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행복이 단순한 것이라 했나요
영화 <탈주>를 봤다. 누가 나오는지도 모르는 채로, 같이 일하는 분과 영화관으로 향했다. 동료가 사준 달콤반 어니언반 팝콘을 우적우적 먹으며 영화에 집중했다.
이제훈이 나오길래 와.. 했고, 다음으로 구교환이 나오길래 우와.. 했다. 아니 근데 송강까지 나올 줄이야.
WOW
영화는 흔한 북한 탈출기 같기도 했고, 밝지만 뒤틀린 연극 같기도 했다. 배우 구교환의 깨알 연기가 좋았다.
여기서부터는 스포가 있다.
영화가 끝나자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감독은 왜 영화의 제목을
'탈주'라고 지었을까?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우리는 보통 생각한다. '여기서 벗어나면..', '이걸 그만두면..' 그래서인지 행복으로 가는 길은 '탈출'에 가까운 것처럼 느껴진다.
'탈출' 게임은 있지만, '탈주' 게임은 없다. '탈출해!'라는 말은 있어도, '탈주해!'라는 말은 없다. 탈주는 자력이 더 요구되는 단어다. 탈주는 행복으로 가는 길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가까스로 탈출한 후에 한 가지를 깨달았다. 그로 인한 행복은 아주 잠깐이라는 것을. 나중에는 그 탈출이 진정 행복으로 가는 길이었는지, 스스로에게 되묻게 되는 순간이 왔다.
반면, 탈주는 계속 이어지는 느낌이 있다. 마치 영화 속 이제훈이 남한이라는 행복으로 가기 위해 별 고생과 고난을 넘지만, 또다시 역경에 맞닥뜨리는 것처럼. 그가 원하는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행복은 그런 자력이 필요하다.
최근에 친구와 인간의 행복이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 이야기했다. 행복하려면 꽉 채워진 냉장고나 매일의 휴가가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행복은 열심히 일해 배고파진 채로 먹는 따끈한 밥, 바쁘게 일하다 맞이하는 꿀 같은 휴가, 사람들 속에 부대껴지낸 끝에 홀로 맞이하는 고요한 시간에서 찾아오곤 한다.
행복은 단순한 것이라 하지만, 사실 굉장히 복잡하고 세세한 상황들이 켜켜이 쌓여야 한다.
그렇기에 행복으로 가는 길은 단순히 무언가를 벗어나는 탈출이 아니다. 매일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맞이하는 탈주에 가깝다. 등이 땀으로 가득 찰 때까지 뛰거나, 걷거나. 그런 미래를 희망하기에 오늘도 일을 하고, 고민하는 거니까. 살아가는 거니까.
요즘은 글을 쓰다가 '내가 잘 쓰고 있나' 이런 생각을 한다. 이럴땐 나로부터 탈출하고 싶다. 근데 결국 매일 탈주해야 나아지겠지.
각자의 탈주를 응원한다.
그리고 이내 행복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