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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갑낫을 Feb 05. 2021

남편의 첫사랑

시는 시다.

남편과 대학생 때부터 연애를 해서 결혼했다. 물론 서로에게 첫사랑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치만 그건 이제와 결혼한 우리 사이에서 굳이 꺼내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 시댁에 가면 꼭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남편의 초등학교 시절 첫사랑 이야기다.


난 남편의 어린 시절 이야기만 듣고 싶었을 뿐인데, 시어머니는 매번 "우리 아들이 000를 너무 좋아했고, 생일파티에서도 000 옆에 앉고 싶어서 울고불고 난리 었는데..."라며 이름 석자까지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어지는 멘트들은 다 이런 식이다.


"000 진짜 너무 예뻤는데... 걔가 너무 예뻐서 우리 아들이 좋아했잖아."


처음에는 나도 깔깔깔 웃어가며 "역시 어릴 때부터 예쁜 건 알아가지고, 결국엔 저 같은 미인을 얻었나 봐요." 여유 넘치게 받아쳤는데... 점점 그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듣게 되니 이름 석자까지 저절로 외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남편과 싸울 일이 생기면


"첫사랑 000 찾아가서 살어! 얼마나 좋아했으면 어머니가 아직도 말씀하실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짜증을 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날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또 남편의 첫사랑에 대해 시동을 거셨다. "000 걔 진짜 예뻤는데..."


정말 안 되겠다 싶어서 에둘러 말씀드렸다. "어머니, 자꾸 오빠 어릴 때 첫사랑 얘기하시면 제가 질투 나요." 어머, 내가 실수했네 또는 주책이다.라는 반응을 원했던 내게 돌아온 멘트는 참혹스러웠다. "아니, 우리 아들 어릴 때 일을 가지고 무슨 질투를 해. 너도 참 속이 좁다."


난 정말 속이 코딱지만큼 좁은 늬연인걸까? 내가 정말 남편의 어린 시절 이야기 가지고 너무 예민하게 구나? 도저히 한듣한흘이 안되길래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친구를 만나서 이 일화를 털어놓았다. 그녀가 한참을 웃더니 내게 말한다.


"우리 시어머니는 나랑 결혼하기 직전에 선봤던 변호사 여자 자꾸 얘기해.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시는 시야."


그러고 보니 남편의 첫사랑 얘기에 이어 늘 따라붙던 이야기가 바로 남편의 소개팅이다. "결혼 직전에 너랑 연애할 때 교사 소개팅이 들어왔는데, 내가 만나보라고 하니까 우리 아들이 의리가 좋아서 딱 거절 하드라. 얘, 이런 남자 어딜 가도 없다?”


일절 아들 부부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를 참 반복적으로 하신다 생각했는데 이게 내 동생도, 친구도, 선배들도 다 이미 한 번쯤은 들어봤던 이야기라니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왜 모든 시어머니들은 아들의 첫사랑, 맞선 상대 등등을 며느리 앞에서 이야기하시는 걸까?


엄마 세대에서나 공감할만한 레파토리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왜 아직도, 여전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까지 뼈저리게 공감되고 씁쓸해하는 이야기가 되어버린 걸까? 참 애석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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