이야기는 효율적이고 확고한 조언으로 끝난 경험. 반면 전문가는 그냥 듣고만 있어 속으로 ‘어랏..? 그냥 이렇게 말하는 게 맞나..?’ 했던 일.
하지만 나 역시 꽤나 효율적이고, 확실한 조언으로 그들을 위로했었을 테다.(미안미안)
나이를 먹을수록 장착되는 스킬 중 하나가 말을 아끼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경험과 마음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걸 조금씩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또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그런 나를 이해해주길 바란달까.
예전에 히키코모리 다큐를 본 적이 있다.(나는 다큐를 참 좋아한다)
20대 초반 집에만 갇혀 히키코모리 생활을 한 남성이 등장했다. 그 시절의 나 역시 숨어 살고 싶다는 충동을 자주 느꼈기에 공감하며 다큐를 봤다.
어느 날 학교에 너무 안 나오는 그가 걱정 돼 동기가 집에 놀러 왔다. 히키코모리였던 그의 집은 상당히 더럽게 어지러져있었다.
망가진 집을 본 동기는 펑펑 울었다. 아마 동기는 친구가 이런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도 속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날 그는 방에서 나오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만약 동기가 평균적인 20대는 어떻게 사는지, 집이 왜 이런 모양이냐며 질타했다면 그는 밖으로 나올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수 없이 많은 합리적 방법들이 범람하는 세상 속에서 내가 상대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그저 들어주고, 공감하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