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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리영 Jan 13. 2024

유아교육 전공한 사람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배운 대로 되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찾은 보물

 유아교육과에 가게 된 이유는 그저 아이들을 좋아해서였다. 초등 6학년부터 작은 시골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했다. 4살 된 유치부 아이들 5명을 작은 수레에 태우며 "싹트네 싹터요~ 내 마음에 사랑이 "노래를 불러주었다. 아이들은 특유의 발음으로 "딱 트네 딱 터요"라고 불렀다. 아무리 싹이라고 말해줘도 아이들은 딱이라고 했다.


 매주 아이들과 무엇을 하고 놀아줄까? 하며 고민하는 게 즐거웠다. 주로 아이들은 흙을 가지고 노는 걸 좋아했다. 지금처럼 모든 길이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보도블록이 아닌 시절이었다.  주변 곳곳에 흙이 있었기에 아이들은 흙놀이를 자주 했다.  나뭇가지와 떨어진 꽃잎으로 케이크를 만들고 물을 가져다가 반죽을 해서 떡 만들기를 하며 놀았다.  아이들은 흙 묻은 손으로 코를 훔치면서 행복한 미소를 보였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웠고 아이들만의 귀여운 행동을 할 때면 내 마음에 기억해두고 싶었다.


 고3 담임선생님이 "진로가 무엇이니?"라고 물을 때 "글쎄요"라고 말했다. "간호학과는 겁이 많아서 저랑 안 맞고  힘들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하천 따라 벚꽃이 많이 피고 조용하니 살기 좋은 곳에 있는 대학교 가볼래?"라고 하셔서 "그럴까요?"라고 말했다. "거기서 유아교육과 함 가봐~ 잘 맞을 거 같아"라고 말해주셨다.  그렇게 깊은 고민 없이 원서를 쓰고 나는 유아교육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벚꽃과 유아교육은 무슨 상관관계였을까? 를 대학 다니는 내내 생각했다. (대학에 진학하고 보니 나는 지리교육과 같은 사회교육과나 광고홍보학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쩝...)

3학년까지 전공서적으로 배워가는 유아교육이론은 그저 글 속에서 아이들을 학문으로 만나는 거 같아 지루하기도 했다.  4학년 실습 때가 학교 생활 중 가장 활기찬 시간이었다. 단순히 책을 읽고 리포트를 내는 일보다는 직접 아이들과 활동하는 시간은 "아! 나 아이들을 하고 있는 순간을  좋아했지~"하는 마음을 끄집어내게 했다. 

 병설 유치원 실습 담당 선생님은 이제 막 실습 나온 나에게 반 전체를 맡기고 출장 갈 만큼 나를 믿어ㅣ주셨다. 아이들의 안전과  반 일과를 꼼꼼히 체크하는 성격이라서 무엇을 조심해야 하고 어떤 점을 챙겨야 하는지 생각하고 배우는 시간을 즐기며 보냈다. 다행히 교육경력이 많은 선생님이셔서 아이들에게 대하는 교사로서의 태도나 반을 이끌어 가는 배테랑 모습에서 배울 게 많은 시간이었다. 또 실습가게 된 이화여대 부설 유치원은 4년 동안 배운 유아교육과정의 정석이었다. 책에서 배운 내용들이 교사와 아이의 상호작용  대화였다. 전공서적에서 배운 내용이 현장에서 이렇게 하는 거였구나 하며 입체적으로 펼쳐지는  시간이었다. 모든 것이 체계적이고 올바르게 이어졌으며 유아교육의 순간순간이 원리원칙 그대로였다. 나는 배운 대로 해보면 되겠다는 생각에 아이들과 직접 만나는 현장으로 빨리 취업이 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게 되었다. 나의 기대와 달리.... 그동안의 배움이 헛것이었구나라는 걸 느꼈다.  교실의 모든 환경이 엉망진창이라는 사실을 알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그곳은 자유놀이영역이라는 게 없던 교실이었다. 아이들은 그냥 그 전날 부모님과 본 드라마를 역할놀이 영역에서 재연하며 놀았다. 때로는 어떤 아줌마가 아저씨 싸다구 때렸지 하며 막장드라마를 흉내 내서 깜짝 놀랐다.  언어영역에는 낡고 낡은 책들이 다 떨어져서 몇 권만 있었다.  과학영역에는 아무것도 놔둘 게 없었다. 그저 먼지들이 책상에 앉아있어 먼지를 관찰해야 할 판이었다.  수학영역, 음악영역 등 아이들이 놀이를 하며 자연스럽게 배워야 하는 환경에는 문제집 같은 활동지만 길게 세워져 있었다. (이렇게 심각한 건 그때가 평가인증제 전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배워온 교육과 너무 다른 교육현장에서 나는 색연필 좀 사주세요~라고 말했지만 몽땅 거리고 끊어진 색연필 무더기만 받을 수 있었다.  하나하나 뜯어내고 청소하고 다시 정리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일하던 수고에 비해 초라한 초봉월급이 113만 원이던 시절이었다. 아침 7시부터 출근해서 11시까지 야근을 자주 해야 했다. (평가인증제 1기였던 때였다. 체계성을 가져가는 초기.... 아무것도 없던 시기... 얼마나 힘들었던지 그 해에 살이 8킬로가 빠져버렸다.) 아이들과 활동에  필요한 종이 한 장도 쉽게 얻을 수 없었다. 나는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혹시나 깨끗하고 쓸만한 물건이 있으면 주워와 세척하고 정리한 후 아이들의 영역에 놔주기도 했다.  마치 무인도에서 살아보겠다고 문명을 찾아가는 기분이었다.


