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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t Scent Aug 14. 2023

19. 되게 햅삐

  우리는 스스로의 행복한 시간을 견뎌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일상이 어쩐지 힘에 부치는 하루하루보다 더 버거울 때가 있는데, 이는 잔잔한 이면에 자리하는 고독과 언제 터질지 모르는 미지의 썸띵 그리고 그 마저도 싸우느라 앓는 이를 만들어내는 탓이다. 


  우리는 '나'로 시작하는 이야기도 참 좋아한다. 

자신이 그 어떤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으로 착각하며, 스스로의 말을 와구와구 해대고 뱉어낸 말을 다시 주워 먹지도 못한다.


  참으로 피로하고 주관적인 삶을 영위하면서도 끊임없이 '행복'이라는 것을 추구하는데, 이 행복은 사실 '기쁨'의 한 조각이기도 하고 그 합체 그 어딘가이기도 하다. 


  게다가 뻔한 말을 뻔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가상해서 기웃거리며 화자의 뜬금없는 말에도 귀를 기울여 주는 당신이 오늘은 사무치게 감사하다. 스스로의 글에 대한 쪽팔림이 30% 안팎으로 가도록 그나마 재활용 쓰레기에 가까운 글을 쓰고자 함이 목표이기에 키보드의 타감이 점점 걸쭉해진다. 


  오늘은 어느 곳으로 가볼까 하다가, 회로가 물품 창고에 다다랐다.

내가 이전에 말을 했던가. 대학원 졸업 후 공장장으로 취업한 썰 말이다. 지금 생각해 봐도 뽑힌 나나 뽑아준 사람이나 정말 극으로 치닫고 있었던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제 네다섯 살 먹은 아이를 한 팔에 덜렁 달고 최종 면접을 보러 간 나에게 '출근하시오'라는 말을 던질 수 있었단 말인가. 내가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그 간의 주마등은 사실 찰라이지만 나에게 있어 더 이상 이보다 과하거나 덜 떨어질 수 없어서 가끔 이 생은 인생극장 42회쯤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미국은 50개가 넘는 주로 하나의 울타리에 생각보다 많은 다름이 공존하는 나라이다. 왜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동부출신 뉴요커들이 괜히 서부 캘리포니아 사람들을 비꼬며 그들의 느슨하고 게을러빠진 생활을 지적 (그 반대도 마찬가지)하는 상황이 왕왕 영화소재로 등장하는 것이 낯설지 않다. 주의 경계만 지나도 다른 나라가 되어버리는 탓에 대학입학을 앞두고 타지로 향하는 자식들을 두고 눈물짓는 부모의 마음은 한국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띠기도 한다. 내가 뚝, 하고 떨어지게 된 주는 앨라배마 주로, 많은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주이기도 하다. 목화밭을 운영하던 백인 유지들과 그 농장의 노예들이 터를 이루고 살았던 터라 지금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공터에 젊은 사람들은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하는 지루함을 안고 떠나버리기도 한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 유년시절을 회상하던 장면에서 앨라배마가 나오는데 그 옛날 새로운 꿈을 안고 북쪽으로 그리고 타주로 이주한  백인들의 Home sweet hom을 열창하게 되는 곳이 되기도 한다.


  지금은 한국 자동차 회사 기아, 현대 미주 공장이 자리 잡고 있어 자동차 부품회사들의 성지가 되어 버린 이곳은 여전히 강한 햇살과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풀밭과 무심하리만큼 하얗고 뽀얀 구름이 손에 닿을 듯이 퍼져 있다. 이곳에서 2층을 넘어가는 건물은 보기가 힘든데 아마도 넘쳐나는 부지와 점점 유입과는 멀어져 가는 젊은 층의 걸음을 따라잡지 못함 때문이리라. 


