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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거랜드 감상문

칙칙한 자동차와 밝지만 요동치는 불, 진동이라는 공통점에 뚜렷이 대입된다

by 조한서

영화는 내내 진동이 느껴진다. 자동차에서의 대화, 배에서의 대화, 심지어 일반적인 장면의 음악까지 진동이 느껴진다. 자동차와 배에서의 대화의 배경엔 대부분 자연스러운 엔진소리가 깔린다. 그 위에서의 대화들은 진동 안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는 주인공 이가와 이선의 혼란한 심정 또한 나타낸다.

이가는 처음부터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오히려 그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 남자친구를 찾아가는 것임에도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어 걱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선 또한 마찬가지다. 차를 훔치려다가 멈추는 것, 밤에 차에서 내렸을 때 어떻게 할지 몰라 안절부절해하는 것들을 통해 불안이 나타난다.
이를 통해 둘은 혼란하다는 공통점을 가진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외의 가치관들은 다른 점이 많아 보인다.

둘의 대화를 통해 이가는 사람은 믿지 못하지만 사랑은 믿는 모습을, 이선은 사랑은 믿지 못하지만 사람은 믿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사랑에 대해 불안해하는 이가와 사람에 대해 불안해하는 이선의 감정 또한 대변한다. 하지만 둘의 행동은 이 대화에 맞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가는 사랑에, 이선은 사람에 대해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이 불안을 숨기고 있다는 걸 대사를 통해 드러낸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기에 둘의 행동 또한 전혀 다르다. 결국 영화에서 계속되는 진동은 이를 더 확실하게 표현해낸다.

처음 둘의 만남의 매개체와 이후의 배경들은 이동, 즉 이동수단이다. 영화에서 자동차와 배가 등장하지만, 그중에서 제일 핵심이 되고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건 자동차이다. 자동차 뒷좌석에서 둘의 대화를 바라보는 듯한 카메라 구도들은 자동차의 진동소리와 동시에 대화를 바라보게 한다. 자동차 대화 장면이 나오는 대표적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 보다 진동이 크게 느껴졌는데 이는 진동과 함께 마치 떨리는 듯한 대화를 듣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도 볼 수 있는 이가와 이선이 서로에게 화를 내는 장면 또한 자동차에서 벌어진다.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에서의 대화는 자동차의 진동소리를 묻고, 이를 통해 서로의 불안을 낮춰주는 역할을 한다. 이후 화해를 통해 둘의 관계는 한층 더 깊어진 것이 보인다.


하지만 이선의 거짓말이 밝혀지고 영화가 속전속결로 진행된다는 점이 다소 아쉬웠다. 갑작스런 사건에 나타내지는 결과들이 다소 급하게 흘러가는 느낌이 들었다. 또 이선이 지금까지 보여왔던 모습과 달리 급발진을 하며 화를 낸다는 점은 이선의 또 다른 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선 좋았지만 인물에게 느끼는 호감을 떨어뜨리게 만들었다. 끝까지 영화의 담백함을 유지하는 편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와 동시에 화면은 계속 차갑게 느껴진다. 낮인데도 칙칙한 듯한 날씨의 자동차 밖 풍경과 다소 답답한 차 안의 화면들은 차가우면서도 어색한 느낌을 극대화시킨다. 하지만 이 칙칙함이 기분 나쁘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진다는 점이 이 영화에 매력을 더해준다. 특히 해변씬에서 이점이 부각되는데 영화에서 계속 비춰지는 비스듬하면서도 울퉁불퉁하게 솟아있는 건축물과 이가가 비스듬하게 서있는 미장센에 화면의 칙칙함과 더해져 이가의 불안감을 훌륭하게 나타낸다.

이와 대비되어 화면은 오히려 밤에 더 뚜렷하게 보인다. 둘의 대화도 마찬가지다. 밤에 오고 가는 이야기는 낮에 오고 가는 이야기보다 더 편하고 안정적이다. 이가와 이선이 최종 목적지로 가기 전 창 밖의 어두운 풍경들은 어둡지만 그와 동시에 반짝인다. 이가와 이선이 헤어질 때도 영화의 화면은 어둡다기보단 이전의 화면들보다 칙칙함이 줄어 어쩌면 더 밝다고 느껴지기까지 한다.


특히 이가가 이선과 헤어지고 혼자 차를 타고 밤도시를 거닐 때 창밖은 이제까지와 다르게 반짝거린다. 이는 이가와 이선의 불안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는 것을 효과적으로 나타낸다. 결국 엔딩장면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불과 타오르는 자동차는 이가의 불안을 완전히 해소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엄청나게 진동되는 불은 우리에게 또 다른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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