 문제집은 부모님이 별도로 돈을 지불한 것이기에 꼭 풀어내게 하라고 했다. 글씨도 잘 모르는 6살 아이들이 하기엔 어려웠다. 아이의 흥미와 교육 수준에 맞지 않는 교재를 풀게 하는 게 맞나?라는 답답한 생각으로 하루일과를 보냈다.  신입교사인 나에게 처음으로 준 반은 다른 반 선생님들이 가장 맡기 싫은 반이었다. 엄마들은 간섭과 항의가 심했고 아이들은 20명 중 8명이 다양한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사랑스러웠지만 6살이 되기까지 어떤 규칙이나 지켜야 하는 습관이 배워지지 않은 거친 모습이 다분한 아이들이었다.

  

 이제 막 들어온 신입에게 가장 어려운 반을 주고 혹시나 자기들을 무시할지도 모른다면서 (4년제를 졸업했다는 이유로) 태움을 시키고 새로 온 페이 원장님과 나는 기존의 교사들에게 이유 없이 2:3으로 험담의 시간을 당했다. 그들은 이런 근무 모습이었다.  :  아이들 돌보는 시간에 싸이월드를 하고 있던 모습, 아이들은 내버려 두고 인터넷쇼핑을 하던 모습, 나는 그저 가만히 있는데 아이들에게 누가 더 이쁘냐고 물어보며 자신이라고 하면 신나 하던 모습, 늘 내가 뭘 입고 오나 보면서 따라 사던 동료의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유아교육은 현장에 없는 것인가?라는 회의감이 들었다.


 1년의 시간을 버티고 버텨서 퇴직의사를 보였을 때 나에게 돌아온 말은 "어디서 여자가 100만 원 넘게 벌 수 있을 거 같아? "였다.  그리고 이제 2년 차가 된 새내기 교사에게 "뭐를 하나 시키면 끝가지 하는 깡이 있어서 부장교사를 시키려고 했는데 네가 일 다 해줘야 하는데 나간다고? " 말했다.


 화창하게 피던 벚꽃이 이쁘니 가서 실컷 보라던 선생님의 엉뚱한 진로제안처럼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하루 종일 보고 싶어 왔던 유아교육의 현장은 지긋지긋한 여자들과의 싸움이었다.


 목에 두드러기가 잘 나는 예민한 피부를 가진 나에게 어디서 남자하고 이상한 짓하고 빨간 자국을 내고 왔냐고 삿대질하던 엄마가 있질 않나, 집에서 누워있고 싶으니 늦게까지 자기 아이 잘 돌보고 있어!!라고 명령하던 연년생 엄마, 집에서는 음식 해서 먹이기 귀찮으니 요플레 같은 간단한 간식은 주지 말고 직접 다 만들어 주라던 엄마, 창문너머로 무슨 말을 하나 하루종일 앉아 듣고 기록하던 엄마, 하지도 않은 일들을  만들어서 모함하는 작당모임 아줌마들 (작당모임그룹의 헛소문 만들어 모함하기는 얼마나  심한지 그 반을 맡은 교사는 몇 달 만에 그만두고 2번에서 3번씩 바뀌기 일쑤였다. 나도 그렇게 들어간 2번째 교사였다. 그 반만 맡으면 다시는 유치원선생님 안 하고 싶다면서 나가곤 했다.)


 중고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여자들만 있는 곳에 있던 나는 취업현장에서도 여자들과의 투닥거림에 넌덜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배울 점이 있다면 나는 이 현장에서 버티리라라고 했지만 현장에는 돈 떼먹어 자기 주머니에 넣으려는 사람과 이간질해 대며 사이를 가르는 사람, 뭐든지 을의 입장으로 보고 갑질하던 사람들이 난무했다.  그래도 한두 명은 서로 마음이 맞고 좋았던 교사도 있었지만 복잡하고 불쾌한 감정이 더 많이 다가오는 일 년이 힘들었다.

 

 근무태반의 시기질투 동료교사, 진상과 억측이 난무한 학부모,  교육의 본질보다 트집과 간섭이 먼저였던 관리자라는 < 쓰리 트러블 여자 집단>은  유아교육이라는 현장을 도저히 못 해 먹겠네라는 말이 나오게도 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유난히도 쓰리트러블 집단은 추악한 빛깔을 강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멀쩡한 교사들이 교육현장을 떠나고 싶게 만든다.)


