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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만에 시도한 첫 경험

by 가리영

긴 시간이 흐르는 물처럼 흘러내려갔다고 생각했는데 의도치 않게 한 겹씩 쌓여 두터운 벽이 되어있었다.


-과연 이 벽을 내가 넘을 수 있을까?

-바라보지도 겪지도 못했던 벽 뒤에 있는 세상에 내가 잘 섞여 지낼 수 있을까?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뒤로한 나의 시간들이 어리바리함으로 포장되어 버린 건 아닐까?


벽에 조금씩 구멍을 내 보았다.


처음엔 소심하게 그리고 뚫리긴 할까?라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시도는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소중함으로 지켜온 존재는 독립적인 존재가 되었고 그에 맞게 나 또한 독립적인 존재가 되고 싶었다. 소중함을 지켰다는 의무가 보상받고 싶은 마음에 집착이 되고 간섭이 될까 싶어 적당한 거리를 둬야 함을 미리 알아챘다. 긴 시간을 되돌림과 동시에 적극적으로 나아감으로 나로서의 정체성을 찾고자 했다. 그렇게 시작한 시도는 점점 구멍이 넓어져 벽 뒤에 세상에 나아가는 문이 되었다.


나는 그 문을 열고 닫는 주체자로서의 존재가 되었다. 겨우 발을 넣고 몸을 비틀어 나와보니 새로운 세상이 보였다. 시작의 자세가 겨우와 비틀어가 합쳐져서 인지 나는 살짝 구부정한 자세로 첫인상을 보였는지 모른다. 분명 기억할 것은 벽이 부스러지고 문의 공간을 만들고 손잡이를 달아 나의 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시도라는 용기가 필요했다. 굉장히라는 단어가 붙어야 할 만큼 큰 결심이었다. 나만의 시간에 대한 낯섦, 나라는 존재가 가진 가능성을 다시 시도해 보는 재 취업이라는 첫 경험은 새내기 입학과 젊은 시절에 겪어온 첫 출근. 삶의 가장 큰 변화를 준 결혼 이후의 출산, 양육과는 또 다른 느낌의 새로움이었다.





생각보다 첫인상이 주는 느낌은 중요했다. 그리고 처음 만나는 사회적 타인의 존재도 중요했다.

누군가의 도움이나 섬세하면서 친절한 가르침은 아주 미세하게 작고 희박했으며 사실 거의 없었다. 기대한 바와 다른 무심함과 냉정한 사회생활에 매뉴얼 없이 역할을 맡김 받았다. 막막함이 드는 적응의 시간에 왜 이리 모르겠는지 싶어 몇 번이고 멈춰 돌아보기도 했다. 결국 삶은 각자도생(제각기 스스로 살아갈 방법을 꾀함.)이었다.


새해를 3일 앞둔 오늘, 생존의 법칙처럼 살기 위해 알아갔던 그 시간을 되돌아보고 싶어졌다.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남아있는 (깨닫고 느끼고 배운 것 ) 것들을 글로 적어봐야겠다고 마음이 들었다.


흰 도화지에 동그라미를 하나 던져준다고 해도 그려나가는 그림은 다 제각각이다. 표현하는 방법도 작품에 대한 해석도 그리고 가치와 평가도 마찬가지이다. 하루하루 내가 보낸 일상에 누군가는 숨겨있는 진실된 노력과 수고를 알아봐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 자신의 경험과 견해로 판단하곤 했다. 사회생활은 다양한 판단에 마주 서는 일이었다.


아주 가끔 생각하지도 못한 꼬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었다. 상대가 가진 꼬인 마음과 꼬인 생각과 꼬인 의도를 내가 가진 진실로 풀어나가 보려다 결국 내 마음까지 꼬꼬꼬꼬(미움, 원망, 서운, 저주)이고 말았다. 배배 꼬인 줄을 다시 풀어보려고 노력해 보았다. 결국 꼬인 줄은 원래대로 다시 꼬일 수밖에 없는 회귀의 법칙이 있다는 것을 필요 없는 노력으로 힘을 뺀 후에야 깨달았다. 앞으로 그런 노력은 하지 않기로 했다. 꼬임은 상대방의 몫임을 인정하고 일찍 포기하고 멀리하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


삐뚤어진 가치관과 마음가짐으로 그럴듯하게 속도만을 생각하고 달려 나가는 사람에게 너도 같이 빨리 가자고 재촉을 당하기도 했다. 결국 상대의 본심 알고 이용당하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피하다 보니 나는 쉽게 얻고 편할 수 있지만 위험이 기다리는 길을 걷지 못할 때도 있었다. 바르지만 수고해야 하는 길 나에게 이득은 없지만 옳은 길을 걸어야 했다. 때로는 이걸 누가 알아준다고 하나 싶었다. 남들은 몰라도 그 말을 하는 내가 나의 지나온 시간의 흔적을 알고 있었다. 힘들지만 이 길이 바른 길이라는 것을 안전하면서 옳은 길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내가 나를 위로하며 다독거리며 나아갔다.


아첨과 위선 그리고 진심이 없는 달콤한 말 이 세 가지는 내가 가장 하지 못하는 입 밖의 표현들이다.


아첨은 사회생활에 꼭 필요한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니 중요한 본질에 집중하지 못하고 쏟아야 할 힘을 누군가의 마음에만 들려고 써야 하는 게 아첨이었다. 오래 깊이 생각하며 간사하게 행동하는 것이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의 방향에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아첨의 대상에게는 아첨하는 자의 말과 행동이 좋은 꽃처럼 보일지라도 진실된 시선으로 보는 자들에게는 가짜 꽃일 것이다. 생명과 향기가 없는 꽃이 주는 특유의 거짓이다. 내면과 다른 포장된 말과 행동이 위선이라는 것도 배웠다. 내 마음을 속일 수는 없었다. 달콤한 말이 가진 달콤함 또한 언젠가 나에게 독이 될 거란 예측은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나를 속이지 않았고 깊은 내면에서 들리는 옳은 방향에 대한 소리를 귀 기울이려고 노력했다. 타협하고 싶은 유혹에도 나는 싸워서 이겨야 했다. 비록 아직은 부족한 부분이 많아 사실은 이랬는데 이렇게 돼버리고 말았어라는 실망감과 서운함을 말해보지만 나는 좀 더 옳고 바른 것에 대한 내면의 가치관에 대한 확신이 더 단단해지는 시간의 경험을 가졌음을 감사해 본다.


올해 내가 가진 문의 폭과 높이를 시간 속에 주어진 경험을 통해 더 크게 만들었다. 이제 시작이라 그런지 완고함과 단단함으로 여물지는 못했다. 어쩌면 그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유연함과 의연함을 갖는 삶의 태도를 배웠기 때문이다. 바른 가치관에 대한 확신은 더 굳어지고 미련과 서운함은 가볍게 털어내고 버리는 마음가짐을 가진 내가 되었다.




안녕~! 2024년


오래 기억에 남을 나의 첫 경험은 용기를 가지고 시도한 큰 결심이었어! 앞으로도 잘해나갈게!!



마지막으로 2025년 새해

나를 이끌어 줄 마인드 셋 문구를 남겨본다.

한줄카피 책 중에서 찾은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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