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저는 거부합니다. 계승하지 않겠어요.
토리씨(남편)은 놀이동산과 롤러코스터를 정말 사랑한다. 신혼여행으로 파리에 갔을 때도 베르사유 궁전 대신 디즈니랜드를 택했을 정도다. 경주월드에 새로운 롤러코스터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는 휴가까지 써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만큼 놀이동산에 진심이다.
그런 토리씨 덕분에 우리 부부에겐 놀이동산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꽤 많다. 우리는 서로에게 큰 불만이 없는 편인데, 토리씨가 유일하게 아쉽다고 말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내가 놀이기구를 좋아하지 않고, 특히 롤러코스터는 아예 못 탄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도 할 말은 있다. 나는 연애 시절 오사카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플라잉 다이노소어라는 롤러코스터를 탄 후 평생 롤러코스터 면제권을 획득한 사람이다. 당시 첫 해외여행이었고, 남자친구였던 토리씨가 모든 계획을 세워줘서 고마운 마음이 컸다. 외국 놀이동산도 처음이라 잔뜩 기대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유니버셜에 갔다.
토리씨는 들뜬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하니(나), 이건 정말 꼭 타봐야 해! 인기가 너무 많아서 못 탈까 봐 비싼 패스권까지 샀어. 이건 무조건 타야 해!"
나는 "응, 노력해 볼게!" 하고 대답했다. (물론 여행 경비는 반반 부담했다.)
하지만 플라잉 다이노소어를 보는 순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사람들이 익룡 발에 낚아채여 바닥을 보며 대롱대롱 매달려 날아다니는 콘셉트이었다. 머리 위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토리, 나 못 탈 것 같아!"
"아니야, 이거 진짜 타야 해! 나 혼자 타기 싫어! 제발 소원이야, 한 번만 같이 타줘! 이거 타면 평생 롤러코스터 면제권 줄게."
토리씨의 간절하고 끈질긴 애원에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타기로 마음을 바꿨다. '꾹 참고 한 번만 타보자. 첫 해외여행인데 무섭다고 못 타면 아쉽잖아. 언제 다시 오사카 유니버셜에 오겠어? 그래, 그냥 죽는다 생각하고 타자!' 하는 마음으로 탔다.
줄이 줄어들수록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우리 앞에 12~13살 정도의 여자아이가 서 있는 것을 보고 '어쩌면 괜찮을 수도 있겠다'는 아주 작은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그건 나의 바람일 뿐이었다. 허... 허... 허... 그 롤러코스터는 정말 엄청났다. 내 몸뚱이는 오사카 상공에 무참히 휘날렸다. 의자와 어깨를 감싼 안전장치가 있었지만 그 사이에 끼워진 나의 몸은 한 번씩 붕! 하고 떠서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하늘에 내던져진 느낌까지 들었다. 너무 무서워서 비명은커녕 숨마저 참고 탔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나 같은 겁쟁이에게는 평생 면제권을 받을 만한 엄청난 난이도의 놀이기구였다.
토리씨는 나와 살면서 가끔 그때를 회상하며 내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놀랐다고 말하곤 한다. 함께 살아보니 나는 절대 그런 것을 탈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토리씨는 아이를 낳고 큰 꿈이 생겼다. 용감한 아이를 낳는 것!
로라가 돌 정도 되었을 때부터 토리씨는 바구니에 로라를 태우고 롤러코스터 영상을 보여주며 시뮬레이션을 하기도 하고, 아울렛 같은 곳에 있는 회전목마나 작은 놀이기구를 태우며 놀이기구를 탈 수 있게 준비를 시켰다. "조금만 더 크면 놀이기구 탈 수 있을 거야." 하면서 수시로 키를 쟀다. 놀이기구는 키 제한이 있어서 키가 작으면 못 타는 기종이 많기 때문이다. 로라의 훈련은 계속되었다. 조금 더 크자 하니랜드, 임진각 놀이동산에 가서 놀이기구를 태우며 토리씨는 로라를 단련시켰다.
로라가 만 2세쯤 되자, '이 정도면 큰 놀이동산을 함께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토리씨는 드디어 휴가를 내고 롯데월드에 다녀왔다. 나는 휴가를 낼 수 없어 시어머님까지 설득해 함께 다녀왔다. 어린 로라를 혼자 데리고 가기에는 차로 가는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집순이였던 로라는 집에서 멀어지는 것을 싫어했는데, 생각보다 긴 이동 시간에 힘들어했다. 결국 로라는 회전목마 수준의 놀이기구 몇 개를 타고는 할머니와 벤치에 앉아서 쉬었고, 토리씨 혼자 몇 가지 어트랙션을 타고 왔다고 했다. 토리씨는 롯데월드에 반하지 않은 로라에게 몹시 실망한 듯했다.
하지만 불굴의 의지로 자신의 놀이동산 러버 DNA를 물려주려는 토리씨는 우리에게는 아직 레고랜드와 원더박스, 에버랜드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다음 목표인 레고랜드에 도전했다.
도전은 성공적이었다. 작은 레고로 변신해 레고 공장에서 포장되어 택배로 배송되는 '레고 팩토리 어드벤처'와 닌자가 되어 장풍을 쏘며 적을 물리치는 '닌자고 라이드' 두 가지를 아주 마음에 들어 해서 각각 3~5번 정도 반복해서 탔다. 난이도가 쉬운 편이라 처음에는 나도 함께 탔지만, 횟수를 더할수록 속이 울렁거려 2~3번만 같이 타고, 그다음부터는 로라와 토리씨만 탔다.
그 후 로라는 레고랜드 상사병에 걸렸다. 토리씨는 로라의 레고랜드 앓이에 기뻐했다. 로라는 레고랜드가 정말 재미있었다고 이야기하고, 레고랜드에 놀러 갔던 사진을 볼 때마다 춘천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또 한 번의 레고랜드 여행을 떠났다.
