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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별 Jul 26. 2020

엄마를 만화로 그리기 시작했다

나의 트라우마에 대하여

너는 식구가 몇이야?


내가 가장 싫어했던, 지금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질문이다. 나 역시도 무심코 남에게 쉽게 던지는 질문이지만 나는 이 질문이 정- 말 싫다. 10대 땐 아빠가 계시지 않았기에 이를 어떻게 포장해야 할지 고민했고, 지금은 엄마가 계시지 않기에 이를 어떻게 숨겨야 할지 고민한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아주 어릴 때 이혼하셨다. 나는 엄마와 오빠, 나까지 셋이서 지내게 됐다. 우리 셋은 솔직히 불행했다. 나는 10대 시절, 엄마한텐 너무 미안하지만, 행복했던 기억이 없다. 할머니의 폭력과 폭언도, 할아버지의 고집도, 종종 나에게 날아오는 가족들의 질타도 그냥 다 싫었다. 그 속에서 자라는 나도 싫었다. 매일 밤 나는 왜 태어난 건지 물었다.


엄마는 7년간 투병생활을 하셨다. 그리고 결국 내가 19살이 되던 해에 돌아가셨다. 보호자가 죽어가는 모습과 죽음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여전히 나에게 짙은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기억들이다.


지금 나는 이런 기억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첫 시작은 인스타툰이었다. 인스타툰을 통해 덤덤히 나와 엄마이야기를 그려나가는 중이다. 이유가 뭘까? 굳이 나의 아팠던 기억들을 세상에 꺼내 보이는 게 과연 나한테 도움이 될까? 굳이 이렇게 쓰고, 그리는 이유가 뭘까?


보통 콘티를 기반으로 그리는데 요즘은 메모장에 쓰고 바로 옮기고 있어요


 외로움이다.

엄마가 안 계시다는 것은 내게 너무나도 큰 외로움을 안겨주었다. 이 세상 어디에도 내가 비빌 곳이 없다는 게, 나에게 이유 없이 무조건적으로 사랑을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게 너무 외로웠다. 친구들한테 그 어떤 이야기를 해도 아무한테도 공감을 얻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친구들은 모두 엄마가 있었으니까 이런 외로움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나도 부모가 없는 게 이렇게 외로운 건지 몰랐다.


잊혀짐이다.

나는 원래 그림 그리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서른 살 정도 되면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내 만화에 녹여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깨닫게 됐다. 우선 나의 서른 살이 올지 안 올진 모르는 거고, 엄마에 대한 내 감정과 기억들은 내가 시간이 지날수록 변화한다는 거다. 그건 덜 고통스러워질 수도 있는 거고, 어쩌면 미화될 수도 있는 거고, 말 그대로 잊게될 수도 있는 거다. 솔직히 지금 4년이 지났는데, 벌써부터 내 감정이 그때의 기억들에서 벗어나고 있음이 느껴진다. 어떻게 보면 좋은 거다. 트라우마에서 멀어지는 거니까. 그런데 우리 엄마를 잊고 싶진 않다. 내가 이야기로라도 우리 엄마를 기억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다.


벗어남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나에게 가정사는 절대 꺼내지 못할 비밀이었다. 나는 누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싫었고, 나도 최대한 자제하면서 살았다. 마치 뭔가를 들키면 안 되는 비밀인 것처럼 매번 숨기고, 다른 이야기로 말을 돌리며 살았다. 솔직히 지금도? 엉망이다. 솔직하게, 누군가에게 진솔하게 이야기하기 어렵다. 최대한 피한다. 그래도 누군가에겐 덤덤히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 부분은 굉장히 복합적인 감정인 것 같다.



만화로 가족들을 그릴 때 어려움이 많다. 그림 자체가 어렵기보다는 인간이기 때문에 나는 물론 우리 가족들까지 인성에 대해 의심하는 경우가 생긴다ㅋㅋㅋ그럴 땐 누구나 이런 이기적인 모습이 있잖아요? 하며 덧붙이고 싶은 지경이다. 하지만 그런 과정은 최대한 자제하려 한다. 아니면 그냥 생략하려 한다. 누군가의 폭력이나 폭언은 결국 실제로 내가 겪었던 일들이니까. 그냥 그뿐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작업들은 누가 정말 나빴다는 고발보단, 내가 겪은 상처들을 정말 있는 그대로- 어쩌면 그때보단 포장해서 전하는 거뿐이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울지 않았다. 그냥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때 내가 엄마를 마음속에 단단히 묻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묻은 게 아니라 그냥 담요로 덮어놓은 것임을 깨달았다. 엄마는 내 마음속에서 정리되지 않은 채 그저 담요로 덮여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내 마음을 돌아보거나 치유하는 과정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담요에서 엄마를 드러내기로 했다. 그리고 나의 낡은 기억들을 해 집어 내가 겪은 상처와 내 안에 남은 트라우마를 직면하기로 했다. 그렇게 과거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https://www.instagram.com/rootoon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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