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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별 Oct 12. 2020

'우리 같은' 사람들에 대하여

저기.. 나는 좀 빼주면 안 되겠니?

즐거운 마음으로 Tv를 보고 있을 때 일어난 일이다. Tv속에는 패션 테러라는 수식어를 가진 연예인이 나와 자신의 스타일이 얼마나 엉망인지를 뽐내고 있었다. 패널들도 모두 그의 스타일을 비웃었다. 아니 근데.. 출처를 알 수 없는 그 옷들을 연예인이 입고 보니 멋짐 그 자체인 거다. 나 원참.


그의 매력적인 모습을 보며 아 어떤 옷을 입혀도 참 멋지다 싶었다. 그리고 그때 그 장면을 함께 재미있게 보고 있던 친구는 말했다.


와.. 진짜 저 사람 멋지다. 우리 같은 사람이 입으면 거지 같을 텐데


솔직히 '멋지다'까지 했을 때부터 느낌이 왔다. 바로 '우리 같은'이라는 단어로 묶어 다음 이야기를 꺼낼 거라는 걸 말이다. 나는 묻고 싶었다. 아니 꼭 나까지 껴야 돼?! 근데 Tv 속 그분이 너무 잘 생겨서, 그사세긴 해서 그냥 아무 말하지 않았다.



살다 보면 여러 전제들에 '우리 같은'이라는 수식어로 묶이는 경우들이 있다.


그놈의 '우리 같은'이 뭔데


어릴 때도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어떤 꿈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안된다고 답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처럼 말이다. 그럴 땐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어쩌면 진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엔 일찍부터 그런 생각들에 나를 가둘 필요가 있나 싶다. 사람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말이다.


근데 사실 내가 정말 궁금한 건, 그런 상황에 굳이 '우리 같은'으로 묶을 필요가 있나 싶다. '나같은'은 어떤가? (대충 나는 제외시켜달라는 말이다.) 애초에 타인을 묶지 않아도 표현할 수 있는 말 아닌가?

타인을, 그가 동의하지 않은 전제에 함부로 끼어 넣는 것. 어쩌면 이것도 무례함의 한 형태일지도 모른다. 특히 그 전제가 부정적이라면 더더욱.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당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안다. 몇일 전에 친구랑 통화하다 썼다. 푸하하. 근데 핑계를 대자면 그건 상대도 동의해줬다. 글 쓸 때 힘든 건 이런 부분들 같다. 나 역시 떳떳하지 못하다는 점. 이 글은 나의 그런 모습을 경계하려고 쓴 것,,,은 아니지만 오늘부터 경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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