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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리영 Dec 13. 2023

약속시간을 가볍게 여기는 당신에게 전하는 말

약속은 지키자고 있는 거랍니다.

시간에 대한 강박증이 있는 편이다.


 어린 시절 3시간에 한 번 , 하루 5편의 버스만 있는 산골 오지로 이사를 간 이후로 버스를 놓치면 3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나에게 시간에 대한 강박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30분 전부터 버스 정류장에 서 서 기다렸다.  어쩔 수 없이  학원 일정이나 내가 조절할 수 없는 일과로 놓친 날에는 3시간을 기다리느니 걸어가자며 남동생과 양파링 하나를 사서 20걸음마다 하나씩 먹으며 한 시간 반이 걸려 먼 거리를 갔던 기억이 있다.


 버스가 없어서 아빠에게 연락을 하면 아빠는 언제 오실지도 모를 기약 없는 시간을 길에서 기다리게 하셨다. 나라면 딸이 길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에 애가 탈 거 같은데 아빠는 본인의 바쁜 일을 다 마치시고 기본 1시간을  길에 서 있게 한 다음에 데리러 와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도서관에서 책을 봐도 되고 공부를 하고 있어도 되는데 혹시나 아빠를 못 만나서 엇갈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마음에 서 있기도 했고, 땀을 흘리며 일하고 오는 아빠가 도서관 안에 있는 나를 우악스럽게 부를까 봐 미리 걱정돼서 망부석처럼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이야 핸드폰이 있어서 언제쯤 오는지 어디인지 물을 수 있지만 그때는 통신기기가 없으니 기다릴 수밖에 없는 불편한 상황이었다. 더불어  아빠는 시간 약속을 진지하게 생각 안 하시는 성격이시기도 했다.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지루하고 힘든 시간을 보낸 것이 불편하면서 서러웠다. 그래서 나는 남을 기다리게 하는 게 싫었고 시간을 넘어서 약속을 어기는 게 무례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약속시간 15분 전에는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된 후 알게 된 점은 한국사람은 약속시간 15분 후에 도착하는 코리아타임이었다. 미리 가서 기다리는 시간과 상대의 늦은 시간까지 더하면 나는 30분을 의미 없이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차츰 인간관계를 정리하다 보니 특별한 이유 없이 늦게 도착하는 게 습관인 사람하고는 친밀한 사이를 유지 않는 나만의 선이 생기게 되었다. 


 약속시간을 매번 늦는 게 당연시된 사람은 상대에게 본인의 잘못된 습관을 크게 미안해하지 않는다. 더불어 기다린 사람과의 만남에 의미를 귀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미리 준비하지 못하는 상대 모습에 실망하는 건 나였고 그 모습에 불만이 있었지만 관계를 위해서 감추고 웃고 있어야 하는 거짓된 마음이 불편했다.  자주 만나다 보면  '아 맞다 그 사람 늦게 오지' 라며 늦게 출발하려고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습관이 나에게까지 전염되는 게 정말이지 싫었다.


 나는 정확하고 군더더기 없는 것을 좋아하는 계획형 인간이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언어가 있고 행동이 있는 것처럼  약속시간을 지키는 게 관계에 있어 기본 예의이며 소양이라고 생각한다. 약속이 무의미하다면 관계에 대한 신뢰 또한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주변에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차츰 사라졌다. 일부러 약속을 잡지 않고 만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명 남아 있다면 평생 같이 살 남편이다. 이혼하지 않는 이상 내가 잔소리를 하던지 내 속이 부글부글 끓던지 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불행함이 남았지만 말이다.

 

 약속이란 나에게 그 사람과의 소통을 위한 첫걸음이다. 그와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할지 어디를 갈지를 생각하며 서로가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을 정하는 것, 각자의 하루 중 일부분을 함께 한다는 것은 마음을 나누고 싶어서 이다.  


 약속 당일 아침 " 아 나 오늘은 안 될 거 같아.  /

아 나 가는 거 불편하지 (다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내가 불편할 거란 판단!? 황당 그 자체였다) /오늘 안 되겠어 그냥 다음에 보자.(그냥? ㅎㅎㅎ ) /오늘이 약속 날이었어?(기억도 안 하고 있었다고??)  /오늘 시간이 안되는데 같이 보기로 한 사람한테 못 보는 거 말해줄래요?"(당신이 약속을 파기하면서 나보고 그걸 남에게 또 전하라고?)라는 무례한 경우를 여러 번 한 일이 있었다.


 그때마다 그 사람과의 관계를 위해서 괜찮다고 말했다.  "아 그래요~  이해한다고 그럴 수 있다"라고 생각하며 나의 하루를 날린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처음에는 이제 나와의 관계가 어렵지 않고 허물없는 친밀함에  전 날도 아닌 약속 30분 전에 약속을 취소하나? 그럴 수 있지.. 이해해 보자라고 내 마음을 달래며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더 큰 일로 이해하지 못하고 관계가 틀어진 후 생각하니 상대가 나에게 했던 행동들이 무례함이었구나 라는 판단이 들었다. 약속을 지키지 않던 무례함은 내 생각과 상황까지 함부로 판단하고 오해하는 무례함까지 보였기 때문이다. 그 뒤로 나는 더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과는 친분을 가지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쩔 수 없이 남편 빼고...)  그리고 아무리 상대와 친하더라도 나는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아야겠다는 미러링 성찰을 하였다.  

 새끼손가락 걸고 엄지손가락 도장까지 찍는 것만 약속이 아니다. 세상에 가볍게 여길 약속은 하나도 없다.  지키다 보면 삶에 있어서 안정감을 주는 질서가 생긴다. 질서 속에서 신뢰감이 생기고 친밀함도 두터워진다고 본다.  나이가 먹다 보니 아이를 키우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로 약속을 늦을 순 있지만 그 마음 안에 가볍게 여기지만 않는 다면 나는 이해한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안다. 무례함인지 어쩔 수 없는 당황스러운 경우였는지 말이다.  진심이 통하는 관계는 미안함을 진실되게 표현하고 가볍게 여기지 않는 마음에서 나온다.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모습을 통해 나는 때론 시간 강박으로부터 유연성을 갖기  때문이다.


출처 픽사베이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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