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 자고 가

자리를 선뜻 내어주는 마음들에 대하여

by 알렉스

지지난주, 한국에 사는 친구가 도쿄로 퇴사 기념 여행을 왔다. 도쿄로 오는 거면 내 방에서 자고 가라고 먼저 말을 꺼냈다. 쉐어하우스라 방이 좁고, 규칙상 묵는 내내 머물 순 없지만 이틀밤이라도 자고 가라고. 마침 내가 입주한 방에는 우연인지 운명인지 2층 침대가 있었고 나는 앞으로 종종 내 방에서 자고 갈 사람들을 위해 침구를 사두었다. 그렇게 친구와는 이틀을 꽉 채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일상적인 장소만 다니던 내게 신선함을 주는 또 다른 여행이기도 했다.


지난주에는 전에 살던 쉐어하우스에서 만난 친구가 독립해서 혼자 사는 집에 초대를 받았다. 좁은 쉐어하우스 방이 답답해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그간의 설움을 해소할 만큼 큰 집을 구했다고 했다. 그러니까 놀러 와서 자고 가라고. 그렇게 친구네 집에 갔다. 처음 가보는 동네에서 먹을 거리를 사고, 거실에서 콘솔 게임을 하고, 피자를 시켜 먹고, 요즘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친구가 챙겨주는 아침밥을 먹고 출근도 같이 했다.


집에 초대받는다는 건 굉장히 사적인 사건이다. 어렸을 땐 친구 집에 놀러가는 걸 대단히 특별한 일로 생각하지 않았는데, 한국을 떠나 해외 생활을 하면서 친구 집에 초대받을 일이 드물다 보니 그게 아주 사적이면서 애틋하고 특별한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여태 내가 내 방에서 재운 사람들과, 나를 자기 방에서 재워준 사람들을 생각했다.


열네 살이 어린 사촌동생이 떠올랐다. 막내이모는 고속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걸리는 이웃 도시에 살았고 나는 종종 이모와 외할머니 그리고 사촌동생을 만나러 혼자 버스를 타곤 했다. 그때 동생이랑 무얼 하고 시간을 보냈는지는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책을 읽어주거나 같이 놀이터에 나가 그네를 밀어주거나 슈퍼에 가서 군것질거리를 사거나 했을 것이다. 그러고 나면 나는 늦어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사촌동생은 늘 이렇게 말했다.


언니, 오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가.


그때는 그럴 수 없는 사정이 있어서 동생의 요청에 그러겠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동생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 솔직하게 집에 가야 한다고 했는데, 왜냐고 물어보는 동생에게 이유를 설명하면서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거절하는 것이 힘들다는 걸 알게 되기도 했다. 네 살, 다섯 살 정도였던 동생은 그저 함께 노는 게 즐거워서 자고 가라고 말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그 마음이 얼마나 따뜻하고 특별한 것인지 돌이켜보게 된다.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있고 싶어서 자리를 선뜻 내어주는 마음.

자신이 머무는 가장 편안한 공간에 그 사람을 초대해 따뜻한 자리를 내어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


사랑하는 사람과 충만한 시간을 보내고 혼자 집으로 돌아가면서 대화를 곱씹고 생각을 쌓는 시간도 소중하지만 가끔 잠들기 직전까지 졸음에 푹 젖은 목소리로 띄엄띄엄 서로의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밤들도 특별하다. 자고 갈 생각까진 없었는데 친구 집이 내 집처럼 편해서 늘어지다가 결국 퍼지게 됐던 날들은 다음날까지 웃는 일로 가득했다.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는 말은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친밀하고 다정한 표현 중 하나 아닐까.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사람에겐 사람의 온기가 필요하고, 함께 웃고 떠들며 사적인 공간을 공유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어린 시절 나보다 더 어린 동생의 자고 가라는 말을 거절해야 했던 상황에서 미안한 감정만이 또렷하게 남아 있는 건 그래서였나 보다. 그 말을 꺼낸 건 그만큼 나와 시간을 더 보내고 싶다는 뜻이었으니까.


덕분에 내가 받은 친밀함의 표현들이 얼마나 넉넉한 것들이었는지 생각해본다.

자고 가라고 권하는 마음을 알게 된 만큼 더 넉넉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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