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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갑낫을 Feb 20. 2020

고작 이런 일 하려고 (2)

미생 시리즈



첫 번째 회사를 3년 차에 그만두고 3개월을 쉬었다. 사실 쉬지는 않았고 회사 다닐 때보다 더 미친 듯이 치열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우선은 이직이 목표였기 때문에 채용사이트를 샅샅이 뒤지고, 지원하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그 중간중간에는 사업계획서 대필, 블로그 운영, 중국어 공부 등을 촘촘하게 끼워 넣었다. 내가 간절히 원했던 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시간에 할 수 있는 자유였다.


회사에 다니면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월급을 받으려면 일이 많든 적든 꼼짝없이 일정 시간을 버텨내야 했다. 그런데, 8시간 동안 단 1분도 허투루 쓰지 않고 업무에만 집중하는 사람이 있을까? 때때로 정해진 근무시간이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 나의 욕심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업무 중간중간 나가서 담배를 피우는 건 휴식이고, 잠깐씩 개인적으로 리프레시할 수 있는 다른 일을 하면 딴짓 취급을 받는 게 이해불가였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 하지 않았나.



첫 직장생활을 회고하며 이 문장이 더욱 와 닿았다. 누구보다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나였기에 매 달 제출해야 하는 트렌드 리포트에 대한 아이디어가 넘쳐났었다. 꾸준히 블로그를 운영해왔고, 각종 홍보대사와 기자단 활동을 비롯해서 온갖 브랜드의 마케팅 활동과 채널 운영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보고 들은 것들을 연결하다 보면 결국에는 내가 맡은 실무에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그렇지만 업무 시간 간간이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구글 검색을 하고 있으면 썅욕을 먹었다. 쓸만한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대환영이지만 크리에이티브의 원천은 퇴근하고 개인적으로 개발해야 할 덕목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다양한 접근과 시도는 철저하게 막으면서, 트렌드를 읽고 인사이트를 도출해내는 능력을 키우라거나 세상에 없던 새로운 마케팅을 하라는 주문은 절망 그 자체였다.


당시만 해도 셀럽마케팅이 메인이었지만, 회사는 높은 비용을 지불해가며 인플루언서들에게 홍보 콘텐츠를 의뢰하곤 했다. 그때 나는 틈틈이 내 블로그를 키워서 사내 블로거로 활동하면 덕업일치가 되겠다 생각했지만 이것도 철저하게 딴짓으로 분류되었다. 물론 이미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블로거와 일하는 편이 효율상 나았으리라. 근데 혹시 모른다. 정말 그런 기회가 주어졌다면 내가 사내 인플루언서팀 꾸려서 CIC(Company In Company) 하나 차렸을지도.



구글의 모든 직원은 업무 시간의 20%를 자신만의 프로젝트에 사용할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구글의 핵심 사업분야가(스트릿뷰, 크롬북) 이 20% 시간에 창조됐다는 것이다. 구글의 경쟁력은 창조적인 이들을 더욱 창조적일 수 있게 도와주는 ‘20% 법칙’에 있다.



찾아보니 이상적인 회사가 실로 존재했지만 구글 입사를 목표로 하기에는 내 실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계속 패션회사에서 커리어를 이어가는 것은 아예 선택지에서 제외했다. 퀵과 행낭의 늪에 진절넌덜머리가 났기 때문이다. 한 우물만 10년 이상 파온 것도 아닌데 업종이나 직무에 나를 가둘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전략기획부터 제휴 마케팅까지 재미있어 보이는 직무라면 모조리 지원서를 냈다.



1. 보일러 기업, 언론홍보
2. 종합광고대행사, 홍보마케팅
3. e커머스 기업, 제휴 마케팅



그리고 최종적으로 3개의 회사에 합격했다. 가장 분위기가 젊고, 사내 정치나 눈치 야근이 없는 수평적인 조직, 내가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쇼호스트를 꿈꾸었던 시절을 떠올려보니 내가 직접 파트너사를 만나 딜을 기획하고, 상품을 판매하고, 어드민으로 실시간 매출을 확인할 수 있는 회사는 3번이었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직장생활이 시작되었다.


