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시다.
벌써 결혼 3년 차다. 문득 지난 3년간 남편 덕후인 내가 남편과 크게 싸웠던 순간들이 언제였는지 돌이켜봤다. 부동의 1순위 키워드는 시댁이었다. 처음에 남편은 시댁에서 느끼는 나의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이해하기 힘들어했고, 나는 시댁만 다녀오면 격분해서 분노 조절 장애를 앓았다.
그런데 내가 주목한 건 이게 비단 나만 겪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시'는 '시'다. 미혼, 기혼 따질 것 없이 여자라면 한 번쯤은 이 절대 공식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가정마다 처한 상황이 모두 다를 터인데, 어떻게 이 공식이 아직까지도 격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단 말인가?
결혼 초에 우리 시댁 너무 좋다고, 우리 시어머니 엄청 쿨하시다며 자랑하던 친구들도 몇 해 지나지 않아, 역시 ‘시’는 ‘시’다. 라며 저마다 겪은 먼지 차별과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을 때마다 나는 이 문제에 더욱더 강렬한 호기심을 느꼈다.
레파토리는 거의 비슷했다. 한 남자를 사랑해서 둘이 행복하게 살아보려고 결혼했는데 갑자기 '기본 도리'라는 프레임을 씌워 다양한 형태의 시댁 갑질이 미세하게 난무하고,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며느리에게만 특별히 부과되는 의무가 갈등의 핵심이었다.
저를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이 시대의 진정한 알파걸로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버이날이었다. 엄빠한테 장난스러운 카톡을 보내고도 마음에서 찝찝함이 사라지지 않아 괴로움에 시달렸다. 분명 결혼 초에 안부 연락은 각자가 책임지고 본인 부모님을 챙기기로 남편과 합의했다. 이대로라면 난 내 역할 다 한거다. 근데 대체 뭐지? 이 똥 안 닦은 느낌은?
결혼 이후, 시어머니는 꾸준히 며느리의 안부전화를 원하셨다. 이유는 목소리를 자주 듣고, 그래야 가까워진다는 거였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떤 시어머니의 잔소리에도) 전화를 하지 않는 편을 택했다. 가장 큰 이유는 억지 전화가 서로를 더 멀어지게 할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달 용돈을 챙겨드리고, 한 달에 한번 만나 뵙고, 생신과 명절, 아버님 기일과 같은 대소사에 참여하고, 반찬을 챙겨주시면 카톡으로 감사 인사를 드리는 정도. 그게 남편과의 결혼을 통해 갑자기 가족이 되어버린 어머님께 당장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나는 천천히,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는 가족이 되고 싶었다.
그치만 시어머니는 결혼을 했으면 싫어도 해야 하는 게 있는 거라고, '며느리'가 '전화'로 안부 연락을 하는 게 '기본 도리'라고 강조하셨다. 뭐 생각은 다양할 수 있기 때문에 어머님은 그렇게 생각하시는구나, 하고 꾸준한 잔소리에도 꾸준히 전화를 드리지 않자, 어머니는 직접 전화를 하기 시작하셨다.
문제는 통화가 시작되면 본인의 이야기만 한 시간 넘게 하신다는 거였다. 며느리 목소리 듣고 싶어서, 친해지고 싶어서 전화하셨다는 분이 왜 나는 한마디도 못하게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얼마나 외로우시면 그러실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단번에 거절할 수 있는 깜냥도 안돼서 (며느라기였던 1년 동안은) 진심을 다해 들어드렸다.
그런데 점점 전화가 힘들어졌다. 남편이 시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있으면 심장부터 뛰고, 나를 바꿔달라고 하시면 어쩌나 온몸에서 통화를 거부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렇게 날이 갈수록 콜포비아에 대한 심각성을 호소하자 남편은 시어머니의 전화로부터 나를 해방시켜주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썼다.
문제는 며느리와의 통화를 원하는 시어머니께 아내는 샤워 중이다, 설거지한다 등등의 핑계로 상황을 모면했다는 거다. 결국 시어머니는 '며느리 나랑 전화하기 싫다니?'라는 돌직구를 날리셨고, 그럴 때마다 남편은 내게 장화 신은 고양이 표정을 지으며 '제발 한 번만 받아줄래?'라는 눈빛을 보내곤 했다.
