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엄마는 다양한 책을 알고 계시면서 다방면으로 뛰어나신 분이에요. 배울 점이 참 많은 사람이랍니다. "
" 이 분은요. 학부모 동아리 대표이셨고요. 늘 열심히 학부모 동아리를 이끄시면서 최선을 다하신 분이에요. "
점점 내 차례가 오면서 왜 그런 설명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나는 도대체 뭐라고 설명하려나 궁금해졌다.
" 아... 아.. 이분은...
(아이를 설명하자니 나는 도움반 특수아동의 엄마이다. 우리 아이는 뛰어난 게 없다. 8살인데 엄마라고 말도 못 하는 아이, 초등 입학 첫 상담 때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물으셨다. 여명학교 특수학교에 안 가고 일반 학교에 온 이유가 뭐죠? 그렇다 나는 아이로 말할 게 없는 엄마이다. 왜 이 학교에 왔냐고 들었던 불청객 같은 엄마였다. )
음. 이분은.. 그러니까.. 매일 걸어서 학교 오시고 걸어서 집에 가시는 열심히 걸어 다니시는 엄마세요."
듣고 나니 나는 뚜벅이 엄마
아이를 버스 타고 걸어서 학교에 데려다주고
나의 첫 일상을 걸으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의 엄마였다.
[최선이나 배울 점이나 뛰어난] 은 들어가지 않은
걸어 다니는 엄마
그게 나의 부연설명이었다.
집에 돌아와 생각하니 그게 뭐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걸어 다니는 엄마라고 말한 그분은
그 뒤 나에게 이런 말도 했다.
" 가리영씨
별 볼 일 없는 사람인지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그러니까 나는 별 볼 일 없으면서 걸어 다니는 사람이었다.
자존심이 상하는 순간
화끈거리는 얼굴은
내 마음 어딘가의 버튼을 눌렀다.
보이는 판단이 아닌
내 내면의 진가를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아 그리고 내가 보여준 적이 있는가?
아픈 아이를 7년 동안 집에서 홀로
독박육아로 키우며
나는 알게 모르게 남들과 다른
나의 내면이 키워져 있었다.
해도 해도 안 되는 상황에서
하염없이 울어도 봤고
심한 좌절감에 붕괴라는 감정도
수없이 느껴보았다.
그러나 엄마라는 책임감에 포기할 수 없었던 아이에 대한 생명의 보호자로
나는 다시 일어서야 하는 순간들을
누구보다 오래 겪어왔다.
깊은 구덩이 속에서 아무리 외쳐봐도
아무도 나를 건져내 줄 수 없었던 막막함이
나의 하루에 울릴 때에도
나는 버티고 버텨야 했다.
으스러질 것처럼 때로는 꺼져버릴 거 같은
아이의 나약한 생명 앞에서
나는 간절히 비는 법을 배웠다.
제발 살려주시라고, 나 좀 도와주세요라고
대답 없는 소리 가운데 희망을 잡아야 했고
한 방울의 물이라도 아이에게 힘이 되기를 바라며
먹이고 키워왔다.
비록 별 볼 일 없고 비루해 보여도
나는 버티는 힘을 누구보다도 키워왔다.
묵묵히 참아야 하는 시간이
인내라는 단어로 나를 채워주었다.
아이의 연약함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나의 고난이 다른 이를 공감하는 마음으로 여물어가게 했다.
잠시 화끈거린 내 마음은
나를 판단하기에
누군가에겐 내가
잠깐의 스쳐가는 풍경의 초라해 보이는
한 그루의 작은 나무 일지라도
얼마나 많은 시간
그곳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아왔는지 아냐고
나는 아직 꽃을 피우지도 않았고 열매도 맺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