사실 이때는 구직활동에 지쳐 있기도 했고, 인간의 마음이 간사한지라 어딘가에 빨리 소속되어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오만하던 신입사원 시절과는 전혀 다른 마음가짐으로 조직에 적응하려 부단히 노력했다. 동료들과의 번개 술자리도 빠짐없이 참석했고, 미션이 주어지면 나의 인적 네트워크와 아이디어를 총동원해서 신규 딜과 파트너를 소싱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야!



거짓말 째끔 보태서 진실로 월요병이 없었다. 동료들도 좋았고, 일도 재밌었고, 회사에 가는 게 즐거웠다. 파트장님은 퇴근 시간 전부터 칼퇴를 독려했다. 나의 저녁 시간은 완벽하게 보장되었다. 진짜 이런 회사가 있단 말인가? 이때가 유일하게 버티는 삶이 아니라 즐기는 삶을 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개인적으로도 파티 플래닝, 팟캐스트 등등 다양한 도전을 할 수 있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행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나는 매너리즘에 빠졌다. 드디어 내 딜이 오픈된다고 들떠서 날뛰는 것도 잠깐이었다. 매번 새로운 딜을 오픈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시즌별로 상품이나 가격만 조금씩 바꿔 같은 딜을 올리는 루틴이 반복되었다. 언제부터인가 기계적으로 딜을 타고 있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e커머스 채널의 특성상 딜이 오픈되는 00시에는 늘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는데, 이것도 아주 사람을 미치게 했다.


더불어 파트장에서 승진한 팀장님은 권력을 거머쥐자마자 폭군 리더십을 시전 하기 시작했다. 카톡 지옥에 팀원들을 가둬놓고, 새벽이고 주말이고 할 것 없이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대답을 할 것을 종용했다. 그 밖에도 각출 워크샵 강요, 각종 기념일 챙기기 강요, 일부 팀원에 대한 인사보복 및 협박 등 업무 외적인 스트레스가 도를 넘어서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느새 우리 팀원들은 그이의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현대판 노예가 되어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들이 있었지만 수차례 대표 교체를 거치며 처참하게 망가진 조직 분위기도 한몫했다. 파트너와 협의해서 좋은 딜을 만들어도 내부 가이드 때문에 더 높은 가격에 판매해야 한다거나, 서로의 파트너를 뺏고 빼앗기는 경쟁 시스템에 몰아넣는다거나, 오전 11시가 되면 무조건 30분 동안 콜드콜을 하라는 어이없는 지침이 나를 견딜 수 없게 했다. 어느 날은 두 시간 일찍 출근해서 홍보 전단지를 나눠주는 활동에 임직원 전부가 동원되기도 했다.




내가 고작 이런 일이나 하려고...




신입사원 때 하던 말을 또 반복하고 있을 줄이야... 나름의 포부를 가지고 이직했고, 자부심을 느끼며 일했다. 그 어떤 조직보다 유연하고 기회가 많았으며, 열심히 일하는 만큼 성과도 인정받았던 곳이다. 처음으로 이런 회사와 동료들이라면 오래 다닐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곳인데, 그 꿈같았던 직장생활의 유효기간이 이리도 짧다니!


그리하야, 두 번째 직장생활을 통해 깨달은 게 있다. 회사는 어디든 다닐게 못 된다는 것이다. 어떤 회사를 가더라도 결국에는 못 견뎌 미쳐버리는 순간은 오고, 나는 분명 다시 퇴사를 할 것이다. 그렇게 뾰족한 수 없이 백수가 되면, 적어도 이전보다는 괜찮을 거란 희망으로 다시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어 안달이 날 것이다. 그렇지만 또 얼마 못가 고작 이런 일이나 하려고 다니는게 아니라고 학을 떼거나 저새끼 때메 도저히 못 다니겠다며 퇴사를 하겠지.  



아무튼 가장 분명한 건, 평생 이렇게 살다 갈수는 없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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