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시다.
남편과 대학생 때부터 연애를 해서 결혼했다. 물론 서로에게 첫사랑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치만 그건 이제와 결혼한 우리 사이에서 굳이 꺼내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 시댁에 가면 꼭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남편의 초등학교 시절 첫사랑 이야기다.
난 남편의 어린 시절 이야기만 듣고 싶었을 뿐인데, 시어머니는 매번 "우리 아들이 000를 너무 좋아했고, 생일파티에서도 000 옆에 앉고 싶어서 울고불고 난리 었는데..."라며 이름 석자까지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어지는 멘트들은 다 이런 식이다.
"000 진짜 너무 예뻤는데... 걔가 너무 예뻐서 우리 아들이 좋아했잖아."
처음에는 나도 깔깔깔 웃어가며 "역시 어릴 때부터 예쁜 건 알아가지고, 결국엔 저 같은 미인을 얻었나 봐요." 여유 넘치게 받아쳤는데... 점점 그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듣게 되니 이름 석자까지 저절로 외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남편과 싸울 일이 생기면
"첫사랑 000 찾아가서 살어! 얼마나 좋아했으면 어머니가 아직도 말씀하실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짜증을 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날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또 남편의 첫사랑에 대해 시동을 거셨다. "000 걔 진짜 예뻤는데..."
정말 안 되겠다 싶어서 에둘러 말씀드렸다. "어머니, 자꾸 오빠 어릴 때 첫사랑 얘기하시면 제가 질투 나요." 어머, 내가 실수했네 또는 주책이다.라는 반응을 원했던 내게 돌아온 멘트는 참혹스러웠다. "아니, 우리 아들 어릴 때 일을 가지고 무슨 질투를 해. 너도 참 속이 좁다."
난 정말 속이 코딱지만큼 좁은 늬연인걸까? 내가 정말 남편의 어린 시절 이야기 가지고 너무 예민하게 구나? 도저히 한듣한흘이 안되길래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친구를 만나서 이 일화를 털어놓았다. 그녀가 한참을 웃더니 내게 말한다.
"우리 시어머니는 나랑 결혼하기 직전에 선봤던 변호사 여자 자꾸 얘기해.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시는 시야."
그러고 보니 남편의 첫사랑 얘기에 이어 늘 따라붙던 이야기가 바로 남편의 소개팅이다. "결혼 직전에 너랑 연애할 때 교사 소개팅이 들어왔는데, 내가 만나보라고 하니까 우리 아들이 의리가 좋아서 딱 거절 하드라. 얘, 이런 남자 어딜 가도 없다?”
일절 아들 부부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를 참 반복적으로 하신다 생각했는데 이게 내 동생도, 친구도, 선배들도 다 이미 한 번쯤은 들어봤던 이야기라니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왜 모든 시어머니들은 아들의 첫사랑, 맞선 상대 등등을 며느리 앞에서 이야기하시는 걸까?
엄마 세대에서나 공감할만한 레파토리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왜 아직도, 여전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까지 뼈저리게 공감되고 씁쓸해하는 이야기가 되어버린 걸까? 참 애석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