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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t Scent Nov 25. 2021

16. 해변의 개구리

나의 계획은 최소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글을 쓰고자 했음이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작자는 그렇게나 헛발짓을 해댄다. 글을 쉰 한두달 그 사이에, 미국 영주권을 받았고, 대도시로 이사를 했으며, 글로벌 기업에 입사를 한다. 입사 일주일만에 아이를 데리고 타주로 일주일 출장을 다녀왔으며 도착 당일 새벽 잠시 눈을 붙이고 출근을 하고 보니, 오늘이 되었다. 예전 일이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아침에 무얼 먹었는지도 기억이라도 나면 기적이다.  


인생을 살며 여럿 쪼들리는 경험을 하였는데, 언제나 풍요로울 때는 글이 써 지질 않았다. 부족과 결핍 그리고 오직 간절함만이 삶을 움직이는 동력이 되었다. 지금 이 시점은 한껏 글이 오지게도 써지지 않아야 할 판국인데, 나는 지금 잠보다 글이 절실하다. 가난한 마음에도 봄은 오는가 싶을 정도로 누구에게서든 축하를 받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니 해동한 두부처럼 영 맛대가리가 없다. 정확하게 내가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면서 우물 안의 개구리는 그 짠 바다물에 몸 좀 적셔 보겠다며, 기어코 그 곳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붙였다. 


가끔 사람들을 보면 글로벌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 들이는가 고민 스러울 때가 있다. 그 뭐 막. 외국인(특히 백인) 앞에서 악수를 청하며 프리젠테이션을 멋지게 마무리하며 질문을 받는 (TED 찍냐?) 그런 스크린 샷을 머리에 띄우고 있는 걸까? 아니면 끝도 없는 아리조나 사막 비슷한 길을 머스탱을 타고 종횡하면서 허름해 보이는 와플하우스에서 감자튀김을 입 터져라 우겨 넣으며, 낯선이와 부끄럽지 않은 대화를 하는 그런거? 구글 아마존에서 일하며, 프로젝트 마무리하는 길에 스타벅스 커피 한잔 들이키며 동료들과 시덥지 않은 농담에 끼적거리며 웃는거? 아니면 드넓은 스텐포드 대학교 그 어귀에서 아이를 데리고 산책하며 영어로 대화하는 건가? 


그게 뭐든, 널리널리 내가 스스로 보호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좀 벗어나보려는 시도를 참으로 일관되게 '우물 안의 개구리에서 벗어나고 싶다'라는 말로 붕어빵 찍어내듯 말한다. 아니 그럼, 대관절, 대한민국이 우물이란 말인가? 

희한하게 묻는 말에 다들 대답이 없다. 


갑자기, 수백통의 이력서를 넣으며 일자리를 구하고 매일 과외전선에 뛰어들었던 아줌마 초년생 적이 생각이 났다. 학력이고 나발이고 경력 단절에 여자 나이 30이 넘으면 케셔도 안 써준다는 말에 환장하겠네 정말했는데 그 '환장'이라는 말은 극히 고급스러운 말이었다. 메트릭스 안에서 끊임없이 돌아가는 팽이처럼 토하듯이 흔들리는 동안, 대한민국 취업 시장은 나에게 땅그지를 면치 못하게 했다. 물론 능력이 없는 나의 탓으로 돌리자니 그저 무심해 질 수만은 없는 마음에 이렇게 대차게 말을 던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에게 있어 글로벌은 생존의 기회가 열려 있는 곳이었다. 아니 뭐, 대대로 여유있는 집에서 아이들 교육만큼은 미국에서 시키고 싶었어요. 하며 일년에 수십만불하는 보딩스쿨에 넣으며 외치는 글로벌을 그런 의미로 둔다해도 그만. 한국에서 부인 등쌀에 못 이겨, 미국 주재원으로 파견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려는 가장의 발버둥이 그 의미를 둔다해도 어쩔 수 없다. 분명 살기 위해 미쳐버린 개구리라면 글로벌이고 나발이고, 일단 어디든 붙어 있어야만 했으니까. 


"기회는 열려 있지만 평가에는 짤없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운 좋게도 나에게 그대들이 말하는 우물 안을 탈피할 기회를 주었지만 나는 여전히 개구리다. 

그것도 새로운 우물을 파고 있는 개구리. 





내가 발 딛고 살아가고 있는 이 나라는 지극히 여러 인종이 몸을 담고 있기에, 타 인종은 여러모로 피곤하기 마련이다. 삶의 각고의 피로하에 다들 같은 인종끼리 옹기종기 폐타이어 안의 소라게들마냥 모여산다. 서로 남의 집을 훔치기도 하고 내 살을 파먹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다른 우물안의 개구리에게 구라를 쳐댄다. 


'여긴 좀 살만 하다?" 


그러다 돌아버린 개구리 한마리는 가는 도중 말라 비틀지 언정, 썅마이웨이를 외치며 바다로 가는 기차에 무임승차를 한다. 짠물에 죽으라면 죽지 뭐. 하는 심정으로.


그리고 속으로 다짐한다.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그러면서 계속해서 글을 쓰겠지. 

-누군가는 나를 좀 봐달라고. 


이런 미친 개구리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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