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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소 May 01. 2020

어떤 이야기가 더 특별한 건

한 사람의 삶이 말자국이 되어서가 아닐까요?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섬마을인생학교를, 도초섬을, 신안을 떠나왔지만 저는 이곳 서울에서도 여전히 이 질문을 슬며시 꺼내서 보곤 해요. 휴대폰 첫 화면에 아직도 적혀있을 정도로 유효합니다.


 운이 참 좋게도 살면서 삶의 태도를 닮고 싶은 어른을 종종 만나게 되는데요. 롤모델, 멘토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그도 원하지 않을 수 있고 그가 살아온 환경과 제가 살아갈 환경은 다를 테니까요. 그래서 저 역시 그들을 따라가겠다고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3박 4일 간 '자유인'이라고 불렀던 어른에게서 어떤 마음을 들였습니다.

 그와의 대화에서도 저는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조심스럽게, 정답은 절대 아니라며 여러 번 강조하며 나눠준 생의 조각은 거대했습니다.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다 동료들과 해직되고 어렵게 유학을 다녀와 공영방송국의 사장이 되었으나 언론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정부에게 해임당하기도 했다고요. 저는 잠시 시간을 빌려 듣기만 했음에도 너무 아팠는데, 자유인은 당신의 삶이면서 차분히 유영하듯 말을 이어나갔어요.


 역사 교과서에서 배운 걸 몸소 겪고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꾸준히, 겨우, 그리고 잘 해내다 우연히 내 앞에 앉아있는 어른을 만났습니다. 


 어떤 이야기는 그냥 특별하다기보다 그 사람의 사람으로 증명해서, 한마디 말속에 한 사람의 역사가 스며서 빛날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른을 어른이라고 하는구나, 이렇게 또 알았습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삶으로 증명돼서
가슴속에 오래 남는, 높은 온도의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아요. 


 너무 큰 이야기, 대단하고 거대한 이야기라서 소화하는 데에만 해도 시간이 걸렸어요. 하지만 귀한 이야기를 듣고 저는 뭐라도 나누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위인전 같기도 한 그 사람의 이야기에 질문했어요. 저는 이렇다고요. 이렇게 불안하기도 하고, 흔들리기도 해서 고민이 된다고요. 어떻게 한 사건 한 번의 상황도 쉽지 않은데 그렇게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고요. 


자유인은 자신에게도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가치관이 무너진 때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신념이라고 굳게 믿고 1순위로 살아왔던 무엇이 무너질 수 있더라고요. 어느 시기에 내 정체성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위기가 온다고요. 그리고 그 시기를 어떻게 마주했나. 어떻게 함께 지나왔나.라는 질문을 던져주셨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흔들릴까.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도 몸 전체가 출렁였다.


제가 흔들렸던 눈 앞의 일들이 정체성이라고 할 만한 걸까, 나는 뭘까. 뭐가 중요할까. 바꾸지 않을 절대적인 신념이라는 게 있었나. 정말 온갖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질문 하나를 던졌을 뿐인데요.


그래서였는지도 반대로 괜찮아졌어요. 미뤄두고 가까이 있지 않다고, 저 멀리 희미하게만 보인다고,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바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돈, 중요한가? 시간, 어떻게 쓰고 있나. 사람, 얼마나 중요한가. 커리어? 어떤 걸 하고 싶은데? 일은 일로서 쓰이고 싶은가 효능감은 어디에서 얻나. 이런 구체적이고 자잘한 물음부터 그냥 해보았어요. 덕분에 저는 가지고 있던 불안함을 조금이나마 직시해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저 스스로를 정의했던 '파도'의 맥락에서 그 질문을 읽게 되더라고요. 나에게는 어떤 파도가 오고 있나, 또는 왔나. 그리고 그 파도를 탈 것인가 부딪힐 것인가 다음 파도를 기다릴 것인가. 이 파도에 승부를 걸 것인가. 그러면서 앞서 생각했던 예측 불가능한 어떤 자연을 보던 마음이 함께 섞여서 창창히 다가올 모를 파도를 기다리는 것보다 지금 오고 있는 이 파도를 탈 것인지 말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는 마음을 세웠던 것 같습니다.



파열음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차가운 느낌, 날 선 느낌이 들어서였달까요.

파-

파.

파도.

하지만 이제 제게 파도는 너무도 매력적입니다. 파아란, 파도. 포말, 폭풍. 용기를 내고 싶을 때,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만연할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할 시기를 만날 때. 저는 이들 단어를 생각하면서 판단할 거예요. 지금 서 있는 자리와 내 눈앞의 주어진 것들을요.


-갑자기 파도가 등장해 의아하신 분들은 1편을 함께 읽으시면 맥락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실 거예요-


그래서 이 파도는 파도의 순간을 사는 것 같습니다. 바다라는 짠 물들의 집합이고 그로 인해서 일어나는 하위 행동이라고만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파도는 바다의 일이 아닙니다. 파도는 매 순간 닥치는 지금을 상기시키고 내 앞에 벌어진 일들을 차례로 확인할 수 있게 해요. 어떤 큰 계획 하에서 이루어진 무엇이라고 생각하기보다 지금 내게 소중한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 나의 상태와 주변의 사람들, 관계와 회복, 부족함을 느끼고 성장하고 싶어 꿈틀거리는 머리 같은 것들을 알아차립니다.


당신은 어떤 파도를 만났나요? 지금 이 파도를 타시겠어요?

한 파도 쉬거나 이 파도를 한번 올라타보거나 직면해보는 편도 좋겠습니다.

저는 오늘의 글쓰기와 레터보내기라는 파도를 잡아볼 생각이에요.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섬마을 인생학교를 다녀온 지 몇 날 후라서 그럴까요. 회고하건대 바로 썼다면 다른 느낌으로 썼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당시 제가 했던 행동들이 떠올려보면 이런 일련의 논리 속에 있었구나를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이제야 이렇게 공유해요. 









이 글은 청년인생설계학교, 섬마을인생학교를 다녀온 덕분에 쓰였습니다.

글과 사진은 채소의 창작물입니다.
협업 및 제안은 메일을 통해 전해주세요.
고맙습니다.
ⓒ 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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