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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t Scent Apr 12. 2023

18.

문득 제목 없이 시작해 본다. 


나의 글은 참 부끄럽다. 

무슨 글 하나 쓰기가 나는 여든 먹은 노인네가 바늘 귀 실 통과하는 것처럼 그렇게 어렵고 낯짝이 설고 그런다. 그래서 그 놈의 글짝 하나 쓰기가 한달도 걸리고 두달도 걸리고 그런다. 일상이라는 히끄므리한 선에서 잘도 찾아 쓰는 작가가 아니라, 나는 글이 다음 날 영 깨름칙하면, 눈에 들 때까지 버리고 다시 잡는 참, 겉멋만 잔뜩 들어간 '장이'가 아니라 '쟁이' 이다. 나에게 치열함을 선사하던 하루 하루가 메너리즘으로 관철될 때 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글은 참 악에 받혀 있었구나. ' 누군가에게 나의 부친 삶을 위로 받고 싶었고 스스로에게 가지는 연민조차 사치라 느끼는 본인에게 손 내밀고 싶었던 것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잔뜩 어깨에 힘이 들어간 나의 글이 참으로 부끄럽고 여적 민망하다. 그래도 머릿속을 옮기는 작업을 미룰 수는 없는 때는 , 더 이상 이 걸 쏟아 내지 않으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 갈 수 없을 때이다. 내 인생 자체가 한권의 책 이기에 토하듯 풀어 놓는 실타래가 그저 일기에 지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인 것이다. 



그 날은 흐렸다. 


많은 우중충한 날이 있었지만, 그 날은 유독 하늘을 이불 삼아 자야 하는 그런 날이었다. 희뿌연 안개 속에 손에 잡히지도 않을 동굴 속 벽을 붙잡으며 한 걸음을 떼어야 하는 나는 낯선 곳에 섰다. 


얼마 되지 않는 짐을 케리어 두개에 담아 크지도 않은 차에 쑤셔 넣고 시동을 걸었다. 아이 칠판, 아이 책, 아이 장난감, 이불 그리고 전공 책을 담은 비닐봉지 몇개. 뒤에 낯선 듯 멀뚱이 앞의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에게 주문을 외듯, '어여 자라..'를 외치며, 한번도 가보지 않은 다른 주로 양손에 힘 빡주고 핸들을 꺾었다. 


졸업을 앞둔 유학생 신분으로 겨우 할 수 있는 건, 불법 체류 혹은 비자 스폰을 해 주는 기업을 찾아 영주권이 나올 때 까지 노예신분으로 사는 것 정도일 수 있겠다. 물론 투자이민도 있고 다양한 사례가 있기야 하겠지만 닭공장을 가는 게 아니라면 많은 범위를 아우르는 선택지가 저 둘이었다. 


어느 작은 시골마을에 있는 생산 관리자. 

그게 내가 맡은 첫 업무였다. 


약에 쓰려고 해도 쓸 수 없는 전공들, 거추장스럽기만 한 가방끈들을 뒤로 하고, 나는 그 곳에서 처음 일을 시작하게 된다. 정말 관리만 해도 되나 싶게 낡은 기계들. 그리고 기계라고는 핸드폰과 랩탑 밖에는 모르는 전구 한번 안 갈아 본 여자 어른은 그렇게 수많은 Spanish들과 섞여 하루를 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참 말도 안되는 전개였지만 나에게는 모든 것이 다 맞아 떨어지고 미국에서의 밥벌이가 드디어 시작되었다는 설레임에 잠을 이루지 못하게 흥분했던 것 같다. 앞으로 펼쳐질 날들은 꿈에도 모른채.



하늘을 이불 삼아 자야 했던 날들의 언급은 여기서 시작된다. 


낯선 주에서 주거 공간을 마련하기란 녹록치 않은 일이었다. 미국은 크레딧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거의 모든 금융거래와 돈과 관련된 일들이 본인이 쌓아온 credit으로 시작해 끝난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맛을 안다고, 이 크레딧도 대출 받아 상환을 하면서 쌓이기도 하고 현금 보유 관련해서도 가져갈 수 있다. 그저 학생이었던 나로서는 신용이 있을리 만무하니 아파트에서도 신용조회를 해 보고 아무런 기록도 없는 나를 받을 수는 없다며 가는 족족 퇴짜를 놓게 된다. 그나마 어렵게 찾은 아파트도 바로 입주는 힘들고 한달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니.크지도 않은 차에 이불까지 싸들고 와 아이와 잘 곳을 해결해야 했던 나는 호텔도 없는 깡촌에서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았다. 


별이 이렇게 밝게 빛나는 존재였나? 

무심히도 잔인하게 빛을 쏘는 인공위성인지 별인지를 보며, 나라는 우주는 어떻게 생겨먹은지 궁금했다. 도대체 어떻게 생겼으면 이토록 말도 안되는 전개가 눈 앞에 펼쳐지는 지. 얼마나 더 오래 살아야 하는지. 하늘은 내가 매일같이 끙끙대는 모습에 그토록 신이 나는지. 아니 다 됐고, 나는 이렇다 쳐도 아이는 안전해야 하는 게 아닌지. 엄마라고 매미처럼 딱 달라붙어, 울어대는 아이를 두고 집도 절도 없이, 아니 당장 일을 시작해야 한다면 아이는 어디에 두고 일을 해야 하는지. 


이 모든 게 모두 짜 놓은 어거지 판에 아사리까지 난 것 같아, 별을 생눈으로 보기가 어려워 썬그라스를 꼈다. 그제서야 별이 밝게 보였다. 내 우주는 남들보다 더 어두워야 빛이 보이는 가 보다. 이왕 이렇게 된거 어쩔 수 없는데, '큰일 났다'라는 생각보다는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당장 에어비앤비 어플을 깔고, 그 근처 하루밤을 보낼 수 있는 곳을 수소문해 열고 들어가, 아이와 먹을 즉석 냉동식품을 렌지에 돌리기 시작했다. 윙하고 돌아가는 소리에 머리가 터질 듯 눈을 뜨기 힘들었다. 그저 다음 날을 위해 눈을 뜬다는 사실이 이렇게도 힘에 부치는 일이었나 싶어, 이 모든 상황이 새롭기만 한 아이 손을 꼭 붙잡고 '너는 괜찮아?'를 시전했다. 나는 꼭 그런다. 내가 위로 받고 싶을 때, 남의 위안을 물어본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내가 낳은 오랜 벗은 그저 침대에 누워 아이패드를 보는 게 마냥 좋아,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 나이로는 한 대여섯살 되었을까. 이 작은 존재가 이토록 형편없는 삶에 끼어들어, 엔진이 되어준다. 그 구차한 '나는 엄마니까'라는 말을 한번은 멋지게 쓰고 싶었는데, 폼은 안나도 이렇게 자주 쓰게 될 줄은 몰랐다. 나에게는 그 한마디가 힘이 난다기 보다는 , 그래도 한번 살다가는 인생 누군가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존재가 아닌 '엄마'라는 자리 정도는 내어 줄 수 있어, 걍팍한 내 삶도 때로는 그럴 수 있음에 어설픈 연민따위는 떨쳐 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아파트에서 입주 소식을 전해 올 때, 나는 바알간 장미꽃 한다발을 사 거실에 흩날렸다. 

그 놈의 꽃길, 내어 줄 수 없다면 내가 뿌리리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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