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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새해에 받고 싶은 특별한 복

by 가리영

# 겨울이다.

몇 개의 단풍잎과 땅에 떨어진 낙엽들이 하루가 다르게 사라져 갔다. 가을이 떠나갔음을 그리고 겨울이 되었음을 알려준다. 바스러지는 낙엽의 흔적들이 쓸어 담아지고 어딘가로 정리가 되었다. 추위를 버티려면 더 풍성하게 가지를 덮어줘야 할 거 같은데 이상하게 자연은 비워내고 털어내며 최소한으로 겨울을 준비한다.


#마흔이다.

삶의 흔적들을 눈으로 느낄 수 있는 거울을 본다. 얼굴과 몸 여기저기서 탱글 해짐은 조금씩 사그라지고 노곤해지고 늘어진다. 생각 그러니까 내가 가진 열정을 따라가기에 버거워하는 몸의 속도를 통해 내가 중년이 되었음을 느낀다. 더 많이 알아가고 경험하며 나를 채워가고 싶었다. 마음과 달리 어긋 거리는 몸이 열정을 어쩔 수 없이 멈추게 했고 많은 경험이 나를 단단하게 채워가지 않음을 알게 했다. 어쩔 수 없이 나 또한 자연의 이치처럼 비워내고 털어내면서 앞으로의 시간을 가볍게 준비해 가게 했다.




2024년은 새로운 삶을 시작한 한 해였고 그래서 다양한 감정을 담아가는 시간이었다.

때로는 울었고 행복했고 감사했다. 그 안에서 감동하면서 불안했으며 투덜거렸다.


내가 지나온 시간 속에 내가 가지고 있는 삶의 그릇이 꽤나 깊어졌는지 알았는데 막상 새로운 일을 경험해 보니 나의 시야나 생각이 넓지 못함을 알게 되었다. 10년 넘게 육아와 내 삶의 특별함을 통해 깨달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며 배워왔다. 삶의 테두리가 가족이었고 내 아이였으며 조금 넓게는 시댁이었다. 그리고 내 아이를 통해 알게 된 지인이었다. 서로가 사뿐히 웃으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러다 삶의 반경을 확 넓히고 나니 내가 가지고 있는 테두리 안에 다양한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동안 자주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다양한 관계의 경험


때로는 그들이 가지고 온 나에 대한 인식이 옹졸이었고 편견이었다고 생각했다. 진심을 알아주지 못하는 작은 마음에 핑! 퐁! 거리며 마음속으로 받아치며 표정과 말에서 다 드러내지 못함을 억울해했다. 핑퐁거림은 내면에서 시끌거렸으며 정신없이 오고 가느라 내 감정을 필요 없이 허비해야 했다. 그러는 사이 나 또한 그들의 마음을 닮아간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미 받아칠 마음으로 살아가는 내 마음이 작은 그릇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글을 쓰게 되었다.


서로의 생각이 다름을 /

타인은 온전히 나를 다 이해하지 못함을 /

그러기에 서운해하지 말아야 함을 /

내 기준에 맞는 좋은 사람만 세상에 있지 않음을 /

보는 시선이 다양하다는 것을 /

나는 올해 배워가야 했고 배워가고 싶다.


그것이 내 마음을 넓히는 일이기에 받아들이려면

쭈---욱하고 어느 정도의 아픔을 감수하고 늘려야 했다.

아니 늘린다는 게 쉽지 않아서

아플 거라는 생각에 피하고 싶었고 외면을 했는지 모른다.


포용할 수 없이 여전히 불편해하는 내 마음의 생각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 건지...

옹졸함의 시선은 외면으로 그리고 언젠가는 진실은 알겠지라는 기다림으로 흘러보네야 하는지....

원망을 하다 보니 옹졸함과의 인연을 시작한 후회까지 하게 되었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없구나.

사람을 일일이 판단하지 못하고 잘 지내려고 하는 나를 이용하는 상대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사사건건 무례하게 관계의 무게를 재면서 이익이 없으면 따져 들어오는 트집이 불편했다.


누군가를 판단할 때 내 생각이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훤히 보이는 속 마음을 바라보며 때로는 씁쓸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예민함이 날 피곤하게 하는 게 아닌가 싶어 둔해지고 싶었다.

그렇게 누군가와 틀어졌고 불편해져 가는 관계가 생겼다.

이유를 내가 아닌 상대에게서 찾았다.


나를 바라보는 것이 어려워 나는 좀 더 위에서 나와 상대를 함께 바라보았다.


결국 찾아낸 것은 내가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이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이겠구나.

관계라는 것은 결국 = 의 법칙이었다.

(마음이라는 것은 같은 걸 주고받는 것이었구나.)

한 번 왔다고 해서 한 번 받아치는 것은 결국 난 그 사람보다 나은 사람이 아닌 똑같은 사람이었구나.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는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마태복음 7장 1~5절)


나를 불편하게 한 타인의 생각,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내가 고치려고 하지 않기로 했다.


나를 먼저 바라보기로 했다.

무척이나 어려운 시선의 연습이지만 나이 듦에 있어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배움이다.


내가 누군가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함인지

그러려니 하며 시간 속에서 자연의 이치처럼 기다리며 버티는 힘을 키우기를

편안하게 다양한 일들을 평안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앙상해지고 털어지며 때로는 추위를 참아가며 배워가 보려고 한다.


그렇게 겨울이 되었고 겨울을 보내고 있다. 더불어 나는 마흔이라는 한 해를 흘려보냈다.


2025년은 삶을 밝히 보는

지혜의 을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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