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먼 돈에 환장한 사람들

by 가리영

장애아이를 키우느라 7년이란 시간을 가정보육을 하며 아이와 일대일 양육이 이루어져야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일상생활이 가능한 상황이 되고 가족으로서의 나의 삶을 영위해나가기 위해 애쓰고 싶었다.

알게 된 것은 장애인 활동보조사업. 활동보조 선생님이 장애인의 생활을 하루 몇 시간 돌보며 함께해주는 사회적 보장 서비스였다. 24시간 아이를 돌보는 시간에서 하루 몇 시간 나로서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는 보건복지부에서 내가 사는 동네의 근처 복지센터와 공무기관에 관리를 맡겼다.

복지센터에서 담당자가 나의 아이를 챙겨줄 활동보조 선생님을 모시고 왔고 선생님을 장애인 가정에서 함께 지내고 싶습니다라고 선택을 하면 서비스 이용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하루 5시간이라고 한다면 그 중 아이를 보살피는 시간 동안 오고가는 교통시간과 경비 계산은 일하는 시간에서 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확한 매뉴얼이나 지침이 없어서 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를 이용하는 각 가정마다 시간으로 빼는 경우는 다양하고 서로 달랐다. 암암리에 오픈되어 있지 않지만 필요한 이동에 대한 교통경비는 중구난방으로 시간이라는 수당에서 빠져나갔다.


정확한 지침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 문제에 대한 불편함은 장애인 양육자와 가정에서 느끼는데 정작 이 문제로 인해서 편안함은 복지관과 근로자가 가져갔다.


시간을 그냥 편하게 많이 빼주세요. 그래야 어머님이 편해요.


나는 무엇이 편한지 모르겠다. 그냥 편하게 빼서 아이를 돌보는 근로자에게 주라는 복지관 담당자의 생색이었다.


그래야 일하시는 분이 자주 안 바뀌고 통상적으로 그렇게들 많이 하세요.


통상적인 것에 정확한 지침이 없으니 부당함을 당하는 건 장애인과 가족이었다.


사실 이게 서비스의 목적에 맞는지 모르겠어요. 시간에 대한 수당이 교통비보다 몇 배는 더 가볍게 사라지는 걸요.


어머님 사실 어머님은 몇 만원 내시고 나라에서 주는 큰 혜택을 받으시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어머님이 월급 주시는 거 아니면서 왜 그렇게 그 혜택을 다 받으시려는 거죠?


이게 무슨 콩국수에 초장 말아먹는 소리인가 싶었다.


그렇게 한 번을 참았다. 내 아이가 혹시나 불편할 까봐. 그래 나는 이 서비스가 필요하니까.

꾸욱. 내 감정이 불쾌하고 이건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우선 참아보았다.


두번째 문제는 일하지 않은 시간도 그냥 선생님은 수당을 받으셔야 하니 보충시간 없이 어머님만 묵인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미 교통으로 활동보장서비스 시간을 하루에 뺀 상태라 사실 나는 아이를 돌봐주실 시간이 필요했다. 일하시지 않고 받아가시는 몇십시간의 시간을 하루단위로 쪼개서 아이를 돌봐주시는 시간을 갖으면 안되겠냐고 제안을 하자 활동보조 선생님은 그렇게 해주시겠다고 했다.


그러나 복지관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 다 그냥 시간 가지시라고 그 시간에 대한 수당 그냥 받아가시라고 이해하고 양보하는 건데 어머님은 8만원 내시면서 서비스 받으시면서 왜 100만원의 혜택을 어머님꺼라고 생각하시고 이래라 저래라 하시는 거에요. ?어머님이 100만원 내시는 거 아니잖아요. 나라에서 주는 서비스 금액을 자신의 권리라고 생각하시는 거에요?


따지는데 아주 앙칼지고 이번 기회에 나의 요구사항을 기세로 눌리려는 듯 했다.


복지관은 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를 관리하면서 장애인에게 나온 서비스 금액에서 몇 %를 가져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관리라는 명목하에 행해지는 갑질 굉장한 수고로움은 없다. 관리라는 것은 이랬다. 서비스로 근로하는 선생님들께 교통비를 시간의 수당으로 몇 배 가져가는 것은 당신들의 권리이니 당당해라 라는 것이라고 할까? 이건 서비스를 이용하는 가족이 돈을 내는 것이 아니니 그들의 요구에 휘둘리지 말아라는 근로자 교육이었다.


나는 궁금했다. 도대체 교통으로 나가는 것을 시간으로 환산했을 때 어떻게 빼야하는 지 왜 그에 대한 지침은 없고 왜 장애인 서비스에 대한 시간은 날로 먹듯이 사라져가는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나는 양육자로서 100만원에 8만원 정도의 서비스수당을 내지 않아서 8만원만큼만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인지도 함께 알고 싶었다.



왜 이 서비스가 생겨났고 이 서비스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니 복지센터 담당자가 얼마나 무례한 행동이고 말인지 알 수 있었다.


세번째는 이랬다. 어머님 선생님한테 교통수당을 시간으로 빼주시는 거 너무 얄팍하게 따지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냥 더 시간 주시고 그냥 쓰시라고 시간 주시는 분들도 얼마나 많은데요.


