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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사펀드 Mar 06. 2018

#44. 이 아재들이 정말!

농사펀드 뉴스레터 '에디터가쓰다'

이 아재들이 정말!


확연히 따뜻해진 공기가 낯설기까지 합니다. 유난히 길고 추웠던 겨울, 잘 보내셨나요? 저는 요즘 여행이 그립습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어딘가에서 둔해진 감각들을 일깨우고 싶달까요. 아무래도 출장을 핑계로 어딘가 다녀와야겠습니다. 


몇 년 전 여러 번에 걸쳐 다녀왔던 우프 여행이 생각납니다. 영어로 WWOOF. 소규모 농장에서 농장 일을 거들며 농부가 되어볼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세계 곳곳에 농부회원들이 있기 때문에 어느 곳을 가더라도 농장에 머무르며 리얼 현지인이 되어 먹고 자고 생활할 수 있지요.                        


앗, 우프 이야기를 소개해드려도 될까요? 그리운 추억들을 하나하나 꺼내보고 싶습니다. 이 여행이 제가 농부를 흠모하게 된 데에 큰 역할을 했거든요. 이탈리아의 농부, 농촌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에디터 시내의 케케묵은 우프 여행 이야기_Lombardia, Italia 

'이 아재들이 정말!' 

공항에서 시내까지, 지하철, 버스를 타고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은 마치 원래 살던 곳인 양 편안했습니다. 시장에서 익숙지 않은 식재료들을 보니 그제야 '아, 내가 오긴 왔구나' 실감이 났지요. 늦기 전에 농장으로 가야 했기에 서둘러 움직였습니다. 기차역에서 저를 데리러 오기로 한 농장 주인아저씨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아저씨가 안 옵니다. 
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래도 안 옵니다. 
너무 느리게 가는 시간에 화가 납니다. 

탈탈탈 스쿠터를 탄 아저씨가 제게 다가옵니다. 바로 제 옆에 있는 화장실을 두고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으십니다. 들어갔다가 나오시더니 "시나?"하고 묻습니다. 제 이름을 말씀하시는 듯하여, Yes Yeees! 했지요. 이메일에서와 달리 영어를 전혀 못 하시고 스쿠터를 타고 온 것이 조금 이상합니다. 바에 가서 와인 한잔하겠느냐 물어보길래 거절했더니 "여행 잘해~" 하고 슁 가버립니다. 알고 보니 중국인이냐고 물어본 것이더군요. '설마 지금 할아버지한테 헌팅 당한 건가', '만약 따라갔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싶어 멘붕에 빠졌습니다.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려고 일단 커피를 한잔 마셔봅니다. 후. 

또 한 시간이 지나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농장에는 커다란 건물이 세 채나 있었습니다. 샤워하러 가는데 길을 잃을 만큼 컸지요. 공짜로 제공해준 숙소가 이렇게나 아늑하고 편안하다니. 게다가 1인 1방이라니. 레스토랑과 숙소를 함께 운영하는 농장이라 그런가 봅니다. 주인아저씨가 만들어주신 파스타와 와인 두 잔 마시니 졸음이 쏟아집니다. 왜 두 시간이나 늦었는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그런 생각은 이미 머리에서 떠난 지 오래고, 그냥 푹 자고 싶습니다. 두시간이나 늦은 농장 주인아저씨도, 날 깜짝 놀라게 한 스쿠터 아저씨도, 커피 한잔, 와인 한잔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네요. 

내일은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를 둘러볼 겁니다. 사실 이 농장에는 무화과가 23가지 종류나 있다고 해서 왔거든요. 


2018년 3월 6일 
이제는 스쿠터 아저씨와 사람사는 이야기하며 얼큰하게 취할 수 있을 것 같은, 장시내 에디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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