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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t Scent Oct 08. 2021

15. 희재

엄마라면 가끔 이런 상황에 처해 본 적이 있으리라.


아이의 다리몽둥이를 분지를 기세로 혼내다가도 걸려오는 시엄니의 전화에 방긋거리며 "네~어머님" 이런 상황, 결혼한 여자라면 모두들 한 번쯤은 겪어보지 않았던가.


말인즉은, 분노조절이 가능하다는 말인데, 가끔 그 조절이 아이에게는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감정의 하수구에서 시궁창 쥐를 세고 있는 아이가 당신네 집에도 존재한다는 불편한 사실을 외면하고 싶을 때가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미국이라는 타지 생활을 하면서, 모든 걸 혼자 해야만 하는 상황이 버겁다 못해, 멘털이 두쪽으로 쪼게 지는 경험을 이틀 걸러 하루는 하게 된다. 그저 외로운 줄타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줄 타는 와중에 빗발치는 화살은 심장을 찔러 피투성이를 만들었다. 이 어리석기 짝이 없는 군상은 그러면 그러는 대로 버티다가, '폭삭'하고 삼십 년이나 어린 아들 옆에 쓰러지고 만다.


사실 아이들은 부모의 이기로 태어나지 않던가. 스스로 태어나겠다고 손을 든 아이들은 없다. 어쨌든 부모가 된 마당에 아이가 가져보고 싶은 사람들이나, 불가피한 상황이든 자기도 살아가기 버거운 이 세상에 아이들을 강제소환시킨다. 따져보면 그럴진대, 태어나게 해 준 은혜에 대해 묻는 건 내 상식선으로는 좀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런 의미에서 세상 이기적인 엄마다.


아이가 가지고 싶어 세상에 좀 나와달라고 했고, 버젓이 아들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미국이라는 타지에서 좀 같이 버텨보자며 종용했다. 아이가 숨 쉴 구멍을 필요로 했을 때 나도 죽을 것 같다며 짜증을 냈고, 학부모 참관 수업에는 불참이 당연했다. 공부할 때마다 안기려는 아이의 무게가 나의 삶의 무게 +@ 가 되어 턱까지 차 오르는 기분이 들 때 아이를 내려놓았다. 그놈의 스크린 타임은 옛적에 무시한 지 오래였고, 오만가지 영양 가득한 음식보다는 일단 빨리 먹이고 보는 음식이 대부분이었다. 옆에서 꼼지락 거리며 내 옷깃을 만지작 거리는 아이에게 때로는 답답해 윽박을 지르는 일도 자주 있었다.


도대체 엄마 자격도 없는 나에게 어쩌다 저 불쌍한 이가 곁에 자리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불안한 두 영혼은 참 자주 현실도피를 꿈꿨다.


방 한 칸짜리 숙소에서 타다닥 소리만 내며 날을 곤두세워 과제를 하는 엄마의 뒷모습이 영 불편해질 때 즈음, 일주일 생활비를 모아, 우리는 에어비엔비 (Airbnb) 여행을 떠났다. 배낭에 컵라면 두 개와 젓가락을 달랑 들고 색감 좋은 주인집을 그렇게 찾아 헤맸다. 학교와 숙소를 벗어나면 우리는 둘도 없는 사이였다. 털털 거리는 좁은 오솔길을 지나 나무와 하늘이 가까운 곳을 찾아 떠나는 순간마다 그 시간만큼은 오롯이 둘만의 것이었다. 신경 날카로운 엄마는 먼지 구더기에 손을 가져다 대는 아이에게 매번 싫은 소리를 해 댔지만 아이는 꾸준히 만지고 소리를 질렀다. 낯선 주인에게서 받는 단 하루의 프리패스. 호텔이 아닌 , 남의 집 하루살이는 불편하고 기이하며 두근거림의 연속이었다.


콤콤한 냄새가 나는 이불과 언제든 근처 지역 마트에서 특산물로 해 먹는 저녁이 주는 희열은 하루만 사는 우리에게 삶의 이유이자,  유일한 숨 쉴 구멍이었다. 



삶이 주는 여유란 찾아볼 수 없는 선택에서 이렇게 우리 두 모자는 가끔 받아보는 따뜻한 시선과 낯선 사람들이 주는 호의 그리고 커피 한잔과 코코아에 몸을 녹이며 밤을 지새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모하기 짝이 없었던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이민자의 삶 자체가 방랑자일진대, 그의 축소판이라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럴싸했다.




그렇게 나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같잖은 짧은 여행을 통해 사과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몇 주 만에 한 번을 생색내듯 가는 곳이 비록 남의 집 일지라도 그렇게 백지 위의 잉크처럼 스며들기 일보 직전에 서로를 안아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손바닥을 가리면 가끔 가려지는 하늘을 보고 '그래 나도 그런 적이 있었지'라는 시덥잖은 너그러움에, 그놈의 모래 구덩이에 손을 넣으며 꺄꺄 거리는 아이를 오래간만에 가만히 두고 덩그러니 쳐다본다. '너는  그리고 나는 '. 어쩌다 우리가 무슨 인연의 끈으로 여기까지 와서 김치 대신 치즈와 크래커를 먹으며 끼니를 때우고 있다니. 망그라히 움켜  모래가 손가락 사이사이로 빠져 나갈  즈음 정신이 들어 아이의 얼굴을 본다.


마음에 멍이 든 채 말은 못하고 그저 우주인 척 하는 엄마를 따라 손깍지를 껴든


아이는 다섯살 나는 서른 넷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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