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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사펀드 Aug 24. 2017

강요된 선택, 살충제 달걀

농부도 우리도 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합니다.

(출처_SBS뉴스)

 2005년 9월 미국 남부지역을 초토화시킨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 뉴올리언스 주민들은 폭풍 상륙 하루 전 발령된 강제 대피령에도 불구하고 집에 남아있기로 선택했습니다. 재방이 무너지자 2,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후 비평가들은 피해원인이 주민들에게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미리 경고했음에도 주민들이 무시했고 결국 죽음을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대피령은 허리케인이 상륙하기 불과 20시간 전에 내려졌고, 주민 넷 중 하나는 대피령을 듣지 못했습니다. 집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대부분이 가난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었고 떠날 방편이 없었습니다. 주민들 상당수가 장애인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제방이 안전하다는 당국의 말을 수년간 듣고 마음을 놓은 상태였습니다.


이번 사태로 버려지는 수 많은 계란들 (출처_연합뉴스)


 지난 주말, 우리나라 양계 농장에도 재앙이 닥쳤습니다. 불과 몇 달 전 마무리된 조류독감(AI)에 이어 달걀에서 살충제 성분인 피프로닐이 검출되었다는 소식입니다. 모든 양계농가에 출고 금지 조치가 내려졌고 전수조사하겠다는 당국의 발표가 나왔습니다. 살충제 달걀이 이슈가 되었고 검사체계와 사육농가의 부도덕성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어떤 블로거는 "사육농가에서 진드기 처리하기 귀찮아서 그냥 뿌린 거다."라고 썼습니다. 검사체계의 약점을 악용한 것이 문제의 원인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격에 달걀을 납품하려면 공장 사육 방식이 필요하고, 이는 병균과 병충해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적은 비용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살충제를 뿌릴 수밖에 없습니다. 보다 안전한 방법을 위해서는 더 큰 비용과 노력이 들지만 그건 농가의 사정이지 유통사에서 그만큼의 가격 보존을 해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약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제공과 계도활동은 정부의 몫이지만 품목 추가를 하고 고지를 했다고 하는 것은 20시간 전 허리케인 대피령을 낸 것과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도덕적이지 못한 농가 때문이라고 욕할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 농가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작은 균과 충으로 인해 수많은 닭들이 하루에 폐사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그 손실은 오롯이 농가가 짊어져야 하는 상황. 닭이 반이 죽고 그 때문에 공급처와 계약한 물량을 맞추지 못해 거래가 끊긴다면? 

가족을 지킬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도덕적으로 판단하고 
진드기 처리를 위해 다른 방법을 쓸 수 있었을까? 

여러분들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셨겠습니까?


계란 사육 환경을 만드는 것도, 그 것을 먹는 것도 결국 소비자 결정하게 된다. (출처_unsplash.com)


 허리케인이 다가오는 순간에도 집에 남아있는 선택을 하도록 강요되어서는 안 됩니다. 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 문제는 살충제 검사를 강화한다고, 안전해 보이는 계란을 수입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정직한 음식에 공정한 가격을 지불할 마음이 없으면, 공정한 비용만큼 정직하게 생산해야겠다는 마음이 없으면 언제든 다시 생길 수 있는 문제입니다. 양계 농가가 살충제를 쓰지 않아도 되는 환경. 그것은 정직한 생산자를 찾아 공정한 가격으로 그의 달걀을 구매하는 것입니다. 지지자들이 많아지면 유통사가 변합니다. 유통사가 변하면 더 많은 농가들의 방식이 변하게 되고 이것은 정부의 정책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농부에게 투자하고 믿을 수 있는 먹거리로 돌려받는 크라우드펀딩,

농사펀드에서 '법카제공'을 담당하고 있는 박종범입니다. 

농촌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들, 농사펀드라는 서비스를 기획하며 했던 생각들을 글로 써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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