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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갑낫을 Sep 19. 2019

같이 있어도 외로웠던 주말

차라리 내가 톤톤용병단이었으면


부탁드려요




나는 사실 SNS 중독자라고 할 수 있다. 블로그, 인스타그램, 유튜브 최근엔 브런치까지 안 하는 게 없는 온라인 소통 지향형 인간에 속한다. 동생이 그랬다. 언니는 죽는 순간에도 “이번 생은 좋은 생이었다.”라고 올릴 인간이라고.


반면 남편은 몇 시간씩 인스타그램 피드를 구경하고 모르는 셀럽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며 뭐가 그리 재밌냐고, 웃어넘기곤 했다.


근데 나는 요즘 핸드폰 보는 게 좀 시들해졌다. 질렸다고 해야 하는 건지, 내 삶에 더 집중하고 싶어 진 건지, 남의 일상에도 별 관심이 없고 내 인스타그램마저 일상 기록용 외에 별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다.





나나 좀 체계적으로 관리해줘봐




그동안 오빠는 톤톤용병단이라는 게임을 시작했다. 결혼 1주년 나트랑 여행에서도 내가 그 게임 좀 그만하라고 했으니 오빠가 벌써 그 게임에 빠진 지 1년 정도 된 것 같다.


또 다른 오빠의 온라인 활동이라면 웹툰 보기와 관심분야인 낚시와 해루질 카페의 글들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넷플릭스를 본다거나 낮잠을 자면 오빠의 핸드폰은 야구 시청, 카페, 게임, 웹툰 총 네 개의 탭이 선순환 구조를 만들며 아주 쌩난리가 나는데 이때가 유일하게 오빠의 멀티태스킹 능력이 발휘되는 순간인 거 같다.


근데 지난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주말 내내 오빠랑 집에서 뒹굴며 붙어있는데 갑자기 서운한 마음이 소용돌이쳤다. 오빠는 낚시 카페와 웹툰, 톤톤용병단과 엘지 트윈스 경기를 번갈아 보며 누구보다 평화로운 상태였지만 난 갑자기 깊은 설움을 느낀 거다.




엉엉 차라리 내가, 오빠가 하루종일 공들여 키우는 톤톤용병이었으면




그래도 뭐 나도 인스타그램에 미친듯이 집중하던 전적이 있으니 오빠를 좀 냅두기로 했다. 마침 나혼자산다 스페셜 재방송을 하길래 난 거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핸드폰도 저 멀리 내려놓고 홍콩 여행 편을 보며 미친 듯이 웃고 나니 기분이 좀 나아진 것도 같았다. 그러다 무심코 오빠를 봤는데 틈틈이 방송을 보며 웃고 있지만 여전히 핸드폰을 쥐고 있는 모습이었다. 티비와 핸드폰을 번갈아 보면서 톤톤용병들을 키우기에 바빠 보였다.





이렇게 재밌는데, 내 옆에서 같이 안본다고?




문득 외롭고 서운한 감정이 몰려왔다. 분명 같이 있는데 왜 이렇게 슬픈 기분이지? 내 맘속 깊은 곳에서 오빠도 핸드폰 내려놓고 내 옆에 딱 붙어서 같이 봐주길 바랐던 것 같다. 아니 근데 레드펄스, 네이버 웹툰, LG트윈스, 톤톤용병단에 내가 밀리다니? 나 쟤네한테 밀린거야 지금?


핸드폰 속 아이들에게 우선순위를 뺏겼다는 생각에 설움이 더 몰려오려는 찰나에, 갑자기 이 프로그램 본방송 때 오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몇달전 오빠는 쇼파에 앉아서 이거 좀 같이 보자고, 너무 웃기다고 눈물을 흘리며 웃어댔고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우리의 여행 영상을 편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빠는 그때 어땠을까




워낙 평온하고 또 무심한 남자라 나만큼 서운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치만 그때 오빠가 같이 보자고 했을 때, 핸드폰을 잠시 내려두고 그 순간을 오빠랑 같이 즐겼더라면, 같이 공감하고 미친 듯이 웃었더라면 더 좋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가 같이 보자고 했을 때 “오빠, 나는 지금 우리를 위해서 그 재밌는 프로그램도 안 보고 영상 편집에 집중하고 있잖아!” 라며 빽빽거리던 나란 늬연을 깊이 반성했다. 앞으로는 오빠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순간들, 지금, 서로에게 충실해야지! 다짐했다.





맨날 그만하라고 소리치는 나란 늬연과 어딘가 겹치는 느낌적인 느낌




나는 매번 오빠에게 초딩이냐고, 톤톤용병단 좀 그만하라고, 웹툰은 왜 자꾸 보는거냐고, 그럴거면 야구 선수를 하지 그랬냐고 씩씩거렸지만 사실 내가 싫어했던 건 오빠가 머리를 식힐 겸 즐기는 몇몇 취미 그 자체가 아니었다. 오빠가 이태원클라스라는 띵작 웹툰을 보여줬을 때 현질하면서 누구보다 흥분했던 게 나니까.





톤톤용병이야? vs 나야?





난 그저 우리가 함께 있는 시간에 웹툰, 낚시 카페, 엘지트윈스, 톤톤용병단 같은 애들이 나보다 더 남편의 관심을 받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질투를 했던 거였다. 우선순위는 인간이자 아내이자 세상 유일한 존재인 나인데^^


아무튼 깨달음이 깊은 나처럼, 결혼 초에 내가 싫다던 모바일 게임을 쿨내나게(술김에) 삭제하던 그 모습처럼, 언제가 우리 오빠도 톤톤용병단 따위 삭제해버렸다면서 핸드폰을 저 멀리 내려놓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하루하루, 온전한 우리만의 순간을 함께 즐기는 시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로 오늘은 오빠랑 거나하게 한잔 하면서 술김에 뭐라도 하나 지우게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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