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하게 사는 모습이 궁상이래요.

by 가리영

아파트 주변을 돌아본다. 재활용 코너 옆에 버려진 신발하나. 아직 신을 만 한데 버렸네.

누군가 버린 문제집 이거 다시 풀어볼 수 있는 거 아니야.

킥보드가 아직 멀쩡하다. 이거 우리 아이 타면 딱이겠네


산책이라고 부르고 주울만한게 있나 보러 다니는 길 목이었다.

그렇게 10년 넘게 살았다.


주워쓰고 다시쓰고 아껴쓰고 얻어쓰고

환경을 사랑한다기보다는 진짜 돈이 없어서.


어릴 때부터 알뜰했다.

선생님이 과자파티를 한다고 과자를 사오라고 하고 친구들이 실컷 먹고 남고 남은 과자가 아까웠다.

다음 과자파티에는 집에서 파란 큰 비닐봉지를 하나 미리 챙겨갔다.


과자 버리지 말고 여기에 담아줘.


35명정도의 친구들이 남긴 과자를 담으니 파란 봉지 안에 온갖 과자가 한가득 담겼다.

달콤한 초코과자 짭짜름한 새우과자 바삭바삭 고래밥

어깨 뒤로 둘러메고 집에 달려가 엄마아빠 앞에 내려놓는다.


친구들이 안 먹는대. 그래서 다 챙겨왔어. 모으니까 이렇게 많아진거 있지


엄마 아빠는 그런 나를 엉뚱하다고 생각했다.

집에 먹을 것도 많은데 우리 딸은 왜 저러나.

아빠는 알뜰하다고 칭찬해줬다.

기특하네 우리 딸 버리지 않고 모아서 가져오고


아빠는 오래 오래 기억해뒀다. 내가 커서까지 말해줬다.

부족함 없는 집인데 너가 늘 알뜰했다고


필요없이 사는 거 그리고 중요하지 않은 일에 돈이 나가는 거 그런게 다 싫었다.

아낄 수 있다면 아끼고 기분대로 소비하지 않아야지.


알뜰하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덜 먹고 내가 덜 쓰고 살았는데


누군가 그랬다. 내가 누릴 수 있는 물질 양보하고 당신의 살림밑천에 써요라고

이해하면서 살고 있는데 그런 나에게 그 사람이 그랬다.


그거 궁상이야. 남도 아니고 나 대신 편하게 사는 그 사람이 그랬다.


궁상......


자꾸 아끼다보니 얼굴의 때깔이 안 좋았다.

먹고 싶은 게 있어도 참았고 덜 먹었고 대충 먹었다.

머리숱은 점점 줄어들고 얼굴은 휑해졌다.


궁상은 기분까지 전해졌다.

비참한 기분이 들었고 남과 비교하다보면 내가 불행한 거 같았다.

누군가는 제일 비싼거 새 거 있어도 또 사는 데

나는 아껴서 새로 사는 게 아니라 있는 걸 또 쓰고 또 쓰는데 늘 없었다.

아낀다고해서 살림살이가 늘어나는 게 아니라 늘 어딘가 구멍이 난 것 처럼 모아지지도 않았고 새어나갔다.


위축되었다. 없는 걸 표현하지 못해서 외출이 줄어들었고 말하다보면 부족한 삶이 티나는 거 같아서 말 수가 줄었다. 언젠가 생길거라는 돈이 마치 희망고문처럼 괴롭혔다. 참고 견디면 내 알뜰함 알아주겠지 했는데..

아무도 몰랐다. 나만 불쌍했다.


뭐라도 해야했다. 아끼는 게 미덕이 아니었다. 젊어서 사서하는 고생이 늙어서 호강한다는 말의 틀에서 벗어나야했다. 젊어서 고생하면 늙어서 병만 든다. 여기저기 아파오는 건 마음의 병이었다.

70대 정도의 호강없이 고생만 하며 살아온 어르신 들이 침을 맞는 한의원에 나도 병든 몸을 내어놓고 누워있었다. 젊은 사람이 몸이 왜 이리 아파요? 이거 마음의 병이에요. 마음에 담긴 화 그리고 스트레스를 풀어요.


그러다 일을 하러 나갔다.

외벌이 못하겠다. 돈 벌자. 그래 뭐라도 해서 벌어보자.


처음엔 3만원이었다. 손에 쥐어진 3만원이 그리 기뻤다.

내가 뭐라도 해서 벌었던 돈 3만원.

그렇게 시작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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