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백지를 다루는 법
다시 내 눈앞에 백지가 놓였다.
시작은 작년 12월 말쯤 나를 조심스럽게 부른 본부장님이었다. 그는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1월 말까지만 근무해 달라고 했다. 권고사직이었다.
놀랍기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확인받는 느낌이었다. 회사의 공기가 달라졌음은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으니까. 미안함으로 가득한 본부장님의 얼굴이 보였다. 지난 1년을 함께 일해서일까. 그의 미안함을 진심이라 생각했다. 나는 알겠다고 이야기했다.
솔직히 말하면, 내심 좋았다. 무슨 자신감인가 싶기도 하지만, 사실 나는 내가 진작에 회사를 나왔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그 기록은 작년에 하루도 빠짐없이 썼던 일기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지루하다’, ‘답답하다’는 내용으로 종종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회사를 나와 홀로 있는 스스로가 두려웠다. 다시 돈을 벌지 못하면 어떡하지 같은 두려움, 다른 사람들은 재빠르게 성장하고 있을 텐데 하는 불안이 있었다.
손종원 세프를 좋아한다. 셰프로서 완벽함과 창의성을 추구하며 일하지만, 넘치는 칭찬에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매력인 사람. 하지만 내가 그를 진짜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순수한 눈 때문이다. 진심인 사람들은 눈빛부터 다르니까.
어느 날 그가 찍힌 사진, 그 안에 담긴 진지한 눈을 보며 생각했다. 나도 저런 눈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지금의 나는 왜 저런 눈빛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마음이었다. 내 마음이 순수한 기쁨과 재미 보다 다른 곳에 쏠려있었다. 그러니 새로 나오는 기술은 부담스러웠고, AI가 능숙하게 그려내는 그래픽을 보면 마음 한켠이 답답해졌다.
나는 디자인 툴을 능숙하게 다루는 툴러가 되고 싶어 디자인 일을 시작했나? 그래서 내가 능숙하게 쓰는 툴을 더 능숙하게 사용하는 AI가 등장해서 두려운 것인가?
나는 내가 이 일을 왜 시작했는지, 어떤 강점을 가지고 있는지, 무엇보다 어떤 꿈을 품고 있는지 잊었다. 대신 오늘 하루의 벌이에 급급했다.
벌이에만 집중하면 그 후의 것들은 계산의 연속이다. 잠깐 들어오는 외주에도 어떤 완성도를 더할지, 어떤 방향이 효과적일지 고민하지 않게 된다. 딱 내가 받을 수 있는 시급만큼만 일한다.
그렇게 잠깐의 돈은 벌어도 진짜 실력, 지속하는 동기는 후퇴한다.
세상이 변해서일까.
지금은 느끼고 있다. 삶은 냅다 올라타고 보는 사다리는 아니라고. 불안한 마음에 도떼기 시장에서 물건을 가져가듯 일단 손부터 뻗고 보는 일이 내 삶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주진 못할 거라고.
그렇기에 무지성으로 이력서를 돌리고, 가까스로 몸을 눕혀보고 싶지 않다. 조급한 마음에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선택은 비슷한 답답함만 가져다 줄테니까.
대신 휴학했던 때 던진 질문처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디에 마음이 움직이고, 어떤 삶을 아름답다고 느끼는지 알아가고 싶다. 여전히 찾아가는 그 무엇들을 정직히 마주 보고 싶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에게
다시 멈춤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