그렇게 전화가 내게 넘어오면 남편은 본능적으로 다리나 어깨를 주물러주며 안절부절 내 표정을 살피기 바빴다. 아마도 통화가 끝나고 우주 대폭발을 한 내가 어떤 괴팍한 행동으로 응징할지 매우 무서웠을 것이다. 그렇게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고군분투했지만 결혼하고 처음 겪는 문제들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암튼 찾았다! 똥 안 닦은 느낌의 원천. 남편은 우리가 미리 양가에 보내 놓은 꽃바구니와 편지로 퉁치겠지만, 내가 문제였다. 더는 찝찝함을 느끼고 싶지 않은 것만은 분명했다. 결국 시어머니께도 귀여운 이모티콘을 선물하며, 안부 카톡을 남겼다. 여기저기에 안부전화 지옥에 시달리는 며느리들의 고민 글이 넘쳐나고 있는 오후였다.
남편은 친정에 안부전화 걱정 안 하는데
며느리는 시댁에 왜 연락해야 하나요?
시댁 전화 집착 정말 지긋지긋해요...
남편은 친정으로부터 안부전화를 강요받지도 않고, 그저 본인의 자유의지로 연락할 수 있다. 그 연락은 횟수도 상관없고, 눈치를 볼일도 아니며 오히려 반갑고 감사한 일로 대우를 받는다. 게다가 새해, 명절, 어버이날을 비롯한 일상에서 전화를 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따위의 쓸데없는 고민에 휩싸이지도 않는다.
반면 나는 결혼과 동시에 자유의지를 박탈당한 느낌이다. 안부전화 횟수가 적다거나 먼저 안 한다는 이유로 눈치를 봐야 하고, 문자나 카톡도 아니고 친정엄마는 물론이고 친구랑도 안 하는 전화를 요구받으며, 그걸 못하면 기본 도리도 안 하는 애라고 욕을 먹는 골 때리는 상황에 처하다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것은 사회적, 문화적 관습의 문제인가? 개인 성향의 문제인가? 대체 안부전화를 통해 시부모님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니 어른들이 원한다고 치자 왜 남편은 못 느끼는 찝찝함을 나만 느끼고 있는 거지? 나만 빡치는게 아니구나 싶으면서도 이런 걸 고민이라고 하고 있는 내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나의 미혼 친구들은 지금 이 시각에도 본인의 커리어와 미래를 위해, 어떻게 하면 돈이 돈을 벌게 하는가? 와 같은 보다 생산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쌓고, 세계관을 넓혀가고 있는데... 고작 안부 전화를 하네, 마네를 가지고 안달하고 있는 꼴이란 우습기 짝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남편에게 의무적인 안부전화가 왜 싫은지 충분히 설명해왔다. 첫째, 우리는 각자 부모님 안부를 챙기기로 합의했다. 둘째, 며느리에게만 요구하는 안부전화는 부당하다. 셋째, 전화가 즐거우려면 서로 대화가 되어야 하는데 내 역할은 오로지 어머님 이야기를 듣는 것뿐이다. 나는 시어머니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
남편도 이 부분에 대해선 늘 전적으로 동감했다. 다만, 내가 힘들다고 하는 상황을 타계할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남편에게 물어보니 사실 결혼 초엔 '어떻게 하면 우리 엄마한테 전화하게 만들지? 내가 처가댁에 하면 얘도 하려나? 엄마가 바라는 건 전화뿐인데...그게 어렵나?’라는 생각을 한적도 있단다.
물론 요즘의 남편은 버그가 많이 개선됐다. ‘장인 장모님은 원하시지도 않는 전화를 엄마가 원한다고 숙제처럼 같이 하자는 것도 억지 같다며’ 안부전화를 비롯한 미묘한 문제들에 대해 본인 스스로가 진심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서야 비로소 우리는 한 배를 타고 덮쳐오는 파도를 하나씩 넘겨갈 준비가 되지 않았나 싶다.
어찌 보면 이 버전까지 오기 위해 내가 남편 멱살 잡고 하드캐리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이런 크고 작은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결혼 생활을 지속했을 때 나타나는 더 큰 갈등 상황을 주변에서 너무 많이 보고 들은지라 이건 내게 해결해야 하는 우선과제이자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갈등은 일방적인 요구에서 온다. 결혼 전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안부전화라는 건 상대방의 안부가 궁금해서 하는 아주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행동인데, 이게 고민이나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는 걸 이해할 수 없다. 심지어 이걸로 도리를 운운하는 건 더 웃기다. 더 이상은 나도, 이 근원 모를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감정들이 고스란히 사랑하는 남편에게 매우 부정적으로 표출된다는거다. 그래서 나는 사명을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서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 가정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내 친구들이 다양한 형태로 겪고 있는 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