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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사펀드 Jun 15. 2018

#55. 맛으로 떠나는 여행

농사펀드 뉴스레터 '에디터가 쓰다'

맛으로 떠나는 여행


소규모 농장에서 농장 일을 거들며 농부가 되어볼 수 있는 WWOOF. 세계 곳곳에 농부회원들이 있기 때문에 어느 곳을 가더라도 농장에 머무르며 리얼 현지인이 되어 먹고 자고 생활할 수 있지요. 그리운 추억들을 하나하나 꺼내보고 싶습니다. 이 여행이 제가 농부를 흠모하게 된 데에 큰 역할을 했거든요. 이탈리아의 농부와 농촌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에디터 시내의 케케묵은 우프 여행 이야기#4_Lombardia, Italia


이곳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농장이라, 가꾸는 사람, 요리하는 사람, 맛있게 즐기는 사람이 한 장소에서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요리사도, 소비자도, 농부도 철마다 달라지는 채소의 매력에 푹 빠져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탈리아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재료들인데도, 좋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빨간 양파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거든요. 음식 이야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든 누구와도 친해질 수 있는 이탈리아 사람들. 덕분에 제겐 생소한 채소들이지만 덩달아 푹 빠지게 되었답니다. 유명한 박물관이나 관광지가 아니라, 맛이 궁금해서 떠나는 여행.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요?


Melanzane 
혹시 가지가지 하시나요? 가지로 갖가지 요리를 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요? 그렇다면 이 가지가 궁금하실 거에요. 이 가지는 단호박만 해요. 두툼히 썰어 그릴에 구우면, 포크로 썰어 스테이크처럼 먹을 수 있지요. 쫄깃해진 겉면을 썰면 채소즙이 츄륵 나오면서 부드러운 속살을 드러내죠! 너무 커서 징그럽기도 한데, 한번 맛보면 그다음부터는 오히려 귀여워 보인답니다! 


Porro 
대파와 비슷한 채소에요. 대파보다 덜 맵고 달면서 섬유질이 더 많은 느낌이죠. 매주 금요일은 Pizza Day였는데, 농장주인 아저씨는 항상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독특한 피자 토핑을 만들어주셨어요. 그중 하나가 토마토소스 대파 피자. 이탈리아 음식에 보수적인 사람이 들으면 노발대발하겠지만, 잘 익은 대파가 달큰한 맛을 내면서 의외로 맛있었답니다. (아닌가. 그냥 배고파서 맛있었나.) 


Pomodoro 
토마토가 끝물이라 상태는 안 좋았지만 다양함에 놀랐습니다. 노란 토마토는 호박 같은 깊은 주름이 많고, 둥글고 넓적한 토마토는 새콤달콤한 맛, 길쭉하고 과육이 많아 주로 소스를 만드는 산 마르자노 품종도 있었답니다. 워낙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는지라, 상처 많은 토마토도 전부 손질해서 알뜰하게 요리하지요. 


Fiori di zucca 
꽃, 드셔보신 적 있으신가요? 아카시아, 진달래, 맨드라미, 생강나무, 찔레꽃. 이름은 모르는데 ‘식용 꽃’으로 분류되는 알록달록한 그런 꽃 말고, ‘이 꽃이 먹을 수 있는 꽃이었어?’라고 놀라게 되는 그런 꽃이요. 옛날엔 꽃도 나물의 하나였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텃밭을 가꾸거나 깨끗한 산이 근처에 있지 않은 이상, 꽃 요리는 접하기가 어렵잖아요. 특별한 맛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접시 위에 놓인 꽃을 입으로 가져가면 나도 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로워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요. 확실히 꽃을 먹는다는 건 뭔가 환상적이죠. 이탈리아에서 튀긴 호박꽃을 맛본 후로, 지금도 작은 텃밭을 지나다 노랗게 핀 꽃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려요. 열매는 생명의 결실이지만, 그 결실이 맺히기 전 꽃을 먹어버릴 만큼 매력적이죠. 속에 모짜렐라까지 채워서 튀기면…. 그 노랗고 하얗고 몽글몽글하고 부드러운 느낌이란! 


Finocchio 
어느날 텃밭 일을 도와주시는 안드레아 아저씨가 후딱 이리 와보라고 저를 재촉했습니다. “시내! 얼른 이리 와봐. 절대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면 안 돼!” 검지 손가락까지 보이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지요. 너무 맛있는 채소라서, 수확할 때가 되었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되면 순식간에 전부 없어질 거라네요. 
한줄기 꺾어 제게 건넨 그 채소는 셀러리같이 섬유질이 꽤 있고 속은 달콤한 즙과 함께 독특하고 향긋한 향이 났습니다. 맛을 보자마자 반해버렸지요. 영어로는 fennel, 회향이라고도 불리는 채소. 이후로 틈만 나면 밭에 가서 몇 줄기 꺾어와 아삭아삭 씹어먹었더랬지요. 씨앗은 향신료로 사용하고 몸통 부분과 줄기 부분은 채소처럼 먹어요. 씨앗에서 나는 진한 향이 줄기에도 그대로 배어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지요. 
하얀 몸통 부분을 썰어 오렌지, 사과, 요거트 드레싱이나 오일 드레싱으로 샐러드 하기에 좋습니다. 



어른이 되어야만 알 수 있는 시원한 맛 무
잠깐밖에 맛볼 수 없어 자꾸 집착하게 되는 쑥
건들기만 해도 뭉개질 것 같은 달콤함에 내 마음도 말랑하게 만드는 팥
점점 구하기가 어려워 상사병에 걸릴 것 같은 예쁜이 홍옥
혀에 강펀치를 날리는 산초
허리 치마 두르고 바구니 끼고 뒷산 오르고 싶게 만드는 냉이
그리고 셀 수도 없는 온갖 나물들


잘 생각해보면 한국에도 사랑에 빠질만한 재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이 아끼는 한국 재료들은 뭔가요? 어떤 점 때문에 좋으세요?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요리하는 걸 좋아하시나요? 외국인 친구가 온다면, 어떤 재료를 맛보여주고 싶으신가요? 어떤 맛을 우리의 맛으로 보여주고 싶으세요?



2018년 6월 14일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맛이 있을까 너무나 궁금한, 장시내 에디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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