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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갑낫을 Jan 19. 2022

니네 엄마

시는 시다.


친정에 가면 아빠가 남편에게 인사를 건넨다. "사돈 어르신, 누님도 별일 없이 잘 계시지?" 오빠의 누나, 즉 시누이를 누님이라고까지 할 필요가 있나? 아무튼 그렇게 안부를 묻는 아빠가 너무 극존칭을 쓰는 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지만 존중의 의미로 생각하기로 했다.


서글픈 건 시댁에선 그런 작은 존중을 기대하는 게 사치가 된다는 점이다. 시어머니는 안사돈, 사돈어른 등의 단어는 왠지 낯간지럽고 입에 잘 붙지 않는다며 줄곧 "니네 엄마"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다. 처음에는 진정 그런 줄로 알았기 때문에 익숙해지시는데 시간이 필요하시겠지 싶었다.


근데 그게 입에 붙어야 하는 말인 건가? 왜 아빠한테서는 버퍼링 없이 튀어나오는 말이 시어머니한테는 어려운 거지? 점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니네 엄마"라는 표현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시키고 시정에 힘써줄 것을 요구했다.


남편은 "니네 엄마"라는 단어가 나의 발작 버튼이 되었다는 것을 통감하고 있었기에 적극적으로 애써주었다. 다만 이따금씩 시어머니는 "니네 엄마"라고 이야기를 꺼내신 후에 아들이 지적하면, "어머 미안, 또 실수했네"하고 넘어가신다는 게 문제다.


몇 년째 고쳐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후론 그냥 그게 어머님 스타일이시겠지 하며, 내 멘탈을 챙기는 쪽으로 마음을 바꿨다. 다만 그게 진정 어머니 스타일이라면, 사위에게도 똑같이 하시겠지?라는 일종의 기대감은 있었다. (사위에게도 그러시면 진짜 인정!)    


작년 시누이가 결혼했고 처음으로 함께 가족이 다 모여서 식사를 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사위를 향해 사돈 어르신, 어머님이라고 존칭을 붙여가며 사돈댁의 안부를 물으시는 시어머니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진 건 나뿐이었을까.


식사 자리가 끝나고 시누이 부부는 앞에서, 우리 부부와 어머님은 뒤에서 함께 걸어가는데 "니네 엄마, 아빠도"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을 꺼내시자 남편이 한마디 했다. 자꾸 실수해서 미안하다고 하시는 시어머니의 사과가 왜 이리 진정성 없이 느껴지던지...


이 날은 멘탈을 챙긴다는 이유로 외면하고 회피했던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해야겠다고 다짐한 날로 기억한다. 그냥 다 그러고 사는 거지, 어른들은 안 바뀌어, 옛날 마인드라 어쩔 수 없지, 등등의 핑계로는 이러한 일상 속 불평등이 대대손손 대물림될 것이다.


당장 불편한 말을 꺼내야 하더라도, 약간의 거리두기가 필요해진다 하더라도,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 할 말은 하는 내가 되어야지. 나 자신을 지키고 존중받는 존재로 만드는 일에 소홀하지 말아야지. 이게 바로, 나 자신에게, 그리고 전국 며느리 연대에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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