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을 오래 묵어두는 이유

변했을까? 변할까?

by 가리영

하나의 미움이 오래 묵어두게 되었다. 익은 김치처럼 숙성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 마음 어딘가에 깊이 파서 다시는 절대로 열어보고 싶지 않은 단지 속에 넣어두었다. 안다. 열어보면 보고싶지 않은 이유를 내가 묵어둔 미움이라는 마음 곁에 괴기스럽게 득실거리며 요상한 것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을 것이다. 숙성이 아니라 썩어있을 것이다. 얼마나 보기에 소름끼칠 지 알기에 그냥 모른 척 하는 것이다.


왜 털어내지 못하고 다시 온전히 미움을 평온한 마음으로 바꾸지 못하냐고 물어본다면 그 이유를 생각하느라

다시 묵어두었던 미움을 꺼내야 한다 . 고통스럽게 느꼈던 그 때의 감정을 되짚으며 하고 싶지 않은 그리고 반복하고 싶지 않은 마음의 행위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억지로 하기 싫은 것을 하거나 내가 뻔히 잘 못하는 자신 없는 일에 대해서 마음이 해야할 때 눈에 보이지 않지만 파동이 있게 된다. 머리가 지끈거리거나 가슴 어딘가가 콕콕 거리며 불편한 마음의 행위가 내 몸을 찔러댄다.


오래 묵어두어서 변했을까? 내 마음은 아마 숨겨둔채로 그 안에서 썩어있을 것이다. 변했을까?

내가 묻고 싶은 건 상대이다. 나에게 미움이라는 감정이 생기게 하고 내가 묵어둔 시간 동안 그 사람은 예전과 달리 좋은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을까? 한 번씩 미움은 들여다보지 않지만 그 사람은 변했을지 궁금해진다.


나에게 했던 일방적인 분노, 무례한 행동, 선을 넘는 모습들 , 이기적인 모습들이 선한 모습으로 변했을까?

내가 너무 옹졸했던 건 아닌지 오해를 하고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닌 지 그냥 그러려니 했을 수도 있었던 던 것들은 아닌가 싶어 상대를 염밀하게 관찰 할 때도 있었다.


새로운 옷을 입은 듯이 그리고 어딘가에서 속은 그대로이지만 포장을 하고 나타났다. 너가 알던 나는 너의 판단이 잘 못 된거야 라는 것을 보여주듯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더 상냥하게 그리고 친절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처음엔 내가 잘못 생각했나봐라고 자책했다.


그러나 포장만 바뀐 모습은 다시 본색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또 다시 나처럼 내가 미워하는 상대의 모습에 경악해했고 불쾌해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내가 느꼈던 감정을 다시 되새겼다. 미움을 꺼내서 온전하고 평온하게 만들지 말자. 그래 화해따위는 생각도 하지 말자. 또 다시 당하지 않으려면 나는 미움을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깊이 아주 작아지거나 오랜시간동안 스스로 자멸하길 기다리는 게 낫겠다.라는 다짐을 하게된다.


마음 한 켠에 미움이 작아질대로 작아졌다라고 생각 할 쯤 톡하고 걸리는 건 서로 사랑하라 그리고 용서하라 이해하라는 성경 속의 무수한 찔림의 말씀들 때문이다. 그래서 예배를 멀리했다. 들으면 불편했기에 내가 듣고 싶은 말씀에만 고개를 끄덕였고 용서 이해라는 말에는 딴청을 피웠다.


도저히 불가능한 것도 있어요 주님 쉬운지 아세요. 아니 내가 그래요 용서하고 이해해서 우리 다시 잘 지내봐요 했는데 다시 반복해서 그 사람의 말이 나에게 상처를 주면요. 성경은 7번씩 70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다시 반복해서 말한다. 아 마음이 너덜너덜해지는 기분이다. 그 힘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신다.

구하기 위해 기도를 하다보면 미움을 다시 꺼내와야 했기에 싫었다. 외면이 나에게 더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새벽 나의 이성이 미처 깨어나지 못하고 떠도는 생각이 먼저 찾아왔을 때 그 미움이 오랜만에 꺼내나왔다. 침대에 누워 눈이 떠진 나의 첫 생각이었다.


화해해? 미움이 작아지는 듯 하다가 그 사람 변하지 않았던데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또 나와의 관계처럼 틀어졌던데 결국 내가 찾아가는 방법은 나와의 관계처럼 틀어진 사람과의 상담이다.


미움의 대상과의 화해보다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 사람에게 당신의 마음은 그 사람으로 인해 어떠했나요? 이다. 그들도 일방적인 무례함이고 오해에 적잖히 당황했고 더이상 보고 싶지 않을 만큼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다. 길을 가다 먼발치에서 상대의 모습이 보일 때면 불쾌함이 먼저 온다고 했다.


다시 묵혀둬본다. 스스로 썩다썩다 문들어지다 녹아내리듯 어딘가로 흘러가 사라지길 기대해본다.

불가능할거라는 것 알지만 내 삶의 반경에서 상대가 떠나가길 기대하는 지도 모른다.

그동안의 불편한 관계는 그랬다. 아 꼴도 뵈기 싫다라고 생각했는데 상대들이 사정이 생겨 이사를 갔다.

그리고 뵈기싫다라는 마음은 눈에서 보이지 않으니 거리에 맞게 사라졌다.


내가 멀리 떠나야할까? 그렇게 고민도 해본지 오래... 아니 상대가 떠나갈 수도 있다. 기대하고 상상하니 설레는 마음이 드는 건 마치 묵혀둔 마음에서 나는 불쾌한 냄새를 사라지게 하기 위해 뿌린 향수와 같겠지.

살짝 뿌리고 다시 감춘다.


매일 보는 사람이 아니라 다행이다. 혈육이 아니라서 그리고 화해라는 이름으로 다시 상처받지 않아도 된다는 만약의 상황을 생각하며 얼마나 다행이니라는 마음으로 내 미움을 다독인다.

다시 용서와 이해라는 말씀이 오면 내 마음 어딘가가 꾹 찔리겠지만... 어떻게 사라질지 모르지만 기다려본다.


미움은 참으로 질기다. 어떻게 조리하는 지 몰라서 더 질길지도 모른다. 특별 조리법을 배우게 된다면 그 때 다시 이 곳에 연재하는 글을 쓰도록 하겠다. 과연 그 날이 올까 싶지만 하나님의 특별소스가 나에게 주어진다면 가능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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