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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리 Feb 06. 2020

고작 이런 일 하려고 (1)

미생 시리즈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스타트업 열풍을 정통으로 때려 맞고 창업을 열망하다가 2012년, 우연한 기회로 중국 시장을 타겟으로 한 스타트업에 조인했다. 그리고 이듬해 글로벌 청년창업 활성화 사업 상해 진출팀에 합격했다. 상해에서 사무실, 네트워킹, IR(Investor Relation) 기회를 제공받고 사업계획서를 디벨롭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상해로 떠나는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기도 전에 또 하나의 합격통보가 있었다. 언제나 기회는 한 번에 들이닥쳐서 인간을 시험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길고 긴 취준 터널에서 겨우 갈피를 잡았다고 안도했던 내게 잘 나가는 패션회사의 스포츠마케팅 인턴십 최종 합격이라는 선택지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괴로운 딜레마를 안겨주었다.


결국 상해와 서울을 오고 가며 두 마리 토끼를 잡아보려던 나는 한달만에 인턴십을 그만두었고, 상해에 머물면서 글로벌 청년 창업 활성화 사업 3위에 입상했다. 그치만 내 멘탈과 능력은 거기까지였다. 스타트업 대표나 멤버로 이 한몸 바쳐 사업을 지속할 깡도 의지도 내공도 정말 턱없이 부족한 대학생. 안전한 정부 사업 프로그램 속에서는 마음 놓고 뛰놀던 새끼 사자가 진짜 정글에 뛰어드는 건 불안했달까.



꿈 많던 시절, 상해에서



더불어 당시 나는 대표라는 타이틀에 취해있었다. 사업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중국시장에서 성공한 대표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네트워킹하는게 너무 재밌었다. 나를 대표로 대우해주는 것도 좋았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이나 부끄럽다. 그치만 이때의 값진 경험이 나를 보다 현실적으로 만들어줬다. 그래서 이제는 꽤 괜찮은 수익 모델이 떠오른다 하더라도 창업해볼까?라는 말을 쉽게 내뱉지 않는다.


그 프로그램에서 현재까지 고군분투하며, 내공을 키워온 몇몇 팀은 그때의 사업 아이템을 꾸준히 디벨롭해서 국내외 투자를 유치하는 진짜 스타트업으로 자리 잡았다. 그들의 치열한 고민, 토론, 삽질, 밤샘, 발품팔이, 실패와 도전, 포기하지 않는 열정과 의지는 대표 놀이에 취해있던 치기 어린 나와는 비교하기 어려운 진지함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VC(Venture capitalist)들을 만날 때마다 한계를 체감했지만 그들의 날카로운 질문들 덕분에 배운 점도 많았고 사업적 고도화도 이뤄냈다. 순위권 입상,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을 뿐.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2년 넘게 몸담았던 스타트업에서 (스스로 생각하기에) 다소 불명예스럽게 엑싯했다. 그리고 운 좋게도 한 달간 인턴십을 했던 패션회사의 배려로 광고홍보팀으로 입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2014년, 몇 달 만에 대표에서 신입사원으로 신분이 수직 낙하했다. 인턴십 기간을 다 채우지도 않고 그만둔 애가 여차 저차 해서 공채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으니, 동기들 외에 회사 사람들의 눈초리도 따가왔다. 형식적으로 시간을 채우는 인턴십 프로그램보다 상해에서 만나는 인연과 기회가 더 가치 있을 거라는 직감으로 박차고 떠났던 자리에, 결국엔 다시 돌아온 거다.


그렇게 돌고 돌아 안정적인 월급쟁이가 되고야 말았지만 나의 내적 갈등은 더욱 심해졌다. 막연하게 갖고 있던 직장인에 대한 환상과 상해에서의 대표 생활이 짬뽕되어 신입사원이라는 신분을 망각하고 현실을 부정하기에 급급했다. 이런 일은 왜 해야 하지? 왜 이런 방식으로 하지? 사수가 시키는 일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날이 많았고, 까라면 까야되는 문화가 아직도 실존하는 현실에 좌절했다.


패션회사 마케팅파트에 근무하는 커리어우먼의 삶. 겉으로 보기엔 화려해 보였지만 실상은 퀵과 행낭, 까대기의 연속이었다. 매 달 매거진이나 디지털 매체 화보 촬영, 에셋 협찬을 위해 물건을 출고하고, 까대기 하고, 사이즈와 착장 별로 분류해서 다시 퀵을 보내는 루틴이 업무의 메인이었다. 어느 날은 하도 퀵 전화를 많이 해서 내가 퀵 서비스 회사에 취업을 한 건지 패션회사를 다니는 건지 헷갈린다고 동기들과 푸념하곤 했다.





내가 고작 이런 일이나 하려고...





그럴 때마다 나는 이런 잡스런 업무가 계속되는 게 너무도 못마땅했다. 대체 언제까지 박스를 까대고, 퀵을 주고받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인가? 이럴려고 울며불며 취준한게 아닌데... 매일 자괴감이 나를 집어삼켰다. 간절한 마음으로 신입사원이 된 건 맞지만 도무지 내가 맡은 업무에 애정이 생겨나질 않았다. 애정이 없으니, 일에 대한 욕심도, 고민도 없었고 왜 이렇게 생각 없이 일하냐고 혼나는 날도 있었다.


