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꿀별 Dec 27. 2020

쉐어하우스에서 내가 원하는 공간 만들기

지금 바로 행복해질 수 있는 가장 쉬운 일

집을 나왔다.

곧 시작할 회사생활을 위해.




이번에 지낼 공간은 쉐어하우스다. 쉐어하우스 1인실. 지금까지 기숙사와 쉐어하우스 모두 살아봤지만, 한 방에서 두 명 또는 네 명과 함께 지냈다. 그게 가장 합리적인 가격으로 내 삶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혼자 있을 공간의 필요성을 자주 느꼈다. 좋은 룸메를 만났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나 혼자 생각하고 지낼 공간의 필요성. 그뿐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집을 나오면서 꼭 원룸에 가야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어랄라. 서울 집값이 ㅋㅋㅋㅋ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당당하게 나왔는데, 도로아미타불이 될 기세였다. 그렇게 타협점을 찾은 게 쉐어하우스 1인실이었다. 오롯한 내 방은 있는 거니까.


쉐어하우스에 들어오면서 다짐했던 게 있다. 조금 머물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만들자.


대학 내내 이방인의 삶을 살았던 나는 공간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잠깐 자고 말 곳이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공간이 주는 힘이 있다는 걸 느꼈다. 아마 잘 꾸며진 친구 집에 가서 어렴풋한 마음을 느꼈던 것 같다.


아 잘 차려진 공간이 주는 행복이 있구나



그렇게 가장 먼저 바꾼 게 침구다.



보이시나요? 저의 평온한 공간이. 이사하면서 집에 있는 꽃무늬 이불은 챙기지 않았다. 침 자국이 난무한 베개도 챙기지 않았다. 대신 호텔에서만 즐길 수 있는 하얀 이불을 샀다. 침구 하나만 바꿔도 내가 원하는 공간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호텔이 따로 없는 공간이 내 집이 된 거다.



처음으로 나를 위한 꽃을 샀다.



왜?라고 묻는다면 딱히 이유는 없다. 단지 나를 위한 선물로 꽃을 주고 싶었다. 이 꽃의 이름은 프리지아. 꽃말은 "늘 휴식 같은 친구"란다. 이렇게 좋은 꽃말이 있었다니. 별생각 없이 산 건데 럭키다. 처음 샀을 때, 방에서 나는 은은한 꽃향기가 좋았다. 색도 참 마음에 든다.



내 방의 가장 큰 장점은 운동할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이라는 점이다.



코시국 이후 집에서 운동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론 월세와 운동센터 값을 따로 낸다는 거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 그래서 꽤 큰 방을 원했다. 다행히 내가 원하는 크기의 방이 있었다. 이사 온 이후 매일 요가를 하고 있다. 방에서 두 팔을 폈을 때의 쾌감이란.





사실 이사를 한 첫날은 우울했다.

인간은 왜 이럴까? 집에서 나오고나니 내 행동들이 객관화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급 후회가 밀려왔고, 나란 사람에 대한 성찰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니 참 외로웠다. 하지만 이튿날이 되자마자 행복이 찾아왔다.ㅋㅋ 혼자 지내는 기쁨이 매우 컸다. 지금 내 방에서 나는 더없이 자유롭다. 망가져도 되고, 실수해도 되고, 혼잣말로 상상해도 된다. 물론 방귀 뀌는 건 좀 어렵다. 옆방 사람들과 방음이 잘 안된다.


공간이 주는 행복은 생각보다 컸다.

20대는 끊임없는 질문과 답변의 연속인 것 같다. 나는 나 자신을 알아가고 싶었고, 그런 공간이 필요했다. 내 감정, 내 행동들을 객관화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공간을 원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공간에서 지내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행복은 나와 거리가 먼 단어였다. 나는 지금 당장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지 않고 늘 먼 미래만 바라보며 살았다.


돈이 생긴다면, 상황이 나아진다면...



하지만 코로나 이후 그런 삶 따위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인생은 늘 실전이다. 연습인 인생은 없다. 이 생각이 강해진 데에는 과거 영국 어학연수 경험 이유가 크다. 그때 나는 어학연수의 경험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괜찮았다. 왜? 나중에 가면 되니까. 어차피 대학 졸업하고 외국에 나가서 살 계획이었으니까.


근데 지금의 나는? 커녕빡스다. 현재 대학 졸업을 앞둔 나는 국내 기업에 인턴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다. 미래는 없었다. 가정하는 상황 따윈 애초에 없었던 거다. 나는 뭘 믿고 그토록 많은 선택을 미래로 미뤘을까?


어쨌든 이런 깨달음으로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과감하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 용기는 없다. 이 메거진의 제목처럼 조금은 소심하게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출발은 상황이 여의치 않아도 내가 지내고 싶은 방을 만드는 거였다.


나중에 더 큰 도약이 될 때까지 이렇게 현재를 긍정하는 삶을 실천하고 싶다.

내 방식대로.

매거진의 이전글 '너에게 밥을 보낸다'의 의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