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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t Scent Aug 21. 2023

20. 인생은 아름다워

 샤워할 때마다 한웅큼씩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며 혹시 암이면 어쩌지 하며, 걱정 어림을 가장한 행복한 상상을 해 본다. 드디어 생을 마감한다는 그 안도감. '이젠 드디어 평안함에 이르겠구나. 많이 아프지만 않고 가면 좋겠다' 하는 가슴 찌르르한 전율이 언제쯤 일까 생각해 보는데, 아들이 걸린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르는 '아이고 죽겠네' 하며 터진 허리 디스크에 통증이 와 앉은 다리를 펼 때, 아이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무심히 '엄마 난 언제 천국가? 거기 가면 그렇게 좋아? 아....나도 빨리 가고 싶다..' 하며 애간장이 쪼그라드는 말을 한다. 


  하긴 뭐, 나도 생각하는 마당에 '너는 왜 안되겠니 '하지만서도 왠지 그게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머나먼 타지에서 무려 30년이나 차이가 나는 아이에게 나는 혹시 가볍지도 않은 인생의 무게를 이해해 달라고 한 발을 걸쳐 놓지는 않았는지.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이기에 너는 내가 잘 알고, 너도 나를 알아달라는 무언의 압박이 그 아이의 철부지 아이 시절을 앗아 갔는지도 모르겠다. 


 뭐 되게, 심각한 소리를 하는 것 같은데 일상에서 이 먼 타지에서 아이를 유일한 가족삼아 지내다 보니 난감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아이 학교는 늘 비상 연락망에 적을 연락처를 달라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내 번호를 일관성 있게 적을 떄가 있는데. 외롭다기 보다는 나조차도 비상 연락망에서 제외되는 상황이 생기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한 번은 회사를 마치고 아이를 픽업가려던 퇴근 길이었다. 언제나 시간에 촉박한 운전이었지만 늘 그렇듯 할마씨 맹키로 천천히 좁은 2차선 길에 빨간 신호를 받고 정차하던 중이었다. 더운 열기가 훅 들어와 에어컨을 조정하던 차에 사이드 미러로 보이는 트럭이 심상치 않았다. 왠지 ... 정말 왠지 정말 왠지 핸들을 꽉 잡고 싶었다.  '쿠쿠쿸쿸웅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머리도 핸들에 쳐 박혀버렸다. 잠시 의식을 잃었던 것 같다. 


 미국은 고속도로를 벗어나 마을로 진입을 하게 되면, 길 가에도 집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데, 그 트럭은 나를 치고 길을 벗어나 저 멀리 정말 저어어어멀리 주택가 펜스도 들어받고 정문까지 들이 받을 태세로 튕겨 나가 있었다. 그랬다. 이건 뭘까? 정말 나한테 일어난 일일까? 아니 정말?  아직 죽은 건 아닌 것 같은데 차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보면서 문을 열고 기어 나왔다. 도로 앞에 모여든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경찰과 엠뷸런스를 불렀고 나는 그대로 큰 대자로 다시 한번 의식을 잃었다.


 아주 짧은 찰라에 무의식에서도 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 씨, 내 아들. 픽업 시간 지났는데..." 

문득 비상 연락망 1도, 2도, 3도 나를 적었던 기억이 났다. 재빠르게 눈을 번쩍 떴다. "Wow.. Are you okay? " 연신 물어보는 구급대원 팔을 붙들고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며, 나는 괜찮다는 말만 주문 처럼 외우고 있었다. 결국 나는 그 중 한명이 이송하는 차량을 타고 아이 유치원에 당도했고, 적지 않게 당황한 방과 후 선생님의 벙찐 얼굴을 맞이했다. 아마 경찰에 전화하기 직전이었으리라. 연락은 안되고 아이는 엄마를 찾고 저녁시간이 다된 이들도 사색이 되어 있었으니, 생각보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경찰들과 구급대원의 설명이 있고나서야, 이해가 되었던지 아이를 내 곁으로 보내주었다. (미국에서는 아동법이 주마다 다르지만 연방 정부 집도 아래 꽤 구체적이다. 가운데 하나는 정상적인 양육 환경이 되지 않다 판단이 될 떄, 아이와 분리시키고 보호국으로 보내게 된다.)생 이별을 하는 줄 알았던 아이는, 엄마를 부르며 울었고 나는 휘청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다시 일어났다. 


 차의 절반이 날아갈 정도로 큰 사고였지만 다행이었던건지, 앞 좌석에 정차하고 있던 터라 큰 외상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아직도 고생하고 있는 외상후 스트레스로 인한 신경계 손상으로  정상적으로 보이는 피부가 타 들어갈 듯이 아파서 팔을 부여잡고 눈물이 줄줄 흐를 때가 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뒤에서 들이받은 트럭이 생각보다 충격이 컸던지 디스크 파열로 여전히 앉고 서는 것이 아프고 뜨겁다고 해야 하나. 여튼 그다지 반갑지 않은 증상을 주렁 주렁 달고 여전히 뚜벅뚜벅 살아가고 있다. 


 한번은 사고로 인한 허리 통증이 극심해져, 척추에 주사를 맞으러 가는 길이었다. 아이를 낳을 때 무통주사(척추에 놓는 주사) 이후로 한번도 맞아 본 적이 없는 그 무시무시한 주사를 향해 가는 발걸음이 가벼울리 없지 않겠는가. 반드시 보호자를 대동하라는 의사의 말이 참으로 이유없이 얄미웠다. 수면 마취를 하고 주사 투여가 끝난뒤 휠체어로 1층까지 이송해 주는 간호사가 유난스레 친절했다. 보호자 차량까지 데러다 준다는 말에 극구 사양하며, 보호자는 바로 앞에 있으니 들어가시라는 말을 참 여러번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랬다. 미국에서의 나는 보호자가 없었다 .


몽롱한 기운에 까페앞에 주차를 해 놓고 '날씨 한번 겁나게 좋구먼' 하며, 오늘 같이 소중한 연차를 이렇게 쓸 수는 없지 하고 깨알같이 낮잠을 청했던 그 날의 나는 제정신이었을까?


순간 깨달았다. 

나는 죽음으로 가기엔 참으로 절박하게도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 때 미국에 온 처음으로 '인생이 아름답다' 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이유는 여전히 모르겠다.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렇지만, 아마도 그렇지만... 관성적인 삶에서도 묘한 삶의 굴레를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난처한 상황에 있는 사람을 보고 '나는 그렇지 않아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기 보다는,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보았을 때 '쟤도 사는데 나 정도는 좀 ...괜찮은데?' 하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아마도 삐뚤어진 관종 그 언저리 정도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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