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꿀별 Apr 25. 2020

창작의 고통보다 무서운 한 가지

그냥 하기 두려운 사람의 일기

어릴 때 내 인생을 바꾼 생일선물이 있었다. 바로 친구로부터 받은 <내 남자 친구에게> 만화책! 이 책의 원작은 귀여니 작가님의 인터넷 소설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진짜 눈물 콧물 다 뺐다. 인터넷 소설이야 워낙 지나간 유행이다 보니 모르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만 해도 그만한 즐거움이 없었다.


그 후 나는 이 책을 계기로 인터넷 소설에 빠지게 되었다. <담배 피는 공주님>부터 <나쁜 남자가 끌리는 이유> 같은 정- 말 말도 안되는 사랑이야기를 탐독하게 된 것이다. 고작 14살정도였던 내게 그 자극적인 스토리가 준 떨림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솔직히 말하면 현실에서도 따라한적이 있을 정도였다. 예를들면, <담배피는 공주님>같은 경우 주인공 설공단이 전화를 받을 때, "공단이 전화 받았습니다-" 같은 소리를 해댔는데, 당시의 나는 그게 또 멋져보였다. 그래서 그 후 친구들이나 가족들한테 전화를 받을 때 마다 "묘미 전화받았습니다- "라는 지금이었다면 상상도 못할 말을 하곤 했다.


사족이 참- 길었다. 아무튼 그렇게 글을 한참 탐독하던 나는 결국 인터넷 소설 카페에 가입해서 글을 쓰기까지에 이르렀다. 당시 컴퓨터 앞에 30분 이상 앉아있으면 바보가 된다 생각했던 엄마 덕분에 제 2의 귀여니 탄생까지는 다다를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꽤 유명한 작가였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말해도 웃겼다. 브런치같이 소중한 플랫폼에 'ㅋㅋㅋ'따위 남발하고 싶지 않지만, 쨌든 정말 그랬다.


솔직히 많은 시간이 흐른 기억이지만 그때의 나는 참 자유롭고 행복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글을 쓸 때 남들의 시선따위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누군가를 위해 만든 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온전히 나의 재미를 위한 작품이었다. 물론 종종 찾아오는 변덕에 계속 엎고 쓰길 반복했지만 말이다.


다음웹툰 공모전이 열렸다. 누구나 마음 속 한구석에 사표를 지니고 살 듯, 내 마음 한구석에는 내가 세상에 내 보이고 싶은 소재가 있었다. 이 소재를 이번 기회를 통해 해소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방구석에 앉아 가만히 이야기를 전개해보니 정말 아무것도 안써지는 거다. 정말 말도 안되게 글이 써지지 않았다.



내 머릿 속의 원숭이는 외쳤다. "너가 이야기를 쓸 자격이나 있니?", "이건 다른 사람들이 싫어할거야 확신해!" 이런 문구들이 머릿 속에서 소용돌이 쳤다. 한참을 쓰다 지우길 반복하고, 다른 소재들을 뒤져보다 결국 포기하였다. 물론 지원은 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스토리를 만든다는 게 정말 쉬운일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참 어른이 돼서 뭔가를 한다는 것은 쉬운 게 아닌 거 같다. 어릴 때는 어떤 보상이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특히나 외적인 보상을 염두해 두고 시도하기 보다는 그냥 내가 해보고 싶으니까에 초점을 맞추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기회비용의 관점에서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특히 나는 이제 대학교 4학년이고 취업준비를 코앞에 두고 있으니 더 그런 것 같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내가 지금 이걸 만드는 것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면 달리 위대한 걸 하지도 않을 것 같다는 거다. 분명 방에 누워 넷플릭스를 보는 것 말고 다른 걸 할 것 같지 않다. 그런데도 계속 계산하고 있는 거다. 정말 나는 실패하고 싶지 않는가보다. 내가 24살이 될 때 까지 배운 것은 두려워 하는 방법,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자격을 따지는 방법 정도나 되나보다.


뭐 앞서 이런 자기비하적인 소리를 했다. 오늘 내 말투 굉장히 시니컬하다. 사실 지금 좀 예민한 것 같다. 방금은 친구들과 함께 매일 떠들었던 단톡방도 나갔다. 잠시 한달간 수련을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친구들이 아무도 붙잡지 않은 거 보면.. 진정한 수련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하


참 내 머리와 내 손에 의지해서 뭔가를 만든다는 게 쉽지 않다. 계속해서 자격을 따지고, 가격을 따지게 된다. 그냥 혀 딱 깨물고 마이웨이 해봐라 좀!! 이걸로 누가 세상을 바꾸자는 것도 아니고, 완성만 해라 좀!! 니 손으로 똥을 만들어도 좋다. 내가 허락한다!!


라는 나의 자조적인 이야기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예스맨 탈출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