잡지는 꼴도 보기 싫어졌다. 매 달 온갖 종류의 매거진이 도착하면 우리 브랜드 화보가 실린 지면을 찾아 깔별로 스티커를 붙이는 작업을 하는데 이거만큼 소모적인 일도 없었다. 퀵 발송이든 까대기든 잡지 수색이든 대체 왜 하는 건지, 어떤 부분을 더 신경 써서 해야 하는지, 무언가를 하나라도 배우기 위해서는 어떤 사수를 만나느냐가 중요했고, 그건 순전히 운에 달려 있었는데 그런 면에서 난 운도 없었다.


이 일이 진짜 필요해서 시키는 건지,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하면 안 되는지, 몇 번이고 계속되는 삽질이 너무 싫어서 질문을 하거나 의문을 가지면 돌아오는 답변은 여기는 학교가 아니다, 내가 너보다 몇 년을 더 사회생활을 했는지 알고는 까부냐며, 그냥 좀 시키는 대로 하라는 닥달뿐이었다. “정시에 퇴근하고 싶기 때문에 네게 기획안을 써볼 기회를 주고 피드백하느라 괜한 야근을 하기 싫고, 그럴 의무도 없다.”고 했던 미친 사수도 있었다.


그나마 쇼호스트 아카데미 시절 갈고닦은 실력 덕분에 가끔 사내 아나운서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이럴 때를 제외하고는 살아있음을 느끼기 어려운 일상이 지속됐다. 사실 신입사원이 협력사 컨벤션이나 스포츠 대회, 브랜드 론칭이나 기자 간담회 이슈가 있을 때마다 회사를 대표하는 아나운서(프리젠터)로 제대로 된 역할을 맡는 다는건 대단히 감사해야할 일인데 나는 오만하게도 이런 기회라도 없다면 당장 때려치워야 마땅한 현실이라 생각했다.


사실 동기들은 불평불만을 하면서도 현실을 빠르게 직시하고 적응하려고 애썼다. 반면 나는 그리 특별할 것도 없으면서 불합리한 업무 지시에 불만을 쏟아내기 바빴다. 역시나 오만했다. “상해에서는 진짜 대단한 사람들만 만났는데... 퀵 보내기랑은 비할 수 없는 원대한 꿈을 키워온 나인데... 여기서 이런 취급 당하고 있을 사람이 아니란 말이얏!” 마음의 소리라 해도 이불킥 감이지만 이런 생각도 지배적이었다.




왜 몰랐을까



당장 그럴싸한 기획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나대로 좀 더 일다운 일을 하고 싶었다. 업계 관습이니 밑바닥부터 경험을 쌓아야 나중에는 기획도 하고, 의사결정도 할 수 있는거라는 말이 귀에 들어올리 없었다. 쥐뿔 아는 건 없어도 회의에 참여해서 아이디어도 내고, 기획안도 써보고 부딪혀가며 일을 배우고 싶었지 행거에 신상 가득 싣고 와서 보여주고, 컨펌된 옷들을 또 박스에 포장해서 퀵을 보내는 업무는 정말이지 그만하고 싶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는 잘 몰랐던 것 같다. 다들 고작 이런 일들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대단해보이는 기획안도 최종버전으로 보고하기 위해 몇십번의 수정을 거치고, 마케팅 예산 몇십억을 운영하더라도 엄청나고 대단한 의사결정만 하는 게 아님을. 내가 고작 이런 일들이라고 생각했던 업무들이 쌓이고 쌓여야 겨우 릴리즈 가능한 애드버토리얼 한 장이 탄생하고, 우리 브랜드 신상이 공중파 한번 더 탈 수 있고, 그게 이슈가 되거나 매출로 잘 연결됐을 때 결국 내가 속한 조직과 내가 성장하게 되는 것임을.



별표 다섯개하고 적어둬야지



고작 이런 일이나 하려고 회사 다니는거 아니라고 징징거리던 신입사원 시절의 나란 늬연. 50개가 넘는 매거진의 웹하드에 50번 로그인해서 보도자료를 올려야 하는 마감날을 가장 빡쳐하고, 이런 개뻘짓이 마케팅이라면 그만두는게 낫겠다고 분노하던 나란 늬연. 그 모든 단계가 결국엔 내가 그리도 원하던 그럴싸한 일을 하기 위한 초석이었음을, 그때 미리 알았더라면 나의 첫 회사 생활이 조금은 더 윤택하지 않았을까 (약간의 반성과 함께) 회고한다.


아무튼 첫 직장생활을 통해 깨달은게 몇가지 있다. 첫째는 고작 이런 일이라 생각되는 그 삽질과 뻘짓속에서도 무언가를 배우고, 발전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것. 둘째는 내가 업무를 지시할 일이 생긴다면, 아주 사소한 업무라도 왜, 무엇을 위해서 해야 하는지, 이 방식이 구리더라도 왜 이렇게 하고 있는 건지 차분히 설명해주며 최대한 후임이 일에 애정을 갖도록 독려해야겠다는 다짐. 셋째는 앞으로 어떤 회사로 이직을 하더라도 무조건 수평적인 분위기에서 내가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곳으로 갈 것.



다음 회사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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