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서점에서 건축책을 샀다.
건축업을 하고 있지만 건축책을 본 지가 오래됐다.
저연차 사원시절엔 비교적 자주 건축책을 찾아보고
건축 잡지도 보고 건축 세미나까지 찾아가 듣곤 했었는데
11년 차가 된 지금은 오히려 더 안 보게 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실무에 너무 찌들어버린 걸까
실무를 나쁘게 생각하진 않는다.
이건 정말로 지어지기 위한 과정이니 말이다.
인허가를 하고 인허가권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서
공사비를 세이브하고 품질을 높이면서 민원사항을 최소화하고
비주얼적으로 화려하게
사업적으로 최대이득이 되게
그런 것들을 신경 쓰다 보니
예전에 학교에서 배운 건축, 내가 좋아하던 건축들은
현실감이 없고 점차 잊어지게 되었다.
유현준의 인문건축기행이라는 책을 샀다.
학교 때 배운 건축물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었다.
무려 10년 전인데 여전히 그 건축물들을 찬양하는 게
시대가 변하고 AI가 건축을 하는 시대까지 되었는데
건축학문은 제자리걸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거기서 말하는 건축과
내가 하고 있는 건축은 같은 걸까 다른 걸까
내가 하고 있는 건축을 싫어하진 않는다.
최대 사업성을 내면서도 심미적으로 아름다운 건축을 만드는 것
너무 이상주의적으로만 건축을 하는 건 재미가 없다.
건축이 조각과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방화구획이 법적 기준에 맞는지
단열 계획이 맞게 되어 있는지
경관과를 설득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지
발주처가 원하는 사업성과
전략들 그리고 멋져 보이게 만드는
CG스킬까지
건축을 한다라고 말하기 위해서
알아야 할, 익혀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한편으로는 윗사람들은 이걸 다 알고 저 자리에 있는 걸까
그렇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내가 갈 길은 어디인가
나는 무엇을 익혀야 하는가
가다 보면 견디다 보면 어딘가 도달해 있으려나
그런 마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니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나는 건축이 하고 싶은가
내가 하고 싶은 건축은 어떤 모습인가
한편으로는 다 때려치우고
베이커리 카페나 차리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그것도 쉽지 않은 거라는 걸 알지만
견디다 보면 버티다 보면
최후의 1인이 되어 전문가가 되는 것인가
유현준이 100만 유튜버로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건축가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건축업계 안에서 유현준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많이 있다.
유현준 사무소에서 그린 건물이 기초가 대지경계선을 넘어가 버리게 그릴 정도로
기본적인 것을 지키지 않고 알지 못하고 그저 명성만으로 건축가로서 인지도를
쌓는 것을 보면서 중요한 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
삶은 그걸 계속 찾아나가는 과정에 있는 것인가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찾으려면
우선 내가 되기 싫은 모습부터 쳐내면서
방향을 찾아가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고 싶지만
그동안 쌓아 올린 건축을 놓고 싶지도 않다.
반대로 그냥 놓아버리고 싶기도 하다.
우선 맥주나 마시고 오늘 산 책이나 더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