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시간, 식탁에 앉은 아이는 밥을 먹기보다는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덕분에 내 밥은 정신없이 입에 욱여넣고 아이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한 손으로는 아이가 흘린 음식들을 닦아가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전쟁 같은 식사를 하다가 아뿔싸! 내 손으로 물이 가득한 컵을 밀어버렸다. 그 결과 식탁은 이내 물바다가 되는 것은 물론 아이의 옷도 다 젖게 되었다.
“햇살아 괜찮아?
놀란 마음에 아이에게 물었다.
”응. 괜찮지. 실수해도 괜찮아. 닦으면 되지. 안되면 빨면 되고.”
엄마의 실수에 대해 아이가 괜찮다는 말을 듣는 상황이라니. 한편으로는 마음이 단단한 아이로 자라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아이에게 “괜찮다”라는 말을 수없이 하고 있었다. 물을 쏟아도, 물건을 망가뜨려도, 무언가를 하는 것에 서툴러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햇살이가 ‘서툴러도, 실수해도 괜찮다. 다시 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나는?’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하지 않은 채 살고 있었다. 아이가 아파도 내 탓, 아이의 준비물을 깜빡해도 내 탓, 아이와 관련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서도 내 탓인 것 같은 경우들이 많았다. 아이에게 건넸던 따뜻한 말들을 정작 나에게는 건네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의 서툼은 사랑스럽게 바라보면서, 내 서툼은 부끄럽게 여겼다.
돌이켜보면 아이에 대해 걱정하거나 나의 잘못인 듯 자책했던 순간들이 있었지만, 걱정이 무색할 만큼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혹여 어려운 상황을 만났더라도 대부분은 금방 해결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미리 걱정하거나 자책하기보다는 조금은 나 자신에게 너그러워져도 괜찮을 것 같다. 아이에게 늘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처럼, 엄마인 나에게도 “괜찮아”라고 말해주고 싶다. 정신분석학자 도널드 위니컷이 말한 것처럼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가 되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앞으로도 나는 완벽함을 목표로 하기보다, 아이와 함께 웃고 울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싶다. 때로는 실수도 하겠지만, 그 모든 순간이 모여 우리만의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충분히 소중하고, 이미 충분히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