 누군가의 아이를 본다는 것을 나는 나에게 보물단지가 맡겨진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귀한 보물을 남에게 잠시 맡길 때 우리는 혹시나 흠이 날까 문제가 생길까 걱정하고 염려하는 마음이 든다. 보물단지를 잠시 맡고 있는 사람을 온전히 믿어야 맡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보물단지를 하루의 시간 동안 부모만큼 맡고 지내는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가장 사랑스러운 유아기의 보물들이 더 빛이 나도록 그리고 각자만의 특별한 귀함이 더 윤이 나도록 정성을 다했다.  하지만 맡긴 사람이 불안해하거나 믿지 못할 때는 섭섭하기도 했다.  어쩌면 듣기 좋은 말들로  만족스러운 아첨을 떨었다면 오해받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나는 부모의 귀에 달콤한 말로 아이들과 보낸 시간을 괜찮은 척 포장하고 싶지 않았다.  원물보다 포장지에  감정을 소비하느니 아이들과 또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 고민하고 찾아가는 게 좋았다. 놀이를 하며 즐거워하는 아이의 행복함을 더해주고 싶었다. 새로운 것을 배워갈 때면 반짝이는 눈빛에 알아감의 기쁨을 채워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원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그 나이만의 소중한 추억들이 쌓이길 노력했다. 일 년 동안 나에게 맡겨진 아이들의 보물단지마다 더 좋은 보물들이 담아지도록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매일 하원을 하기 전  한 아이 한 아이 안아주며 그날의 가장 멋지고 칭찬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귓속말로 해주었다. 오늘 너의 이 모습이 사랑스러웠다고 말하며 꼭 안아주면 아이들은 행복해했다.


 배운 것과 교육의 현장은 달랐지만 아이들은 그 자체로 사랑스럽다는 건 언제나 변하지 않았다.

사랑을 전하는 마음을 아이들이 진실되게 알아주었다는 것이 힘들었던 시간 가운데 얻는 기쁨이었다.  하루 종일 고되었던 육아가 방긋 웃는 아이의 모습에 위로되듯이 말이다.  


 여전히 내 기억 속에서 신나게 놀며 웃던 아이들 선생님~사랑해요 하고 안아주던  아이들의 사랑스러움이 남아있다.  이제 대학생이 되었을 귀한 보물단지들이 더 멋지게 자랐겠구나 하는 상상과 함께 그 시간을 아름답게 담아두고 싶다.

 


* 유아교육 전공자가 전하는  
 좋은 유아 교육 현장 알아보는 팁!

아이와 함께 새로운 기관에 답사를 갔을 때  반의 환경이 주제에 맞게 구성이 되어 있는지 봐보세요. 아이들이 겨울에 대해서 배우고 있다면 교실 구석마다 겨울에 대해서 알 수 있는 환경으로 되어 있는지 좀 더 관찰해 보세요. (겨울에 관한 책이 꽂아져 있고 아이들이 겨울 노래를 배우고 있으며 환경 구성이 겨울분위기가 나는지.. 아 여긴 겨울 그 자체다 싶은지..) 주제에 맞게 교사가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놀이환경이 잘 되어 있는 곳이 아이들에게 좋은 곳입니다.  


 특별활동을 여러 개 하는 곳은 아이들에게 산만함을 갖게 합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서 배우고 놀이 속에서 집중하는 법을 배워갑니다. 잠깐 놀다 영어특별활동 잠깐 놀다 체육활동  여러 외부교사가 와서 다양한 특별활동을 많이 하는 걸 전 좋게 보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주제에 맞는 놀이 속에서 충분히 배워가고 놀이를 할 때 아이답게 잘 성장합니다.  놀이의 힘을 믿고 제공하는 교육환경이 가장 좋은 곳입니다.


 직접 일해봤지만 원의 관리자가 유아교육의 본질적인 가치관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운영하는  환경을 찾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내 아이를 원에 보낼 때에도 여기저기 찾아보았지만 다들 보여주기식 교육이었습니다. 내 아이만은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하고 싶었지만  찾고 또 찾아도 찾기 어려워서 '아 유아교육 현장이여 ~~ 진정 배운 대로 하는 곳은 없단 말인가?'라는 한탄을 했습니다. 결국 찾다 찾다 가장 유아교육의 정석대로 운영하던 숲 체험 원에 보내게 되었습니다.  아이에게  영어유치원이나 조기교육이 아닌 자연에서 마음껏 놀고 오는 시간을 갖게 해 준 점이 정말 잘 선택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배움의 결과가 눈에 보이길 원합니다. 하지만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은 신나게 놀 때
더 빛이 나는 보석이라는 걸...!!


사진출처는 픽사베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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