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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별 Mar 21. 2021

망각이라는 축복

3년 전 메모가 내게 준 위로

쌓여있는 메모를 오랜만에 정리했다. 늘 그렇듯 정리하다 말았지만, 오늘은 제일 과거에 썼던 글부터 봤다. 가장 첫 글은 2018년, 무려 3년 전의 이야기였다. 보면서 흥미로웠다. 그때의 나는 이런 고민을 했구나.. 아니 잠깐, 이 고민, 지금이랑 큰 차이가 없잖아?


3년전에 쓴 메모들


고민은 반복의 연속인가보다. 어제 썼다 해도 믿을 수 있겠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중심을 잡고, 하고싶은 일을 하는게 가장 중요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렇게 조금은 잊혀진 기억들과 여전히 반복되는 다짐들을 번갈아 보다, 이 글을 보았다.


친구 이름은 가렸다ㅋㅋㅋㅋㅋ


3년전, 편입을 결심할 때 쓴 글이다. 지금 기억해도 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말렸는데, 그 중 정말 가까운 친구도 말렸나보다. 근데 신기한건 나는 이 일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정확히는 저 친구도 나를 말렸는지 기억이 사라졌다ㅋㅋ(요녀니..-_-^) 그때 당시에는 서러웠으니까 적었을 텐데 말이다.


이 글을 보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와! 잊혀진다는 건 얼마나 축복인가!!

지금 내가 느끼는 아픔, 슬픔들도 다 이런식으로 잊혀지겠구나. 누군가로부터 들은 상처가득한 말들도, 그걸 되새기며 눈물 짓는 밤도, 시간이 지나면 없었던 일처럼 어딘가로 사라지겠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본의아니게 위로를 받았다. 지금은 기억도 제대로 안나는 3년전의 고통들, 나 스스로 누구보다 진하게 했을 고민들이 이제는 기억도 안난다는 사실로부터. 또, 더 살아보니 저때의 고민은 고민도 아니다 ^^ㅋㅋㅋ(latte is,,)


문득 퇴사를 할때가 생각난다. 퇴사를 하기 전, 나는 퇴사 후 흔들릴 수 있는 내 마음을 붙잡을 무언가 필요했다. 그래서 메모장 한켠에 퇴사의 이유를 매일 적었다. 무려 30개가 넘었으니 이정도면 퇴사의 이유를 찾기 위해 회사를 다닌 격이다. 여튼, 회사에서 이유들을 적다가 문득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지금 느끼는 모든 감정을 생생히 기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나중에 훨씬 덜 후회할텐데' 


하지만 이렇게 글을 보니 되려 잊혀진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 모든 것을 기억하고 산다는거, 그게 진짜 불행이니까.

이렇게 쓰고보니 또 하나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바로 저 가린 이름의 주인공 이야기이다. 그 친구는 신기할정도로 기억력이 안좋다. 하하. 한때는 내가 친구에게 너 옛날에 '~~한 일들로 울었잖아. 기억나?' 라고 물었다. 그때 친구는 말했다. 하나도 기억이 안난다고. 나는 친구가 살면서 상처받았던 일들을 모조리 꺼냈다.(나도 참 이런 부분에 기억력이 좋다) 근데 대박인거, 친구는 모두 잊고 살았다. 그 자리에 있던 친구들과 나는 박수를 쳤다. '야! 너 진짜 부럽다.' 그 친구는 자기를 힘들게하거나 상처줬던 에피소드 대부분을 잊고 살았다. 와 !! 이거야 말로 진정 축복아닌가?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깨달은 진리가 있다면, 모든 관계와 사랑은 상처가 기반이라는 거다. 아무리 좋은 관계여도 생채기 하나 없이 살기는 어렵다. 이런 점에서 보면, 살아가면서 얻게되는 수많은 상처를 다 기억하고 산다는건 정말 최고의 불행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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