  여하튼 이런 곳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말을 하려고 이렇게 말이 길어지게 되었는데, 일터는 그 수많은 부품회사 가운데에서도 영세한 곳으로  대부분 불법 체류자인 스페니쉬를 쓰는 남미 사람들이 주였다. 영어를 잘 쓰지 못하고, 아파도 병원을 가지 못하여 슈퍼에서 사는 타이레놀이 유일한 만병통치약인 사람들이었는데 어쩐 일인지 나는 이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내곤 했다. 같은 공간에서 밥을 먹고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고 하루의 8시간 이상을 그들과 함께 한다는 사실은 그동안 경력단절이 이어졌던 내게 소속감이라는 안정감을 주었고, 그들의 불편함을 볼 때마다 괜스레 뒤에서 챙겨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간간히 따라 하는 스페니쉬를 들으며 그들은 즐거워했고, 생일이면 큼지막한 내 사진이 들어간 케이크를 잘라먹으며 아직도 어색한 영어이름을 넣어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일상이 대단히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날은 모두가 일찍이 퇴근하고 싶어 하는 날렵한 공기가 흐르는 금요일이었다. 책상에 앉아 생산량을 분석하며 원단 주문을 넣고 있었는데 다급히 나를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항상 이런 높은 톤으로 부르는 상황은 반갑지 않아 날을 세우고 공장에 들어간 순간, 나는 머리가 파래지는 것을 느꼈다. 기계 사방으로 피가 튀어 있었고, 작업자는 손을 부여잡고 울고 있었다. 내가 꿈에도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손가락이 잘린 작업자를 기계에서 떼어내고 작동을 멈췄다. 멀찍이서 떨어진 사라들의 웅성이는 소리만 가득했는데 그 조차도 기억나지 않는다. 더러운 우레탄 바닥에 떨어진 손가락 한마디가 핏덩이인지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지만 급한 마음에 덥석 주워 냉장고로 달려가 얼음을 채운 봉지에 넣고 작업자를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질주했다. 울렁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나도 울고 그도 울었다. 처치실로 밀어 넣은 상태 그대로 나는 구토를 시작했다. 신물이 나올 때쯤 내가 병원임을 깨닫고 그들의 만병통치약인 타이레놀을 입에 털어 넣었다. 심호흡을 해도 나아지지 않았다. 작업자는 세 아이의 엄마였다. 그 크지 않은 손으로 아이의 이유식도 먹여야 하고 아픈 아이를 안고 달래주기도 해야 하며 씻겨 주기도 해야 한다. 가족을 위한 식사를 차려하고 말도 더럽게 안 듣는 10대 아들을 혼내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 시간을 쪼개어 일을 하고 부업으로 팔찌를 만들어 파는 그녀에게 검지 손가락의 절단은 많은 의미의 불가능일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형용할 수 없는 기류가 펴져 팔과 다리에 힘이 풀렸다. 


  가끔 부르는 노래가 있다.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지는 꽃잎처럼.' 가수 김창완이 불러야만 제대로 톤이 사는데 어쩐지 그날은 이 노래만으로 하루를 버티고 또 버텼다. 길고 길기만 했던 병원 복도 끝에서 읊조리는 가사는 어쩐지 나의 푸르른 청춘에 켜켜이 들어간 그들의 삶이 참으로 애달프고 그걸 보고 있는 나도 덩달아지는 잎새임을 부정할 수 없어,  퇴근 시간이 다다르도록 벽에 머리를 기댄 채 멍하니 등나간 전구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 상태 그대로 아이를 픽업해야 하는 나도 엄마이기에 이리저리 갈팡질팡하는 애꿎은 발걸음만 탓하며 도무지 떨어지지 않은 운전대를 잡았다. 


  그렇다. 행복은 되게 햅삐해야 행복할 것 같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그리고 그는 되게 행복하지 않았지만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야만 그다음 날에 희망이라는 억지를 써야만 했다. 그리고 '이 보다 더 한 어려움은 없을 거야.' 하며 스스로 도닥거리지만 웬걸, 인생의 복병은 어디든 도사리고 있고 내가 겪지 못할 일은 없다. 한 순간에 코 끝의 숨이 날아가기도 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끔찍한 통증에 이만 죽고 싶을 수도 있다. 인생을 이리저리 피해 가라는 소리도 아니다. 그저 되게 행복하지 못할지언정, 나는 주어진 삶을 살아야 하고 참으로 그렇게 하기 위해 행복이라는 탈을 쓰고 스며들어오는 불행에 어쩌면 관대한 척, 못 이기는 척하고 문을 열어 주어야 할 때가 있다. 그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어야만 할지, 그에게 어떠한 말로 시작해야 할지를 여전히 고민 중이다.  

   

  그래서 한 번 정도는 묻고 싶은 거다. 

그저 당신은 되게 햅삐 하시냐고.  그 도 아니면 어떻게 버텨 내시냐고. 나도 좀 알려 달라고 말이다. 참으로 지루한 인생 앞에서 그대의 목소리 한 자락을 듣고 싶어 이렇게 궁색을 떨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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