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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사펀드 Mar 29. 2018

#47. 어떻게 생각해?

농사펀드 뉴스레터 '에디터가쓰다'

어떻게 생각해?


소규모 농장에서 농장 일을 거들며 농부가 되어볼 수 있는 WWOOF. 세계 곳곳에 농부회원들이 있기 때문에 어느 곳을 가더라도 농장에 머무르며 리얼 현지인이 되어 먹고 자고 생활할 수 있지요. 그리운 추억들을 하나하나 꺼내보고 싶습니다. 이 여행이 제가 농부를 흠모하게 된 데에 큰 역할을 했거든요. 이탈리아의 농부, 농촌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에디터 시내의 케케묵은 우프 여행 이야기 #2_Cecina, Italia 


가을의 끝자락이었습니다. 엔리코 아저씨, 츤데레 루이지애나 아줌마, 사춘기 아들 디에고, 강아지 몰라,  제 사랑을 독차지한 당나귀 우고 그리고 돼지, 거위, 염소, 닭들이 사는 유기농 올리브 농장에 가게 되었습니다. 제게 맡겨진 중대한 임무 중 하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각 동물의 식성에 맞게 아침 식사를 챙기는 것이었습니다. 당나귀는 요리하고 남은 채소 껍질과 지푸라기, 돼지는 풀 반 곡식 반 그리고 종일 산에서 뛰어다녀야 하니, 물을 많이 줘야 하지요. 그리고는 엔리코 아저씨와 함께 톱을 들고 올리브나무밭에 갑니다. 더 탐스러운 올리브가 열릴 수 있도록 가지치기 작업을 해주는 것이죠. 전정이라니. 한 해의 농사뿐 아니라, 100년 이상 사는 나무에 영향을 미치는 그 전정 작업을 저한테 함께 하자고 하시다니요.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올리브나무밭으로 갔습니다.                

아저씨는 제게 간단히 방법을 알려주시고는 나무에 오르시더니 가지 하나에 곰곰이 생각에 잠기셨습니다. 

'시내, 어떻게 생각해?' '네? 뭘요?' 
'이거 자를까? 놔둘까?' 

유기농 올리브 농사 22년 차 베테랑 농부님이 제게 의견을 물으셨죠. 아무리 농사를 오래 지었어도, 모르는 게 너무 많다며 겸손한 마음으로 농사지어야 한다는 엔리코 아저씨. 이후에도 애매한 가지가 보일 때마다 우리는 서로 의견을 물으며 가지치기를 했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신중하게요. 

얼마 전 계속되는 가뭄으로 올리브 수확량이 점점 적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농부님의 밥상에 항상 올려져있던 스페인 산 올리브오일이 내내 마음 아팠습니다. 이탈리아의 사정도 한국과 다르지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안전한 먹거리에 대해 깊이 고민하시며 자연농법을 실천하는 농부님 댁에서, 미국산 밀가루로 빚어주신 만두를 먹었던 기억이 있거든요. 친환경 농부가 친환경 음식을 먹을 수 없는 그 현실이 쓰립니다. 

엔리코 아저씨의 삶이 위대하게 느껴집니다. 밀라노에서 맥줏집을 하다 내려와 지금까지 농장을 가꾸고, 손꼽히는 품질의 올리브오일을 생산하는 아저씨. 으쓱거릴 만도 한데, 아저씨의 올리브 오일은 처음 그대로입니다. 첫 마음 그대로 농사지으시니까요. 아저씨의 밥상에 직접 짠 올리브 오일이 놓이는 세상이 얼른 왔으면 좋겠습니다.                                          


2018년 3월 28일 
엔리코 아저씨가 그리운 장시내 에디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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