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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리영 Jul 10. 2024

문 열면 바다가 보이는 집

여수 바다♡

나의 고향은 서해안 영광이다.  


영광을 검색하면 굴비가 줄줄이 매달려

말리고 있는 풍경이 나온다.

아니면 소금을 만드는 염전이 있는 고향 영광.


청주로 대학을 가고 내륙지방에 사는 친구들은 바닷가 동네에서 살았다고 하자

나에게 묻곤 했다.


"너희 집 문 열면 바로 바다가 보여? "

"아니 나도 바다 보러 40분은 차 타고 가야 해"


라고 말했다.


서해 바다는 바다가 보인다고 해도

온통 검은 뻘이 많은 바다라

바다의 풍경이 어둡고 푸른빛이 덜하다.

바다를 보고 아름답다고 멋지다고

느끼며 살진 않았던 거 같다.


노을이 질 때는 아름답지만

나는 어촌이면서도 바닷가와는

먼 농촌에서 살았기에 논 밭의 풍경이 더 익숙했다.


아주 먼 옛날에는 바닷물이

우리 집 앞에까지 왔는지

내가 사는 동네 이름이

막 해(바다의 끝) 마을이긴 했지만 말이다.


대학생활과 직장생활을

내륙지방에서 했던 터라

바다를 보지 않고 5년 정도는 살았다.


임용공부를 하다 지친다든지

직장생활에 권태감을 느끼면

바다와 인연이 있던 터라

마음의 기분을 풀고 싶어 바다를 찾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여수 남자인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눈만 뜨면 푸른빛 바다가 보이는 집에

10년째 살고 있고 살게 되었다.


친구들이 묻던 문만 열면 바다가 보이는 집

처음 3년은 매일 이런 풍경을 본다는 게 감격스러워서 가슴이 설레고 행복했다.


계절마다 하늘의 풍경이 달랐고

특히 가을 노을 지는 붉은 풍경은

볼 때마다 감격스러웠다.


그러다 뜻하지 않게 찾아온

짙은 고난에 일상이 묻혀버린 날들이 길어지면서

집 밖 풍경은 그저 버거운 내 삶과

다른 눈부신 하루들 중 하나였다.


그렇게 7년을 지내왔고

올해로 이 집에 산지 10년이 되었다.


오랜만에 풍경을 바라보니

밤 새 내린 비로 초록은 짙어졌고

하늘은 구름이 뭉게 거리며 빠르게 지나간다.


나의 10년의 시간이 저 구름들처럼

지나가버린 듯했다.


시간이 모이고 뭉쳐서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이 감사하면서도

그 간 고생했다는 말을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어졌다.  


다시 이 풍경을 아름답다고 보는 시간이 오기까지

나는 얼마나 가슴을 졸이며 하루를 보냈는지

때로는 철렁거리는 걱정과 시련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순간을 거쳤고


때로는 죽음과 생명의 기로에서 처절하게 울면서

내 아이의 숨결을 생명의 쪽으로 죽을힘을 다해 당기는 안간힘을 견뎌야 했다.


어쩌면 아름다워 보이는 저 풍경에도

때론 하늘이 무너지듯 천둥소리가 내려앉았고

감당하기 어려운 바람으로 휘청거리며 혼란스러운 날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늘은 고요해졌고 바다와 산도 평안해졌다.  


마흔이 되고 10년의 시간 동안 이룬 게 없이 지나버린 게 아닌가 싶어 아쉬웠고 허무했다.


고난이 가득한 시간을 거쳐가던 순간들이

긴 터널처럼 느껴져 막막해하는
나에게  남편은 한 번씩 말했다.


우리 가정의 고난이
10년을 넘기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 곧 좋은 날이 올 거야.
난 그렇게 믿어.




나의 30대에 아픈 아이를 돌보며

나로서는 이룬 게 없는 듯 하다지만

지금 이 풍경을 다시 바라보며

아름답다 느끼는 이 순간이 얼마나 감사한지

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토록 기다리던 좋은 날이 왔고

더 많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도 말이다.

 

그리울 정도로 매일의 평온함이 주는

평범한 감사가 간절했다.  


이제는 감사의 마음을 괴롭고 힘들 때

그리워하지 않고

거저 주어진 하루가 아님을 기억하며

새기는 법을 배웠다.


일상에서 감사를 아는 내가 되기를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 동안

감사를 잊지 않는 나이기를


오늘이 오기까지

매일 좋은 날만 있던 게 아니라

흐리고 비바람 치는 날들도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기를


그래서 더 아름다운

오늘의 풍경임을 기억하려고 한다.


하늘의 풍경을 바다가 오롯이 담아내듯이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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