(건강보험공단을 꼭 알기를 바란다. 서비스를 받는 장애인이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고 시간을 책정하러 오는 날 시간을 더 많기 위해서 장애인 가족들은 상황을 더 악화된 경우로 그리고 좋지 않은 모습으로 꾸민다고 한다. 전날 잠을 일부러 재우지 않고 힘들어보이는 모습을 다음날 보이기도 하고 집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필한다고 한다. 복지센터에서도 나에게 그런 모습을 요구했지만 나는 억지와 거짓을 일부러는 못한다. 내 아이는 중증의 지적장애와 뇌전증의 증세가 있어서 돌발상황이 있을 수 있다. 혼자서 찻 길을 건너면서 교통안전을 생각한다든지 낯선 사람이 위험할 수 있다라는 인지가 부족하기에 돌봄을 해줄 보호자가 늘 손을 잡고 따라다녀줘야한다. )


세번! 많이 참았다. 상대는 확고했다.


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로 인해서 우리 복지관은 근로자를 매칭해주고 수당을 받아가야한다. 그 수당이 많이 생길수록 우리의 사업도 커진다. 복지관에 필요한 것은 이용자에게 나오는 수당에서 떨어지는 %수당이다. 근로자가 자주 바뀌는 것은 우리에게 피곤한 일이다. 자꾸 부당한 수당금액이라며 요목조목 묻는 이용자의 양육자 기를 누르는 것이 나의 일이다였다.


나는 목소리에 힘을 주고 말했다. 당신에게 여러번 불편했습니다. 다행히도 아이를 돌봐주시는 선생님은 너무나 좋습니다. 아이도 선생님을 좋아하고 선생님도 아이를 너무나 다정하고 따뜻하게 사랑해주십니다.


내가 자꾸 불편함을 넘어 불쾌한 건 당신의 마음의 생각과 언행입니다.


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보건복지부에서 이 서비스를 만들었을 때 무슨 이유로 만들었습니까? 사회에 장애인이 있고 복지관에 %의 수당을 주기 위해서 만들었습니까? 근로자의 일자리를 통한 월급을 위해서 만들었습니까? 당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만들어진 서비스 입니까?


당신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당신 복지관 그리고 당신의 수당을 많이 채워가는 업적 그리고 근로자를 관리하기에 이렇게 편하게 돈을 받게 해준다는 생색을 위해서 이 서비스를 설명했고 이야기 했습니다.


네 제가 집에서 장애아이가 아픈 시간동안 아이만 돌보느라 묵인되어 있는 통상적인 이 서비스의 부당한 시간의 수당을 몰랐고 이해못해 불편함을 드렸는지 몰라도


당신 마음에 복지관에서 장애인을 관리하는 사회복지사로서 장애인을 위한 마음은 한 켠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내가 보호자로서 겪는 당신의 말에서 나오는 부당함으로 인한 불쾌함 표현하지 않으면 너무나 당연하게 이 서비스가 이용자가 아닌 복지관과 근로자를 위한 서비스가 될 거 같기에 말합니다.


장애인 활동 보조 서비스는 장애인과 그 가족을 위한 것입니다.


당신과 당신이 일하는 복지관 그리고 근로자의 수당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사회복지적인 근무를 하고 받아가는 것이니 눈먼 돈처럼 당신이 그냥 쉽게 가져가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8만원만 내기에 말하지 못할 권리가 없습니다. 당신이 내가 겪는 부당함을 기를 꺾으려고 누르듯이 누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주는 돈 아닙니다. 장애인을 양육한다고 내가 내 돈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서비스의 목적입니다. 돈에 목적을 변질시키지 말아주세요!


나는 이 부당함과 불편함을 호소하겠습니다. 시청이 아닌 보건복지부에 묻겠습니다.

이렇게 서비스가 변질되어 있는 상태를 알고 있느냐고 근로자와 복지관을 위한 서비스인 것인지

장애인과 가족이 부당함과 불편함을 겪으며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맞는지 정확한 지침이 필요한 상황인 것을 수년간 묵인한 상태로 눈 먼 돈 처럼 근로자와 복지관이 가져가는 것을 아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아니 묻겠습니다. 복지관 담당자에게 이런 경우를 당연하다는 듯이 당하는 것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보호자가 겪어야 하는 감정인지 묻겠습니다.





상대는 벌벌 거렸다. 보이지 않았지만 식겁한 듯 했다. 혹여나 묻겠다는 내 이야기가 사실이 될까봐 두려워하는 듯 했다.


오랜만에 묻는다. 직접 보건복지부에 묻지는 않았다. 이유는 아이를 돌봐주시는 선생님은 서비스 이용 시간으로 비례할 수 없는 이상으로 아이에게 사랑을 주셨고 아이를 자신의 아이처럼 챙겨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복지관 담당자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변에 알게 된 장애인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교통수당이라는 명목하게 시간의 수당이 몇 배씩 많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확한 지침과 계산이 필요한 서비스라는 것을 나는 이 글을 통해서 알리고 싶다.


세상에 눈 먼 돈이 얼마나 많은지는 사회적 약자들을 다루는 서비스에서 많이 나타난다.

그렇게 내가 피땀흘려 낸 세금이 어딘가에서 단물처럼 빨아들여지고 있다. 썩은내가 나는 단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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