아, 그리고 레고랜드를 한 번 더 가기 전에 그 중간쯤 원더박스도 갔는데, 로라가 즐거워해서 꽤 여러 번 놀이기구를 탔다. 이제 토리씨 놀이동산 계승자인 로라에게 감탄하며 에버랜드에 갈 계획을 세웠다.
에버랜드는 거리도 멀고 늘 사람이 많아 도전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는 고민 끝에 날짜를 정하고 숙소도 예약했다. 에버랜드는 오픈런으로 시작해 불꽃놀이로 마무리하며 성공적으로 마쳤다. 로라는 그중 '스푸키 펀 하우스'라는 어린이용 귀신의 집을 좋아해서 그 귀신의 집만 5번은 간 것 같다. 우리는 말 그대로 그날을 불태웠다.
그리고 얼마 전, 토리씨의 롯데월드 재도전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토리씨는 롯데월드에 가기 위한 최고의 날을 선정하기 시작했다. 사람 구경만 하다가 돌아오지 않기 위해 토리씨는 달력을 보며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먼저 중국 관광객을 견제하기 위한 중국 명절 기간 체크! 초·중·고 현장학습 날짜를 고려한 날짜 체크! 그리하여 중국 명절도 아니고, 여름 방학 개학 후 얼마 되지 않은 월요일인 9월 8일이 토리씨가 선택한 날이었다.
하지만 또 다른 고난이 있었으니, 로라가 타고 싶어 했던 놀이기구는 딱 2개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인 '신밧드의 모험'이 쉬는 것이었다. 토리씨는 고심에 빠졌다. '지금이 아니면 현장학습 오는 아이들과 중국 관광객들로 가득 차서 가기가 힘들 텐데.' 고민과 고민을 하다가 결국 9월 8일에 그대로 가기로 했다.
날짜는 정했지만, 이제 더 큰 관문이 남아있었다. 로라의 허락이다. 토리씨는 한 달 전쯤부터 적극적인 영업에 들어갔다. "로라야, 우리 놀이동산 안 간 지 너무 오래됐다. 아빠랑 롯데월드 갈까?" 토리씨는 과장되게 기대가 가득 찬 말투로 이야기하며 로라의 마음을 움직이려 했지만, 로라는 원하는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아니요. 가기 싫어요." 첫 시도는 무참히 실패했다.
토리씨는 로라의 이집트에 대한 관심을 미끼로 '파라오의 분노'를 영업해 보았다. "로라야, 이집트 있잖아! '파라오의 분노' 이거 너 예전에 타고 싶어 했잖아! 이집트 좋아해서…" 로라는 이집트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에 잠시 관심을 가져서 집에 이집트 책이 몇 권 있다. 토리씨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이미 '파라오의 분노'라는 놀이기구를 로라에게 유튜브 영상으로 가상 체험을 몇 번 시켜줬었다. "이제 관심 없어요." 로라의 단호한 거절에 토리씨는 로라를 어떻게 꼬셔서 데려갈지 방법을 고민하며 애가 탔다.
그런데 그런 남편에에게 로라를 설득할 방법이 생겼다. 롯데월드를 가려고 날짜를 잡아놓은 일주일 전쯤, 로라의 관심사가 '트랄라레오'에서 포켓몬스터로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로라의 관심사가 '트랄라레오'에서 다른 것으로 빨리 넘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던 터라, 로라가 피카츄 이야기를 하자마자 "이거 엄마, 아빠도 어릴 때부터 좋아했었어!"라고 이야기하며 흥미를 잃지 않도록 쿠팡에서 새벽 배송으로 포켓몬스터 도감을 주문했다. 그리고 다음 날 피규어도 몇 개 바로 주문해 주었다. 드디어 '트랄라레오'에서 벗어나는 것인가 하는 마음에 괜히 신이 났다.
토리씨는 포켓몬스터로 꾸며진 롯데월드를 보여주고, 포켓몬스터 콜라보 간식들을 보여주며 로라에게 이야기했다. "로라야! 피카츄 만나러 가자. 꼬부기 슬러시랑 피카츄 아이스크림도 있어!" 토리씨는 보여주는 사진을 보며 로라가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했다. "아빠, 이것 봐봐요. 꼬부기 슬러시 먹고 싶어요." 토리씨는 눈빛도 반짝였다. "이것 봐봐, 롯데월드에 가면 다 있어!" "우와! 아빠, 저 가고 싶어요." 토리씨의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다음 주 월요일에 유치원 빠지고 아빠랑 롯데월드 가자!" 그날부터 로라와 토리씨는 매일 롯데월드 사진과 디저트 사진을 찾아서 함께 보며 대화를 나눴다." 아빠, 피카츄 공연 동영상 한 번 더 보여줘요." "로라야, 이것 봐. 롯데월드 가면 오레오 츄러스도 있대." 로라는 이제 롯데월드를 기대하고 기다렸다. 롯데월드에 가기 전날 로라는 설레며 잠자리에 들었다. "엄마~ 롯데월드 너무 가고 싶어요. 기대돼요."
그리고 대망의 월요일! 나는 출근하고, 토리씨는 로라와 롯데월드를 갔다. 이번에도 역시 시어머님을 설득해서 함께 갔다.
그날 점심쯤 '카톡!' 하고 내 핸드폰이 울렸다. 토리씨가 보내준 사진에는 로라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그 한 문장에 토리씨와 로라의 행복한 시간,
토리씨는 뿌듯함과 만족감이 느껴졌다.
사진 속 로라의 눈이 유난히도 반짝인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두 존재의 행복이 내 마음에 와닿아 내 마음도 반짝반짝 빛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