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시다.
왜 우리네 시어머니들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아들 부부에게 "우리 아들 변했다. 원래 안그랬는데..."를 시전하시는 걸까? 아들의 연락이 뜸하거나 나에게 많은 관심과 애정을 주지 않는다 싶을 때, 혹은 다른 이유로 맘에 들지 않을 때, 이 멘트가 꼭 한번쯤 등장하는 것 같다.
"요즘 엄마가 많이 외로워서 연락 좀 자주 해주면 좋겠어." 라는 솔직한 표현이 있는데 왜 꼭 며느리 앞에서 "변했다"고 해야 직성이 풀리시는 걸까? "우리 아들이 진짜 살갑게 나한테 잘했는데... 변했어." 시댁에 가면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했는데, 나는 이 말이 참으로 불편했다.
반면, 친정에서는 우리 딸이 사위를 잘 만나가지고 결혼을 하더니 드디어 사람됐다며 남편을 칭찬하기 바쁘다. (물론 진짜 결혼하고 사람된건 인정하지만) 남편은 나랑 알콩달콩 열심히 잘사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한 일이라고 칭찬을 받는데, 나는 왜...?
하루는 정말 너무 궁금해서 대체 오빠가 얼마나 살가운 아들이었는지 이야기 해달라고 했는데, 남편은 그야말로 세상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미친듯이 살가운건 아니었고 그냥 평범했단다. 근데 결혼을 하고보니 갑자기 자신의 과거가 상당히 미화되어 있는 것 같다며 멋쩍어했다.
그럼 그렇지, 시어머니는 서운함이라는 본질적인 감정을 그런식으로 표현하고 계신거였다. (뭐가 그렇게 서운하신지는 모르겠지만 예로부터 "아들 빼앗긴 느낌" 이라는 말이 있었으니, 그 말로 이해하기로 한다.) 나는 불편한 상황 개선 협회 회장으로서 남편에게 이 말이 얼마나 내게 불편한 말인지 설명했다.
내 앞에서 어머니가 자꾸 오빠가 날 만나서 세상 못된 불효 자식으로 변한것 처럼 이야기 하시면 마치 나의 존재를 부정하시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고, 그리고 결혼해서 가정을 이룬 아들이 본인의 가정과 아내를 더 신경쓰고 챙기는게 맞지 않냐고...
남편은 간만에 격하게 동의했다. 그 후로 시어머니께서 "너 결혼하고 변했다."라는 뉘앙스의 말씀을 하시면 남편은 당당하게 "엄마, 결혼하고 나서 변하는게 맞지 않아요? 저도 이제 한 가정의 가장인데, 아들에서 가장으로 변하는게 맞죠!"라며 대응한다.
나를 좋아해주고, 칭찬해주고,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받아들여주는 사람들을 다 만나고 살기도 벅찬 세상에 살고 있다. 예전에는 인간관계가 좁아진다고 걱정했지만 요즘은 내가 불편한 사람들을 굳이 챙기고 맞춰가면서 까지 만나기 보다는 편안한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데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여긴다.
가족관계도 마찬가지다. 불편하면 자주 보기 어려워진다. 게다가 며느리라는 이유만으로 불편한 말을 듣고도 참고 넘어가는 시대는 지났다. 나는 친정이든 시댁이든 자주 보고, 가족끼리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끊임없이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삶의 태도를 견지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