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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별 Aug 23. 2020

내가 설명하는 '나'가 나니까

제 앞에서 실수하지 마세요.

 겸손은 미덕이라 배웠다. 살면서 가장 힘든 건 그 적정지점을 지키는 일. 나는 오랫동안 겸손을 빌미로 호구를 자처하며 살아왔다. "제가 부족해서요", "제가 일을 잘 못해서요"와 같은 말들을 입에 붙이며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나의 미숙함과 어리숙함을 내세웠다.



 딱히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도 스스로를 그렇게 믿어왔기도 했다. 일 못하고, 덜렁대고, 형편없는 사람으로 말이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선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아 내가 호구라"라는 식의 나를 깎아내리는 말을 웃으며 했고,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제가 이런 걸 잘 못해요"라는 식으로 어리버리 했다. 나 스스로 호구와 멍청함을 자처했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생각한 건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그렇게 친절한 사람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때였다. 이미 내 주변 사람들은 나를  호구로 생각하고 있었다. 가족부터 친구, 지인과 같은 타인들은 내가 설명하는 나를 그대로 믿어왔다.(세상이 그렇게 관대하지 않더라) 내가 괜찮은 퍼포먼스를 보일 때는 운이라 이야기했고, 실수할 때는 그럴 줄 알았다고 이야기했다. 처음엔 이 사람이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내가 자처한 일임을 깨달았다.


 얼마 전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 친구가 자신은 더 이상 자기를 아래로 까는 대화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나 역시 요즘 이 주제에 관심이 가던 차였기에 그 생각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물어보았다.


 친구는 자기가 다녔던 영어 학원에서 "아 제가 덜렁대서"와 같은 말을 꽤 자주 언급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친구 실제로는 굉장히 부지런하고 공부도 잘하는 친구다. 단지 친구는 자신만의 겸손을 표현한 거뿐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영어 선생님과의 상담시간에서 선생님은 친구에게 "평소에 좀 덜렁대는 스타일이지", "너 네가 원하는 성적 달성 못해"식의 이야기를 했던 거다. 실제로 친구는 지각도, 결석도, 성적이 낮지도 않았다고 한다. 다행히 친구는 선생님도 안될 거 같다는 성적을 당당히 받았지만 (ㅋㅋ역시 내 친구 근성,,) 이 경험의 끝에는 자신이 자기를 그렇게 설명한 탓도 있는 거 같다고 덧붙였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 스스로를 덜렁대고, 꼼꼼하지 못하고, 부족한 사람으로 정의하는 일의 위험성을 더욱 체감했다. 내가 나를 설명하는 대로 상대는 믿는다. 내가 나를 부족한 사람으로 정의하는 순간, 상대는 그렇지 않다며 내 편을 들어주기보다, '아 그런 사람인가 보다'하며 나를 인식한다.


 물론 내가 이런 말을 하는 데엔 상대가 내 앞에서 편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편한 것보다 상대가 편한 게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가장 밑바닥들을 미리 꺼내 보여줬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내가 정말 편한 사람이라고 증명해 보였다.


 그런 내게 꽤나 큰 충격을 준 말이 있다. 바로 배우 전도연 씨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실수하지 마세요. 저 실수하는 거 싫으니까.


 전도연 씨는 약간의 긴장감으로 실수하지 않는 분위기를 조성하는걸 더 중요한다고 본다 했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지금까지 내가 겪은 편함을 가장한 무례함 들을 상기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스스로를 계속 깎아내리며 편한 사람이 되고자 했던 나를 발견했다.


 다행히 지금은 이런 언어습관들을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고, 실제로 많이 개선됐다. 최근 2개월간의 인턴생활 동안 이런 류의 말은 입사 초기에 한번 했다. (아예 안 하는 게 베스트겠지만 사람이 어떻게 한 번에 변하냐고 ^,^ㅋㅋ) 나를 깎아내리지 않고 묵묵히 일을 하니, 직원분들은 내게 섬세하고,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 이야기했다. 살면서 다양한 집단에 가봤지만 섬세하다는 말과 일 잘한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이 경험을 통해 내가 나를 잘 포장하는 것의 중요성을 확신했다.



여전히 나는 나의 부족함을 앞세우는 말 뒤에 숨어 상대가 내 앞에서 편하게, 너도 나도 편하게 살기를 바란다. 하지만 사회생활에서 이런 습관은 내가 상처 받을 빈도를 높일 언어습관이라는 걸 이젠 안다. 그래서 나는 다양한 무례함을 겪을 바에 상대가 내 앞에서 실수하지 않길 바라는 자신감을 선택하기로 했다.


나 스스로 정의하던 오랜 언어습관을 바꿔 더 단단한 사람으로 나아가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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